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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 아라비아 리야드

작성자
kislam0
작성일
2019-11-30 21:16
조회
26
휴가기간이 끝나니 다시 사우디아라비아 현장으로 가라고 재촉한다. 그러나 이제는 가기가 싫었다.
사직서를 내고 국내에서 일하기로 마음먹었다.



(포항종합제철(주) 부서 직원들과)
사우디 아라비아는 이제 그만 가려고 예전에 다니던 포항제철에 다시 입사하였다. 그런데 마음잡고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 나에게 다시 아라비아의 유혹의 손길이 뻗치는 것이다. 전에 사우디 카이바
현장에 같이 근무하던 친구가 이곳에 입사하게 된 것이다. 몇 년 동안 사우디에서 일하던 습관 때문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더더군다나 가족들과 떨어져 포항에 내려와 있으니 퇴근 후엔 둘이 어울려
술타령이나 하며지냈다. 그런데 그 친구가 이곳 생활이 따분하니 다시 사우디에나 가자고 설득한다.
일년 반 정도 근무하니 싫증도 나고하여 포항제철을 퇴사하고 서울로 다시 올라와 사우디에 갈 준비
를 하였다.



그런 와중에 한남동에 이슬람교가 있다는 소리를 듣고 79년 말 부터 이슬람교에 다니면서 새로운 삶의
길이 열리기 시작했다. 전에부터 많은 술을 먹던 술고래가 술을 끊게 되었다니 신통한 일이다. 혼자서
막걸리 한말정도는 마시고 소주는 안주없이 몇병을 먹던 내가 술을 멀리하기 시작했다. 몇달을 다니다
5월경에 다시 사우디행 여객기에 몸을 실었다 3번째에는 사우디의 수도인 리야드 국제공항 현장에서
(K. 토건) 일하게 되었다 .



리야드 국제공항 현장은 대단히 큰 공사 현장이다. 미국의 벡텔이란 회사에서 공사를 낙찰받아 이십여개의
건설회사에 공사를 하청 주었으며, 우리나라도 십여개의 건설회사가 들어와 일하고 있다. 특히한 것은
숙소 관리와 식당등은 한 회사가 전문적으로 맡아 관리하고있다. 덕분에 숙소는 지끔껏 국내 회사에서
와는 달리 아주 쾌적하게 시설이 잘 되었있다. 한 방에 두명씩 잠 잘 수 있도록 하였으며 대규모 식당이
숙소 주위에 여러개 나누어져 있으며 아무 식당에서나 식사를 할 수있다.
세계 각국의 근로자들이 있는 관계로 양식, 한식, 중식 등이 있으며 자기 마음껏 먹을 수있다. 우리나라
근로자들이 욕심들이 많아서 음식을 너무 많이 가져와 다 먹지 못하고 버리는 경우가 많아서 식당 관계자
한테 지적을 받기도 하였으며 너무 많은 양의 식사를 하며 식후에는 디저트로 아이스크림도 먹을수 있는데
하도 많이 갖다 먹으니 아이스크림이 얼 사이도 없어,나중에는 물만 나오기도 하는등 식사 예절이 안좋아
챙피하기도 하였다. 아침식사 후에는 각 지역으로 나가는 버스들이 많이 있는데 이것도 한 회사에서 관리
하여 자기의 가는 목적지의 버스를 타기만 하면 된다. 이러한 생활에 익숙치 못한 나로서는 현장과 숙소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것이 불편하기만 하였다.



이곳 숙소 주변은 담으로 막아놓아 외부인들이 못 들어오게 하였다. 담 밖에는 아담한 마스짓드가 있어 여기
근무하는 무슬림 근로자들을 위한 휴식처가 되기도 한다. 마스짓드란 단순히 예배드리는 장소만을 뜻하지를
않는다. 아무때나 이곳에 와서 꾸란을 읽고 피로하면 잠도 자기도 한다. 국내에서 몇달 한남동 중앙성원에
다니긴 하였지만 입교를 하지는 않았었다. 많은 한국인 근로자들이 있지만 무슬림은 없었기에 내가 성원에
가니 무척이나 반갑게 맞아준다. 이맘(예배 인도자)께서 이름을 물어보는데 아직 이슬람 교명이 없다고 하니
샤하다를 하라고 한다. 샤하다, 앗 슈하다 알라 일라라후 와 앗 슈하다 안나 무함맏둘 라수룰라. (나는 증언하
노니 알라외에는 신이 없고 무함맏은 하나님의 사도이다)를 하라고 한다. 샤하다를 하니 교명을 무함맏 알리
라고 지어주셨다.(80년 6월) 지금의 무스타파는 국내에 귀국하여 다시 교명을바꿨다. 한번은 교명을 바꿀수
있다. 예멘에서 왔다는 이맘이 무척 친절하게 대해 주어서 이들과 같이 예배 드리는 것이 불편 하지는 않았다.



여기에는 세계 여러나라에서 온 사람들로 인종 전시장을 방불할 정도로 국적과 피부색이 다른 많은 사람들이
똑같은 방식으로 예배드리는 것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나중에는 리야드 시내에 있는 어느 성원에서도 꺼리낌
없이 방문하여 예배드리곤 하였다. 그러나 이곳에서의 생활은 순탄 하지 못하였다 여러가지 사정으로 인하여
만기를 채우지 못하고 조기 귀국하게 되었다. 그때에 남아공화국에서 왔다는 백인 친구가 있었는데 여기에서
계약을 끝내면 자기의 회사에 취업을 시켜 주겠다는 말을하며 간곡히 말렸지만 나의 고집은 막지는 못하였다.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조기 귀국을 하고나니 가족들 보기에도 민망 하였다. 나에게는 딸과
아들 둘이 있는데 아들들은 태어날 때 한번도 보지를 못하였고 아이들 어린시절은 외국에
다니느라 제대로 보살펴 주지도 못하였으니 아버지의 역할은 0 점이랄까, 또한 젊은 시절
혼자서 얘들 뒷바라한 집사람에게는 미안할 뿐이지만 81년도에 다시금 사우디행 비행기에
올랐다. 이번에는 경남기업으로 입사를하여 사우디 리야드에 있는 주택공사 현장으로 발령
받았다. 담맘에서 리야드까지 비행기 좌석표를 구하지 못하여 열차를 이용하게 되었다.
사우디에서는 하나뿐인 열차라고 한다. 터키가 만든 터키와 사우디 간의 노선은 지금은 없고
이 기차이 유일하다고 한다. 13시쯤 열차를 타게되어 새로운 눈으로 열차밖을 구경하고 있는
데 열차 뒤편에서 아잔 (예배시간을 알리는 소리)소리가 울리는 것이 아닌가. 승객들이 뒤편
으로 가기에 따라 가보니 열차 맨 뒤칸에는 좌석이 없는 예배실이었다 .



화장실에서 우두를 하고 예배를 보는 것이다. 특히하게 나이 든 사람도 있는데 젊은분이 이맘
(예배 인도자)을 하는 것이다. 왜 그런가 물어보니 나이에 상관없이 젊은 사람은 멕카에 이맘
대학을 다니는 학생이 라고하며, 이슬람 지식을 잘 아는 사람이 예배를 인도 한다고 한다.
한번에 예배를 다 볼수 없으니 예배가 끝나면 다른 사람들과 교대를 하여 예배를 드린다. 나도
그들과 같이 예배를 드리며 색다른 경험을 하였다. 또한 여행중에는 단축 예배를 드린다 하여서
아슬(오후) 예배는 4라카를 하는데 2 라카로 끝내는 것이다 . 열차 속도가 왜 이리 늦은지 짜증
날 정도이다. 하기사 사우디 사람들은 바쁜것이 없고 시간 관념이 없는 나라이다. 그들과 약속을
하면 부크라(내일)하면 그만이다. 또 인샬라(신의 뜻이라면) 라고 말하면 약속은 지켜질 수도 있고
못 지켜도 어쩔 수 없다나. 열차는 저녁때가 되어서야 도착하였다. 주택공사 현장까지는 버스로 한
시간 정도 거리에 있다.



리야드시 외곽에 위치한 이곳은 경남기업 말고도 부근에 S주택에서 아파트 공사를 하고 있었다.
이제는 사우디 아라비아 전역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건설하는 수 많은 건설 현장을 볼 수 있다.
내가 이슬람에 입교한 후 알게 모르게 회사로부터 많은 제재를 받는다고 느껴졌다. 본부에서 멀리
떨어진 외진곳으로 나가야 했으며 근무 시간에는 예배보지 말라는 압력을 받기도 하였다.
나도 많은 사람들이 있는 본부에 있기보담 한적한 곳에서 근무하는 것이 더 나았다. 이곳은 기독교
인들이 많아서인지 작은 교회도 있었고 불교인들을 위한 작은 법당도 많들어 주었지만 현지인 특히
파기스탄 근로자들이 있었지만 예배드릴만한 곳이없어 개별적으로 숙소에서 예배를 드리고있었다.



또한 내가 무슬림이라고 말하니 의혹의 눈으로 보는 것이다. 믿는척 하면서 어떤 보상을 바라고
무슬림이 되었나 하면서 집요하게 이슬람에 관하여 물어 보는데 사실 그때만 해도 이슬람에 관
하여 잘 알지 못할 때라 그들에게 시원하게 대답해 주질 못하였다. 또한 무슬림이 되면 사우디
정부에서 많은 돈을 준다는 근거없는 낭설이 있을 때이다. 본부에서 약 1시간 정도 떨어 진 한
적한 곳에서 근무하니 혼자 예배보긴 편했다. 그때만 해도 공개적으로 예배드리지 못하고 아무
도 없는 곳에가서 조용히 예배 보곤 하였다 단식 월인 라마단이 돌아왔다.



나도 한번 단식을 해 보리라 마음먹었다. 우리가 아는 라마단 단식은 해뜨기전과 해질녁까지
물과 음식을 먹지 않는 것으로 아는데 새벽 파즈르 예배전에 식사를 마쳐야 한다. 새벽예배는
해뜨기전 2시간전에서 1 시간 반까지가 제일 적당하다고 한다. 하얀실과 검은 실이 구별될 때
까지가 가장 좋은 시간이다. 그래서 이슬람의 예배 시간은 계절에 따라 시간이 달라져 해뜨고
지는 시간에 맞추어 예배드리는 것이 적합한 것같다. 막상 단식을 해보니 너무 어려운 것 같다.
해가 뜨고 나면 더위가 시작 되는데 배고픔은 참을 수 있다고 해도 갈증은 참기 힘들다. 더구나
여러 사람이 이용하는 식당에서 나 혼자를 위해서 일찍 식사 준비를 하는 것도 아니고 저녁 때
음식을 남겨 두었다가 먹어야 하니 그불편함은 말할 수 없다 .일주일 정도 지나니 스트레스를
받아서인지 머리가락이 빠지기 시작한다. 동료들도 이제 그만하라고 만류 하는 것이다 . 나도
더이상 하다가는 안될 것 같아 일주일 만에 단식을 포기하였다. 아직은 내가 신앙심이 부족하여
이만한 고통도 감당하지 못하고 포기하다니 ...



사막의 밤 하늘은 정말로 아름답다. 우리도 예전에 시골에서는 밤하늘에 많은 별들을 볼 수 있었다.
지금은 도시에서는 별을 보기조차 힘들지만, 가끔은 밤중에 혼자 모래언덕에 몸을 누이고 밤 하늘
을 바라 보기도 하였다. 어쩌면 이다지 많은 별들이 영롱하게 빛나고 있는지 정말 황홀하다. 더군
다나 손을 뻗으면 별이 손에 잡힐듯이 가깝게 느껴진다 나는 시인은 아니다만 이렇게 아름다운 별
들을 보고 있자니 절로 감탄의 말이 나온다. 그래서 이곳 사막에서 세계의 모든 종교가 나왔는지도
모르겠다. 유태교, 기독교, 이슬람교, 조르아스트교(배화교) 가까운 인도에서는 힌두교와 불교 등
모든 종교가 이곳에서 시작 되었다고 하여도 무방하겠다. 이렇게 척박한 사막에서는 믿음이 없이
살아 가기에는 정말 힘들 것같다. 모든걸 신께의지하여 어려운 삶을 이어가는지도 모르겠다.



리야드 시내에 쇼핑을 갔다. 때마침 라마단 단식의 기간이라 모든 상점들은 문을 닫았다. 낮에는 문을
닫는 상점들이 많이있고 저녁에나 문을 연다고 한다. 그러나 더러는 문을 연 상점들이 있어 음료수를
사러 들어가니 주인이 원래 라마단 기간에는 음료수를 팔지 않는다고 하면서 외국인들이니 들어와서
음료수를 마시라고 한다. 나의 목적은 쇼핑에 있지않고 마스짓드에 와서 예배 볼 목적이라 동료들과
헤어져 마스짓드에 들어갔다. 사우디 어느 지역이나 마찬 가지지만 많은 성원들이 있으며 그 중에는
아름답고 큰 성원도 많았다.

나는 이곳에 있는 동안 되도록이며 여러 성원들을 방문하여 많은 경험을 하고 싶었다. 성원마다 아잔
(예배 보라고 부르는 소리)의 형태가 틀리게 들렸다. 물론 그 뜻은 같지만 아잔에 음을 넣어 부르는
소리가 무척이나 인상적이며 아름다운 곳도 있다. 라마단 따라위 예배가 끝나도 돌아가지 않고 성원에
남아서 꾸란을 읽거나 휴식을 취하며 성원에서 잠자는 무슬림도 많이 있다. 라마단 기간에는 이렇게
성원에서 꾸란 공부도 하며 친구들과 어울려 이야기를 하면서 단식을 한다고 한다. 해가 넘어가고나면
마그립을 알리는 아잔 소리가 들리자 음식을 준비하여 성원안과 밖에 있던 사람들이 나누어 먹는다



양고기를 쌀과 함께 기름에 볶아서 나오는 음식과 음료수들을 무료로 제공하여 단식을 끝낸 기쁨을
다함께 나누는 것이다. 이렇게 음식을 먹고나서 저녁 예배에 들어간다. 예배를 마치고 우리들이 타고
갈 버스있는 곳엘 가니 벌써 버스는 가고 없다. 정말로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수중에는 돈도 없고
우리나라와 달리 노선 버스도 없고, 벌써 한국인 동료들은 회사 버스로 다들 숙소에 거버리고 없으니
정말 걱정이다. 할수 없이 지나가는 사우디인들한테 도움을 청했다. 회사까지 갈 수 있도록 차를 태워
달라고 하였다. 내말을 듣고있던 사우디인들이 주머니에서 돈들 모아 주는 것이 아닌가, 택시를 타고
가란다. 그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 택시를 탔다.



그러나 내가 일하고 있는 현장 주소를 모르니 난감하다. 택시 기사한테 주택공사 현장이라고 말하니
리야드 외곽에 주택공사 하는 곳이 한 두군데가 아니라고 한다. 그래서 내가왔던 방향을 가르켜 주었다.
저 쪽으로 가자고, 그러나 날은 어두워지고 찾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택시기사는 불평 한마디 안하고
공사 현장마다 들려주며 찾아 주었다. 몇 시간만에 겨우 현장에 도착하였다 .그들이 모아준 택시비는
턱없이 부족하였지만, 기사분은 웃으면서 그냥 가라고 인사를 한다. 이렇게 내가 곤경에 빠져 있을때
도와준 그들을 가끔 잊지 못하고 생각을 떠올리곤 한다. 현장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한국인들이
농사 짓는 농장 몇곳이 있다. 우리는 아리랑 농장이라고 이름 붙여진 곳을 가끔 찾아가 향수를 달래곤
하였다. 우리의 채소와 과일등을 재배하여 이곳에서도 우리의 김치를 먹을 수 있었다.



(무슬림이 되어 수염을 길렀었다. 리야드 근교 아리랑 농장에서)

사우디에 처음 왔을 때에는 김치가 먹고 싶으면 캔에 들어있는 통조림 김치를 먹으며 입맛을 달래곤 하
였다 . 그러나 이렇게 배추 무우등을 재배하는 분들이 있어서 우리들의 식탁을 즐겁게 하였다. 사우디
에서 수박을 먹어본 사람은 그 맛을 잊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 수박과 달리 길죽하게 생긴 것이 맛은
기가막히게 좋았다 .농장에서도 우리의 수박과 참외를 심고 있는데 이곳 과일에 비해 맛은 덜해서 농장
주인의 우리의 수박과 참외는 심지 않을 것이 라고 한다.



어느날 일과를 마치고 샤워를 하고 숙소에 들어 왔는데 발밑이 따끔하여 내려다보니 슬리퍼를 신은 발에
무엇이 걸려 있었다. 슬리퍼를 들고 보니 전갈을 밟고 있었다. 몸통은 내가 밟아 죽어 있었고 꼬리의 침
으로 나를 쏜 것이다. 순간 정신이 아찔해 지는 것이다. 전갈에 쏘이면 죽는다고 하는데 그러나 1시간 내
에 해독제 주사를 맞은면 된단다. 다만 의무실이 여기서 멀리 떨어진 먼곳이 있기에 걱정이다. 본부까지
가는데 발이 정강이부터 허벅지까지 마비되는 것 같다. 독이 퍼지는가 보다. 의무실에 입원하여 해독제를
맞고나니 안도의 숨을 쉴수 있었다. 의사의 말이 발바닥을 물려 다행이라고 한다. 심장 가까운 곳을 물린
다면 큰일이 라고 하면서 하루밤 안정을 취하면 괜찬다고 한다 . 이곳에선 전갈과 독거미 같은 독충들을
항상 주의를 했는데 누가 숙소 안에까지 들어올 줄은 몰랐지. 아침에 신발을 신다, 신발안에 전갈이 들어
있어 물린 친구를 보았기에 주의를 했는데... 이것도 사우디 아라비아에서의 잊지못할 추억이랄까 .



아주 먼 옛날 사우디 아라비아는 바다였던 것 같아 보인다. 공사중 모래나 자갈 재취를 하기 위하여 2-3
미터 파내려가면 자갈 속에 조개나 소라의 화석들이 많이 발견된다. 이곳 리야드는 사우디의 내륙에 위치
하고 있어 바다하고는 거리가 멀다. 그런데 바다 속 생물들의 화석이 있는 것이 전에 바다라는 느낌이다.
예쁘고 완벽한 화석들을 수집을 하였지만 집에 갔다 놔두었더니 오는 손님마다 한두개 집어 가는 바람에
지금은 몇개 남지도 않았다. 이 현장에서는 일년을 마치고 귀국하여 5년간의 사우디 생활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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