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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정복의 영웅 타리끄 빈 지야드

작성자
kislam0
작성일
2017-09-13 09:24
조회
271

스페인 정복의 영웅 타리끄 빈 지야드

스페인을 정복하라



타리그 빈 지야드는 북아프리카 베르베르 부족의 하나인 나프지와 족에서 출생하였다. 그의 아버지

는 아랍 군대가 북아리카를 점령한 초기에 이슬람을 받아들인 초기 개종자였고 이는 자연스럽게 타

리끄 빈 지야드가 무슬림이 되는 계기가 되었다. 아버지가 사망하자 타리끄는 북아프리카 무슬림군

대에 들어갔다. 그는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군인의 용맹함과 신앙적 열정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그는 북아프리카 총독인 무사 빈 누사이르의 신임을 얻게 되었다. 북아프리카가 무슬림들의 지배하

에서 관용과 정의와 번영의 축복을 누리고 있을 당시, 스페인은 서코트 통치자의 압제와 광신 하에

서 신음하고 있었다. 여성의 명예와 정결은 보호받지 못했고 농부들에게는 무거은 세금이 부과되고

있었다.


백성들이 가난으로 신음하고 있을 때 통치자와 그들의 추종자들은 사치에 열중하고 있었다. 서코트

통치하에 고통 받던 수많은 피난민들인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은 무슬림 아프리카에 피난처를 구했

다. 당시 세우타의 총독이었던 줄리앙은 딸의 교육을 위해 톨랜토의 서코트 왕국에 보냈으나 그녀는

로테릭 왕으로부터 적절한 대접을 받지 못했고 오히려 성적 학대를 당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소식을

접한 줄리앙은 딸에 대한 복수로 북아프리카의 총독 무사 빈 누사이르에게 서코트 왕국에 관한 모든

정보를 제공하며 그 땅을 정복할 것을 호소하였다. 줄리앙의 정보를 토대로 무사 빈 누사이르는 칼

리파의 지휘 하에 스페인 정복에 대한 허락을 구하는 서신을 보냈다. 칼리파의 승인을 받자 빈 누사

이르는 칼리파의 지휘 하에 스페인 남쪽 해안에 먼저 정찰대를 파견하였다. 타리끄는 아랍 군대가

서코트 왕국을 정복하기에 매우 적절한 시기라고 무사에게 보고하였고, 무사는 711년 5월 타리끄로

하여금 7천 명의 무슬림군인들을 이끌고 스페인을 정복하라고 명하였다. 타리끄의 군대는 소규모로

나누어 줄리앙이 제공한 배로 해협을 건넜다. 스페인에 상륙한 무슬림군대는 산 아래 언덕에 집결하

였는데, 후에 이 산은 타리끄의 산(자발 타리끄)으로 불리게 된다. 언덕에 그의 병사들을 집결시킨

타리끄 빈 지야드는 해협을 건널 때 타고 온 배를 모두 불태우게 한 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돌아가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 남아있는 선택은 두 가지다. 하나는 이 국가를 정

복하고 여기에 정착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여기에서 싸우다가 죽는 것이다."

그는 오로지 스페인 정복만이 그들이 나아갈 길이라고 강조하며 군사들을 독려하였다. 이러한 상황

에 대해 후대의 유명한 인도의 시인 이끄발은 이렇게 노래했다.


"타리끄가 안달루스 해변에서 보트를 불태웠을 때

그의 군인들은 그의 행동이 현명하지 않다고 말했네.

어떻게 그들은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돌아갈 수 있는 방법들을 파괴하는 것은 이슬람의

율법에 위배되는 것이지. 그러자 타리끄는 그의 검

위에 그의 손을 올리고선 알라가 계신 모든 국가는

바로 우리의 국가이다 라고 외쳤지."


타리끄의 말에 용기를 얻은 그의 군대는 전진을 방해하는 모든 저항들을 붕괴시키며 이베리아 대

륙으로 진격하였다. 아랍 군대의 침공을 막기 위해 서코트 왕인 로테릭은 십만 명 이상의 대규모

군인을 소집하였다. 타리끄의 군대 역시 무사가 보낸 오천 명의 군사들로 병력이 증강되었고, 그

의 군대는 일만 이천 명에 이르렀다. 두 군대는 잔다의 갯펄 해안인 바르바테 강 입구에서 만났고

711년 7월 19일 결정적인 전투를 벌였다.


서코트 왕국은 군인들의 숫자나 무기에 있어서 아랍 군인들의 우위에 있었다. 그러나 죽기를 각

오한 타리끄의 아랍무슬림군의 공격은 치열하였고, 서코트인들은 엄청난 손실을 입고 완전히 패

퇴하였다. 로테릭 왕은 도망가다 강에 빠져 죽었다. 타리끄의 이러한 놀라운 승리는 서코트인들

의 사기를 꺾었고, 그 이후 그들은 감히 앞이 트인 평지에서는 무슬림과 맞서지 못했다. 이 결정

적인 전투 이후 타리끄의 군대는 거의 저항을 만나지 않고 진격하였다. 타리끄는 그의 군대를 네

개의 소규모 부대로 나누어 코르도바, 말라카 그리고 그라나다로 향하게 하였고 자신은 주력 부

대를 이끌고 서코트 왕국의 수도인 톨레도로 진격하였다. 이 모든 도시들은 큰 저항 없이 함락되

었다. 서코트인들은 타리끄의 민첩한 이동과 강력한 공격에 의해 무력화되었고, 서코트의 군대

들은 그의 앞에서 도망치기에 급급하였다.


서고트 왕국의 수도인 톨레도에서 타리끄는 그의 장군이자 아프리카 무슬림 총독인 무사 빈 누사

이르와 합류하였다. 이때부터 두 사람은 나란히 서고트 왕국을 종횡으로 정복하였고 채 2년이 되

지 않아 스페인 전체가 이들의 손에 들어갔다. 무사와 타리끄는 스페인을 넘어 유럽을 정복하려

하였고, 그들의 전진을 멈추게 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이 유럽의 정복을 계획하고 있을 때

칼리파가 그들을 다마스쿠스로 불러들였다. 이는 정복에 대한 격려와 이들의 업적에 대한 보상을

수여하기 위함이었고 타리끄와 무사는 급하게 다마스쿠스에 도착하여 칼리파의 명령에 복종하였

다. 타리끄는 이후 더 이상 유럽 정복 전쟁에 참전하지 않았고, 다마스쿠스에서 평안한 삶을 누리

다 사망하였다.



이베리아 반도의 새로운 시대



무슬림들에 의한 스페인의 정복은 이베리아 반도에 새로운 시대를 열어 주었다. 그것은 종교적

자유가 완전히 인정되는 사회적 혁명을 가져왔다. 억압과 박해는 관용의 관대함으로 대체되었고

정복된 기독교 도시들도 파괴없이 온전히 보존되었다. 무슬림군인들에 의한 개인적 폭력 행위는

심하게 처벌하였고, 개인의 재산과 부동산은 몰수하지 않았다. 대신 무슬림들은 합리적인 조세

제도를 도입하여 공정한 세금을 부과하였으므로 백성들의 불만은 일어나지 않았다. 또한 종교적

관용을 보여, 기독교인들에게 그들 간의 분쟁을 해결하는 재판관도 허락하였다. 이러한 현명하

고 관대한 무슬림 정복자들의 행정은 긍정적 효과를 가져왔다. 두려움으로 그들의 고향을 먼저

떠났던 성직자들을 포함한 기독교인들은 돌아왔고 그들은 행복하고도 번영된 삶을 살았다.



한 기독교 작가는 당시 스페인의 문명적 발달을 예찬하였다.



"무슬림은 중세의 경이롭고 찬란한 코르도바 왕국을 건설하였고, 모든 유럽인들이 야만스런 무지

와 싸움에 빠져 있을 때 홀로 서구 앞에서 밝고 빛나는 지식과 문명의 횃불을 들고 있었다."





이종화. 명지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