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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 카이바 현장

작성자
kislam0
작성일
2019-11-11 10:25
조회
12


75년 5월 중순 드디어 오랫동안 기다리던 비행기에 탑승할 수 있었다. 사우디 아라비아 파이잘 국왕의
죽음으로 미루기만 했던 터라 반가웠다. 비행기가 이륙하여 하늘을 향하여 올라설 때야 외국에 간다는
실감이 났다. 김포공항을 출발한 여객기는 홍콩을 거쳐 태국의 방콕에서 다른 여객기로 갈아 탔다.



그때는 대한 항공이 사우디아라비아까지 가지 못하고 레바논에 들려 비자 문제 때문에 레바논 베이루트
에서 며칠 머물러야 한다. 방콕에서 갈아탄  비행기는 노르웨이 소속의 보잉 747 점보비행기가 아닌가
더더군다나 외국인 스튜디어디스를 보니 주눅이 든다. 일행은 10명이 었지만 서로 외국여행은 초행이라
긴장되기는 마찬가지다. 인도의 뉴델리를 거쳐 레바논에 도착하였다. 그 당시 레바논은 기독교와 이슬람
교간의 갈등으로 내전중이라 혼란스러울 때며 공항 부근에는 팔레스타인 난민촌들의 천막들이 있었다.
숙소는 지중해가 바라보이는 콘티넬타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사우디 아라비아 비자를 3~4일 잘못하면,
몇주일 걸린다고 하나 브로커를 통하여 3 일만에 받았다 .

(콘티네탈 호텔 앞)



베이루트의 야경은 정말로 아름답다. 해안선을 따라 도로가 연결되어 차량들의 불빛들이 꼬리를
이어 빛을 비추고 있다.  물끄러미 지나는 차량들의 불빛을 보는 내눈에 감동적인 장면이 보인다.
야간이라 거리에는 많은 차들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붉은 신호등이 켜지면 어김없이 차들이 멈추
어선다. 물론 지나가는 사람은 보이지 않지만  차들은 신호등이 바뀔때까지 그자리에 멈추어 서
있는 것이,  무질서한 교통 문화에  익숙해있던 나는 이상하게 보였디.  우리 같으면 아무도 없는
이 시간에 그냥 지나칠 만도 한데 그들은 모두가 질서를 잘 지키고 있는 것 같았다.



옆방에서는 고스톱 치느라 정신이 없다.  또한 처음으로 접해보는 이국적인 풍경에 취해 한잔 술로
밤시간을 보내는 동료들도 있었지만, 다음날 아침에 냉장고에 들어 있는 술들이 공짜가 아니고 계산
해야 한다는 말에 모두가 깜짝 놀랐다. 사실 우리 모두는 관광하러 온것이 아니고 취업 비자를 받기
위해 잠시 이곳에 머물고 있기에 빨리 취업 비자를 받지 못하면 어려운 처지에 빠질 수 있기에 조금
은 당황 스러웠다. 그래서 우리들은 경비를 절감하기 위해서 식비를 줄여야만 했다.  시내도 걸어서
구경하고 무료한 시간을 달래려고 바닷가에 가 지중해의 푸른바다를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도심지에 있는 바다라고 하지만 너무나 아름다웠다.
해안선을 따라 기암괴석이 줄지어 있어 많은 유럽의 관광객이 온다고 한다. 지금은 내전 중이라 사람
들이 별로 보이지를 않았다. 건물 곳곳에는 벽에 총탄 구멍이 나 있는 것이 보인다. 또 거리에는 노천
카페가 많이 있는 것과, 처음으로 접해본 차도르를 쓴 여인들이 모습이 너무나 인상적이다. 우리나라는
그 당시 미니 스커트트가 유행하던 시절이 아닌가. 검정 차도르를 두른 여인들의 모습이 신기하고 답
답하게만 느껴졌다.



베이루트에서는 얼마간의 수수료를 주고, 다행이 삼일만에 임시 비자를 받을 수 있었다. 취업비자가
아닌 관광 비자지만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경비 절감을 위해 많은 곳을 구경 하지 못 했지만 삼
개월후에 다시 비자를 받아야 한다고 하나 베이루트는 다시 올 기회는오지 않았다. 언젠가 기회가
난다면 다시금 가보고 싶은 아름다운 도시 베이루트다



드디어 사우디 아라비아 제다에 도착했다. 공항에 도착하니 먼저 공기부터가 다르다. 5 월 중순경
인데 벌써부터 후텁지끈한 날씨가 우리를 맞이 한다.



사우디 아라비아 제다에서



사우디 제다 지사 옥상에서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소~하 라는 페트병에 든 프랑스 물을 먹어 보았다. 그때만 해도 우리나
라에서는 물을 사먹는 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다. 물이 휘발유 값보다 비싸다고 한다. 하루에
물 세병이 개인에게 지급 된다.



제다는 항구도시라 비릿한 바다 내음이 불어 온다. 삼환기업 사우디 아라비아 지사에 들려 도착
신고를 하였다. 우리는 이곳 제다가 아닌 카이바 ~ 알룰라 간 고속도로 현장으로 간다고 하며
이 카이바 현장이 우리나라가 중동에서 발주한 최초의 공사현장이라 한다



카이바와 알룰라 현장 사이는 약 180 킬로 정도 떨어진 곳이며 그 사이에는 마을이나 심지어 집
한채도 없는 황량한 곳이다.  제다 시가지를 벗어나니 사막 지대로 들어선다.  벌써 한참을 달려
왔건만, 여전이 제자리에서 맴도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끝이 보이지 않는 모래사막만 보일
뿐이다. 그래도 어쩌다 나타나는 오아시스의 야자숲이 눈의 피로를 덜어줄뿐이며 타오는 지열에
의해 도로 끝 쪽은 물바다 처럼 보인다. 지평선 말로만 들어 왔지만 산 하나 보이지 않는 완전한
지평선은 처음 본다. 시가지를 벗어나 몇시간 후에야 산들이 보인다. 산이라야 나무 한그루 풀
한 포기 보이지 않는다. 이런 곳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모르겠다.



(오아시스)
이제는 군데 군데 가시나무 같은 것도 조금씩 보이며 그런 곳에서도 양떼들이 몰려다니며 풀을
뜯어먹고 있는 모습이 안스러워 보인다.  그나마 조금 있던 풀을 다 뜯고나면 다 른 곳으로 이동
한다는 베두인들의 생활이 우리의 눈으로는 힘든 생활이 겠지만 어찌보면 모든 세속적 욕망을
접어두고 한가롭게  생활하는 그들이 부럽기도 하다.  이곳 사우디 아라비아 멕카와 메디나 두
도시는 이슬람교도인이 아니면 들어갈 수 없다고 한다. 도로도 시 외각으로 비무슬림들이 다니
는 길이 있는데 그들은 그 길을 동키 로드(당나귀, 믿지 않는 사람이 다니는 길) 라고 불렀다.



카이바 고속도로 현장입구



카이바와 알룰라까지 가는 동안에는 마을은 물론 집 한채도 없다. 어쩌다 베두인들의 천막만
보일뿐이다. 알룰라라는 곳은 작은 도시지만 중요한 곳이다. 그런데도 여태껏 길 조차 없었다.
낙타나 양이 다니는 황량한 곳아며 공사용 물조차 카이바와 알룰라에서 대형물차 들이 날라다
사용한다. 한 마디로 너무나 삭막한 곳이다. 이곳에서 2 년을 지내야 하다니, 그 당시에는 계약
기간이 2 년이었다. 어떻게 2 년을 이 곳에서 보낼까 생각하니 걱정부터 앞선다.



이 공사현장에는 우리나라 근로자와 사우디 아라비아 운전기사 그리고 예멘에서 온 근로자 세
구룹으로 나누어져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인들은 힘든 일을 하지않으려고 해 예멘인들이 많이
있다. 그들은 대 소변을 보러 갈 때는 물통을 들고 외진 곳에서 볼일을 보곤 물로 씻는다. 물이
없을 때는 돌이나 모래등으로 그부분을 닦아낸다. 동료 중에는 그들을 따라서 볼일보고 돌로
문지르는 사람들도 있었다.



라마단 금식월이 시작 되어 공사에 많은 지장이 오게 되었다. 현지인들이 오전 만 일을 하고 오후
부터는 일을 하지 않는다. 오전 일과도 일이 제대로 되지를 않는다. 사실 이곳에서 우리들은 물병을
꼭 같고 다닐만큼 물을 많이 마신다. 그런데 새벽에 음식을 먹고 해 질녁까지 아무것도 먹고 마시지
않는다고 하니 우리들로서는 이해하지 못힐일이다. 오후 일과에도 예멘에서 온 근로자들은 일하는
친구들이 있다. 물론 시간외 수당을 더 주기 때문에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는 살짝 물도 마셔가며
일을 하곤 하는데 사우디 아라비아 사람들은 철저히 지키는 것 같다. 더군다나 목요일에는 메디나
에 있는 집으로 돌아 가는데 집에 갔다가 제때 오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실정이다보니 주로 야간 작업을 하여 공사를 하여만 하였다. 라마단 때가 아니더라도
점심 먹고 나서는 3시 까지는 더위 때문에 휴식을 취해야 한다. 현지인들은 점심 후 부터 한
낮에는 잠을 자곤 한다. 더군다나 일하다 예배 시간만 되면 일을 멈추고 예배하니 처음 겪는
우리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안된다. 이렇게 쉬는 시간이 많으니 언제 일하나, 더군다나 우리
들이 항상 하는 말, 빨리빨리 하라는 말이 이들에게는 통하지를 않는다. 도데체 바쁜게 없는
것 같이 천천이 일을 한다. 그래야만 이 더운 지방에서 살아 남을 수 있는가 보다



자동차를 타고 가다가 시간되면 그 자리에서 예배 보는 그들이 처음에는 웃읍게도 보였다.
더군다나 땅 바닥에 얼굴을 대고 궁둥이는 쳐 들고 절하는 모습이 이해를 할 수 없다. 나는
이들이 그 어떤 우상을 향해 절 하는가 보다 생각하여 그들의 행동에 조소를 보내곤 하였다.
얼마나 절을 많이하는지 이마에 굳은 살이 생겨 이마가 나온 사람도 더러 보이며 그걸 자랑
스럽게 내 보이기도 한다. 예배보는 카펫을 깔고하면 괜찮읗 텐데 일하는 현장에서 그 대로
땅바닥에서 머리를 대고 절하는 모습이 그 때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의 신앙심은
놀라울 정도로 경건하기만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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