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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학의 아버지 이븐 알-하이삼

작성자
kislam0
작성일
2019-08-08 22:11
조회
20

광학의 아버지 

이븐 알-하이삼 965-1040


생애

무슬림들은 중세 인류의  과학이 발달하는 과정에서 선구적인 역할을 담당했고,

과학의 여러 분야 가운데서도 특히 광학 연구에 귀중한 공헌을 하였다. 중세 아

랍의 천재 과학자들 가운데 광학 분야에서 그리스 과학자들을 능가했던 독보적

인 권위자는 이븐 알 하이삼이었다.  그의 공식 이름은 아부 알 하산 빈 알 하산

빈 알 하이삼인데 수학, 물리학, 천문학, 기하학 뿐 아니라 의학과 철학, 심리학

등 려러 분야에서 뚜렸한 족적을 남긴 팔방미인 과학자였다.

이븐 알 하이삼은 이슬람 문명이 황금기를 구가하던 시기인 965년에 이라크 남

부 바스라에서 태어났다.  그의 혈통이 아랍인이었는지 또는 페르시아인이었는

종파가 순니파였는지 또는 쉬아파였는지 조차도 역사 연구자들 간에 논란 거리

로 남아 있다. 그는 바스라에서 이슬람 신학과 과학 서적을 폭넓게 읽었다.

알 카프터가 지은 '현자들의 이야기를  학자들에게 전함'에 따르면, 이븐 알 하

이삼은 다음과 같이 장담했다.

"내가 이집트에 있다면 나일강 물이 모자라는 대로 혹은 넘치면 넘치는 대로 항

상 유익하도록 나일강을 개조할 수 있다."

그의 호언장담이  당시 이집트 파띠마 조의 왕이었던 알 하킴 비 아므르 알라의

귀에 들어갔다.  왕은 그를 이집트로 불러 나일강의 치수를 일임하고는 그가 요

구하는 모든 것을 제공해주기로 했다. 이븐 알 하이삼은 오늘날 아스완 댐이 건

설되어 있는 지점에  댐을 쌓는다는  복안을 가지고 있었으나 막상 현지 지형을

조사해본 후에 당시의 여건으로는 실행이 불가능함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그는

왕의 질책이 두려운 나머지 자신이 제 정신이 아니라는  소문을 흘리고 1011년

부터 왕이  별세한 1021년까지 10년간 집에만 은둔하였다.  이 기간 동안에 그

는 필생의 역작들을 집필했다.

이븐 알 하이삼이 시리아로 탈출했다거나 바그다드와 바스라로 돌아왔다거나

하는 설이 있기도 했지만1038년까지는 이집트에서 살았던 것이 분명하다. 그

는 카이로에 머무는 동안  아즈하르에서 학생들을 가르쳤고 칩거 기간이 끝난

다음에 물리학, 천문학, 수학 등에 관해 수십 편의 글을 썼다.  그후 그는 안달

루스로 건너가 연구에 전념하면서 광학, 수학, 물리학, 의학 등을 연구하고 실

험하며 많은 책을 저술했다. 그는 1040년 카이로에서 세상을 떠났다.

이븐 알 하이삼은 무슬림들 사이에서는 그가 태어난 도시 바스라의 지명에 따

라 '알 바스리(바스라  사람)'라고 불렸고,  유럽에서는 라틴어식 이름인 '알하

젠'또는 '제2의 프톨레미'라는 별칭으로 알려졌다.

이븐 알 하이삼이 저술한 공학 분야 저작들 다수가 파리 소재 프랑스 국립 도

서관에서 발견되었고, 그 외에 일부 필사본들이 옥스퍼드의 보들리언 도서관

과 라이덴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업적

이븐 알 하이삼은 물리학과 과학 실험 등의 분야에서 빛나는 업적을 남겼다.

물리학 중에서도 특히 광학 분야에서는 이론 과 실제 연구에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고 할 만큼 지대한 공헌을 했다. 광학에서 오목거울을 이용한 광학의

체계 연구에 집중되어 있다. 그는 입사각과 굴사각의 비율이 일정하지 않다

는 것을 입증하는 한편 렌즈의  확대율에 대한 여러 권의 연구서를 냈다. 알

하이삼의 광학 연구서들은 이슬람세계에서 이븐 루쉬드와 카말 알 딘 알 파

리시(1320년 사망)등 많은 과학자와 철학자들에게 전수되어 아랍과학의 발

전을 가져왔으며 라틴어로 번역되어  유럽의 후세  과학자들에게도 많은 영

향을 끼쳤다.14세기 무렵 페르시아의 알 파리시 또는 독일의 프라이베르크

의 테오도릭(1250-1310)과 같은  학자들이 무지개가 생기는 원리를 규명한

것은 이븐 알 하이삼의 키탑 알 마나지르(광경의 서)의  설명에 기반한 것이

었다.

 

저서

 

이븐 알 하이삼은 아랍어로 약 200여 권의 책을 저술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

며 그 가운데 55권이 현재까지 전해오는데 아직 번역되지 않은 책들이 상당

수 있다. 저서중 일부는 라틴어 번역본만 존재한다. 달 표면에 이브 알 하이

삼의 이름을 딴  분화구가 있고, 1999년 2월 7일에 발견된 소행성에 59239

알하젠 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인류의 과학사에 남겨진 그의 뚜렷한 족적

을 보여주는 것이다. 파키스탄의 아가칸 대학교 의대 안과에는 그의 이름을

딴 교수직이 설치되어 있고,  이라크에서는 2003년 발행한 1만 디나르 화폐

에 그의 초상이 들어가기도 했다.

 

이븐 알 하이삼은 그리스 학자들이 세운 전통적인 시각 인식 이론에 근본적

인 수정을 가했다.  이븐 알 하이삼 이전까지는 인간의 눈이 물체에 빛을 보

내 물체를 본다는 프톨레미와 유클리드의 이론이 널리 인정받고 있었다. 이

븐 알 하이삼은 이를 뒤집어 광선이 물체로부터 눈에 도달하는 것이 시각적

인식의 원리라고 갈파하였다.  그의 설명은 단순한 가정이나 가설이 아니라

인체의 해부학적 분석과 기하학적 논의에 근거한 것이었다.

 

'키탑 알 마나지르'(광명의 서)는 이븐 알 하이삼의 저작 중에서 가장 영향력

이 큰 광학 연구서로서 총 7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011년부터 1021년까

지 10여년에 걸쳐 저술되었다.  이 저서는 12세기 말과 13세기 초 사이에 이

름이 알려지지 않은 어느 사제에 의해 라틴어로  번역되어 로저 베이컨과 비

텔로 등에게 영향을 주었다. 1572년에 이르러 독일의 과학자 프리드리히 리

스너는 이 책을 바젤에서  인쇄 출간하였다.  이후 이 책은 서양의 과학 연구

자들에게 필독서가 되어 케플러의 천문학 이론 발달에도 기여하였다.

 

눈에 대한 기존 이론을 깨다

 

중세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시각을 통해 인식하는 원리에 대해 논란이 계속되

었으며, 학자들은 두 가지 상반된 이론으로 그 원리를 설명하고자 하였다. 프

톨레미나 유클리드는 시각이 눈에서 나온 광선에 의거한다는  방사론을 고수

했고, 반면에 아리스토텔레스와 그 제자들은 물체의 형태가 눈으로 들어간다

는 통과론을 주장하였다. 이에 대해 이븐 알 하이삼은 눈을 감았다가 뜨는 즉

시 먼 곳에 있는 별이 보인다는 점을 들어  방사론과 통과론을 모두 부정하였

다. 그는 시각적 인식이란  광선이 물체의 지점에서  시작하여 눈에 도달하는

결과 일어나는 것이라고 실험을 통하여 설명하였다. 또한 기존의 기하광학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  물리학 가설들을 통합하여 근대 물리광학의 토대를

세웠다.

 

이븐 알 하이삼은 광선이 직진한다는 사실을 입증하였고, 굴절과 반사, 렌즈,

거울 등과 관련한 여러 가지 실험을 실시하고 그를  바탕으로 이론을 정립하

였다. 또한 그는 역사상 처음으로 반사광선과  굴절광선을 수직 방향과 수평

방향으로 분리함으로써  기하광학의 획기적 발전을 이루었다.  그는 특히 빛

이 서로 다른 두 매질을  통과할 때 생기는 현상을 규명한  스넬의 법칙과 유

사한 굴절광선 모델에 착안하였으나 결과를 법칙화 하지는 못했다.

 

이븐 알 하이삼은 암실 카메라와 바늘구멍 카메라의 원리를 명확히 밝힌 최

초의 과학자이기도 했다. 그 이전에 아르스토텔레스, 테온, 알 킨디, 중국의

묵자 등은 빛이 작은 구멍을 통과할 때 생기는  현상에 대해 언급한 바 있었

지만,  이 빛이 구멍 저편의 사물의  모양을 온전히 스크린에  투사하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이븐 알 하이삼은 램프 실험을 통해 암실 외부의 이

미지를 내부의  스크린으로 이동시키는 데 성공한 최초의 인물이다. 사진기

를 뜻하는  카메라라는 낱말은 '어두컴컴한 선실'을 뜻하는 아랍어 단어 '카

마라'에서 유래하였다.

 

물리광학 외에 생리광학이라는 새로운 분야의 장을 연 것도 이븐 알 하이삼

의 저서 '키탑 알 미나지르'였다. 이븐 알 하이삼은 의학  안과학 해부학, 생

리학 등의 주제들을 포함하여 갈레노스(129-199)의 의학 저술에 자신의 의

견을 덧붙였다. 그는 '키탑 알 미나지르'에서 시각적 인식의 과정과 체계 눈

의 구조, 눈에 맺히는 기전 등을 서술하기도 하였다.

 

해부학과 관련하여 이븐 알 하이삼이 이룩한 가장 독창적인 공헌은 눈의 기

능을 광학 체계로 파악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암실 카메라 실험은 그

에게 물체의 표면에서 비롯된 빛이 스크린 위의 대등점에 상을 맺는다는 이

론을 전개하는 데 충분한 경험적 근거를 제공해 주었다.  그는 눈과 암실 카

메라의 비교를 통해 해부학과 광학의 통합을 시도하였고, 그 결과 생리과학

의 이론적 근거가 마련되었다. 바늘구멍 카메라 시험에서 얻은 투사의 핵심

원리에 기초하여, 동공이 렌즈의 구멍과 유사한 구실을 하며 인간의 눈에서

도 동일한 전도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을 인식했다.  이븐 알 하이삼은 수정

체가 광경을  받아들이는 기관이라는 이븐 시나의 견해에  동의하는 오류를

범하였다. 그러나 망막이 시각적 인식에 관여한다는 사실을 통찰하였다.

 

다른 저서에서 이븐 알 하이삼은 빛이 투명한 매체나 반투명 매체에서 분산

되는 현상을 관찰하고,  눈의 해부학과 착시 현상을  심도 있게  연구하였다.

암실 카메라와 바늘구멍 카메라를 발명하고,  날씨와 무지개의 관계를 밝히

는 한편  대기의 밀도를 측정하였다.  일식과 월식, 황혼, 월광 등 천체 현상

을 관측하고 절반사, 볼록거울, 확대경 등의 중요한 원리들을 발견하였다.

 

또한 이븐 알 하이삼은 물리학의 법칙을 통해 천체의 운행을 설명할 수 있다

고 보았다. 천체물리학 분야에서 그는 질량 간의 인력을 연구하였고, 중력에

의한 가속도의 크기를 알고 있었던 듯하다.  물체의 비중은 지구 중심으로부

터의 거리에 따라 달라진다는 공식을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키탑 알 마나지

르' 이전의 저작에서 이븐 알 하이삼은  물리학과 계량천문학을  성공적으로

결합시키고 천문학과 천체물리학에 실험 방법론을 적용했다. 달이 태양빛을

거울처럼 반사한다는 당시의 세론을 부정하고,  달 표면 중에서 태양빛이 도

달하는 부분에서만 빛을 발할 뿐이라고 주장하였다.

 

 

근대과학 연구 방법론의 개척자

 

이븐 알 하이삼이 속한 종파에 관한 분명한 기록은 없다. 혹자는 그가 순니파

신학자 알 아샤리의 추종자로서 무으타질라파를 반대하였고 하는가 하면, 혹

자는 그가  무으타질라파였다고 하며 심지어  쉬아파였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그의 종파가  무엇이었든  그는 독실한 무슬림이었다고 전해진다. 그는

프톨레미의 이론에 의문을 표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진리는 진리를 위해 구하는 것이다. 진리를 발견하기는 어렵고 그 길은 험난

하다. 진리가 어둠 속에 잠겨 있기 때문이다....그러나  알라는 과학자를 실패

로부터 건져내지 않으시고 과학을 오류의 함정에서 구해주지 않으신다.... 진

리를 구하는  사람은 옛 선조들의 글을 공부하며  자신의 기질에 따라 선조들

을 믿고 따르려는 스스로의 신조를 의심하고 선조들로부터 모은 자료에 의문

을 제기하며  논의와 논증을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인간은  천성적으로 온갖

종류의 불완전과 결핍에  노출되어 있으므로 그들의 말을 따라선 안 된다. 그

러므로 진정으로 진리 탐구를 목표로 하는 과학자는 선대학자들의 이론을 연

구하되 이론의 반역자가 되어 이론의 핵심과 주변의 모든 각도에서 비판하는

일에 전념해야 한다.  또한 편견이나 관대함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끊임

없이 스스로를 비판하고 의심해야 한다.'

 

대다수 역사가들은 이븐 알 하이삼이 근대과학 연구 방법론의 개척자라는 데

의견을 같이 한다. 이븐 알 하이삼은 가설의 검증과 귀납적 추론의 실증을 위

해 엄격한 실험 방법을 적용하였다. 과학사가들은 프톨레미의 전승을 의심하

고 실험을 도입하고  해석을 가한 이븐 알 하이삼의  연구 방법에서 근대성을

발견한다.

 

 

박재원. 한국외국어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