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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라맛빠기! 인도네시아] 印尼의 소록도 마을, 절망 속 아이들이 꿈을 되찾았다

작성자
kislam0
작성일
2019-11-18 13:03
조회
52
슬라맛빠기! 인도네시아] 印尼의 소록도 마을, 절망 속 아이들이 꿈을 되찾았다고찬유 입력 2019.11.14.





<16> 시타날라 한센인 마을

※ 인사할 때마다 상대를 축복(슬라맛)하는 나라 인도네시아. 2019년 3월 국내 일간지로는 처음 자카르타에 상주 특파원을 파견한 <한국일보>는 격주 목요일마다 다채로운 민족 종교 문화가 어우러진 인도네시아의 ‘비네카 퉁갈 이카(Bhinneka Tunggal Ikaㆍ다양성 속에서 하나됨을 추구)’를 선사합니다.

최영미(오른쪽)씨가 한센인 집단촌 시타날라의 마을회관 마당에서 한센인의 상처 부위를 소독한 뒤 붕대로 싸고 있다.
“애야, 꿈이 뭐니.” “청소부요.”

“왜.” “끊이지 않고 일할 수 있으니까요.”

아이들은 한결같이 정답을 말한 양 의기양양했단다. 청소부라는 직업 자체는 문제가 없다. 귀한 일이고 꿈꾸는 건 자유니까. 그 자유와 까닭이 갇힌 현실이 아릿할 뿐이다. 숱한 직업 중에 청소부를 콕 집는 아이들 대부분은 손과 발이 썩어 문드러진 부모 밑에서 자란다. 의족 의수에 의지해 청소 일이라도 할 수 있는 부모는 세상 전부다. 아이들에게 청소부는 어쩌면 꿈꿀 수 있는 최대치이자 자랑이었다, 그들이 오기 전까지는.

인도네시아의 한센병 퇴치와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자콥 버르나두스 시타날라 박사의 생전 모습. 구글 캡처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 서쪽 반텐주(州) 탕에랑(탕거랑)의 시타날라(sitanala) 마을에 아이들이 산다. 시타날라병원 뒤편으로 1980년대 조성된 오랑 쿠스타(orang kustaㆍ한센인)들의 집단촌이다. 한센인 900여명을 비롯해, 사지는 멀쩡해도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1,300가구의 보금자리가 됐다. 시타날라(1889~1958)는 인도네시아의 한센병 퇴치와 독립을 위해 싸운 의사이자 국가 영웅이다. 우리나라 쪽방촌을 떠오르게 하는 비좁은 골목길 단칸방 나무집엔 ‘누울 자리나 있을까’ 싶은 염려가 무안하게 서너 가정이 함께 살기도 한다. 벽돌로 집을 갓 짓는 곳도 보인다, 그들이 온 뒤부터.

시타날라 마을의 한센인 데위씨가 세 살배기 아들과 함께 웃고 있다.
동네 여성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은 구멍가게에 들러 이것저것 묻는데, 한 아기 엄마가 스스럼없이 악수를 청했다. 순간 주춤했고, 이내 후회했고, 그래서 더 꼭 잡았다. 손가락이 짓무른 손바닥의 감촉은 낯설었지만 온기는 평범했다. 데위(34)씨는 한국 특파원이라고 하자 연신 “고맙다”고 했다. 그는 올 4월 같은 병을 앓던 남편을 잃었다. 세 살배기 아들과 길에서 구걸할 처지였지만 용케 마을에서 최고 직업으로 쳐주는 청소 일을 구했다, 그들 덕분에.

수펜디씨가 시타날라 마을 자신의 집에서 아내 수하르티씨의 의족을 보여주고 있다.
문간에 앉아 있던 수펜디(50)씨는 아예 집 안으로 초대했다. 집은 네 사람이 앉자 꽉 찼다. 옷 좀 걸치라는 아내 수하르티(47)씨의 핀잔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웃통을 벗은 채로 수펜디씨는 몇 년 전 팔이 부러졌는데 병원에 못 가서 지금도 아프다는 얘기, ‘간틍(gantengㆍ잘생긴)’ 대학생 아들 자랑, 아내가 의족을 신고 청소부로 일한다는 잡다한 사연을 초면의 외국인에게 늘어놓았다. 의족은 500만루피아(41만원), 월급은 300만루피아(25만원)라고 했다. “고맙다”가 빠지지 않았다, 그들이 있기에.

두 발과 손가락이 모두 없는 티틴씨가 시타날라 마을 자신의 집에서 동네 공부방 컴퓨터 교사로 일하는 아들 자랑을 하고 있다.
열 손가락과 두 발이 모두 없는 티틴(47)씨는 방 끝에서 기어 나왔다. 왼쪽 다리는 무릎 아래부터 없다. 이동하느라 땅에 끌리는 다리 부위는 상처투성이다. 고졸이지만 마을에서 거의 유일하게 청소 대신 동네 아이들에게 컴퓨터를 가르치는 아들 에르윈(27) 자랑에 여념이 없다. 착실히 돈을 모은 아들 덕에 집도 새로 짓고 있다. 그러면서 “언제 다시 오느냐”고 찾았다, 그들을.

최영미씨 딸 김예빈양이 시타날라 마을회관 마당에서 한센인 자녀들의 손톱을 칠해주고 있다.
사흘 전 마을회관 마당에서 처음 봤던 이들을 100m쯤 떨어진 각자의 보금자리에서 다시 만나니 반가웠다. 그날 한 현지 소녀의 “안녕하세요” 또렷한 한국말 인사를 쫓아 닿은 70㎡ 남짓 마당엔 무료 진료소가 차려져 있었다. 한센인 170여명이 접수를 하고 혈압을 재고 처지에 따라 내과 진료, 환부 소독, 치과 치료, 약 처방을 받았다. 얼굴이 뭉개지고 손발 대신 검은 흉터만 남은 한센인들 틈에선 손등과 손톱을 예쁘게 칠한 아이들이 어우러져 재잘거리고 있었다. 흉측하다거나 악취가 난다는 눈과 코의 감각이 오히려 부끄러웠다. 거기에 그들이 있었다.

인도네시아 반텐주 탕에랑의 한센인 집단촌 시타날라 마을에서 봉사자들이 한센인들에게 약을 나눠주고 있다.
최영미(48) 김동식(45)씨 부부는 2017년 8월부터 매달 두 차례씩 마을에서 의료 봉사를 하고 있다. 붕대며 연고며 약품은 변변한 후원 없이 대부분 자비로 충당한다. 돈을 벌어야 해서 평일엔 오고 싶어도 올 수 없단다. 가끔 특정 장소에서 의료 봉사하는 팀은 있었지만 “가가호호 방문한 건 (최씨 부부가) 처음”이라는 주민들 말이 가슴 아파 마을회관 진료 뒤엔 거동이 불편해 오지 못하는 환자들을 직접 찾아간다. 이날도 최씨는 오토바이를 타고 온몸이 진물투성이인 환자에게 갔다.

인도네시아 반텐주 탕에랑에 있는 한센인 마을 시타날라의 마을회관 마당에서 한 한센인이 진료를 받기 전 자신의 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매일 상처 부위를 소독해야 하지만 이곳 한센인들은 돈도 없고, 약품도 구할 수 없고, 위생 상태도 좋지 않다. 최씨는 이들의 환부를 소독해 주고, 소독 방법을 알려 준 뒤 연고를 나눠 준다. 진물이 마르고 새살이 돋는 환자들을 보는 게 최씨에겐 보람이다. 최씨 부부가 온 뒤부터 주민들의 표정이 밝아진 것도 변화다. 최씨 부부는 형편이 닿는 선에서, 특히 사정이 딱한 주민들에게 일자리도 주고 있다.

인도네시아 반텐주 탕에랑에 있는 한센인 집단촌 시타날라 마을의 공부방에서 에르윈씨와 김동식씨가 컴퓨터 조작에 애를 먹는 한 학생을 돕고 있다.
지난해 8월 김씨는 평일 공부방을 열었다. 박영근(37) 목사 부부도 힘을 보태고 있다. 8할이 한센인 자녀들인 150여명은 영어 수학 한글 컴퓨터 리코더를 배우고 있다. 두 번째 방문 때 공부방을 찾아갔다. 무더운 바깥보다 더 후텁지근한 마을회관 빈 사무실에서 기증받은 낡은 컴퓨터로 티틴씨 아들 에르윈씨가 수업을 하고 있었다. 에르윈씨의 원래 꿈은 청소부였다. 김씨는 어깨너머로 배운 에르윈씨의 컴퓨터 실력을 인정해 교사로 채용했다. 열심히 자판을 익히는 아이들에게 꿈을 물었다. “의사요.” “교사요.” “경찰이요.” 비로소 아이들의 꿈이 현실을 박찬다.

인도네시아의 한센인 집단촌 시타날라 마을회관 마당에서 병이 있건 없건 서로 어우러져 낮잠을 자거나 체스를 두고 있는 주민들. 탕에랑=고찬유 특파원
우리랑 ‘틀린’ 게 아니라 ‘다른’, 끔찍한 게 아니라 낯선 모습을 지닌 사람들, 병을 앓던 부모가 모두 사망하면 제 몸 건사도 힘든데 그 아이를 입양해 키우는 이들, 이들을 살갑게 대하는 병에 걸리지 않은 이웃들, 그리고 이제 다채로운 꿈을 꾸는 아이들이 숨 쉬는 시타날라 마을은 병은 그저 병일 뿐이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예전 소록도에서 만난 한센인이 말했다. “한센병은 유전, 천형이 아니라 완치율 99.9%의 전염성 피부질환에 불과하다”고. 어쩌면 그들이 앓는 병보다 편견과 차별이라는 마음의 병이 더 무서운 건지 모른다. 아무래도 다시 올 것 같다. 그땐 먼저 손을 내밀려고 한다.

최영미(오른쪽)씨가 한센인 집단촌 시타날라의 마을회관 마당에서 한센인의 상처 부위를 소독한 뒤 붕대로 싸고 있다.
탕에랑(탕거랑)=글ㆍ사진 고찬유 특파원 jutdae@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