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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빌라의 순교자 이맘 후세인

작성자
kislam0
작성일
2017-12-07 20:26
조회
1267

카르빌라의 순교자

이맘 후세인 Imam Hussein. Ali 626-680

 

 

카르빌라의 순교

이맘 후세인은 예언자 무함마드의 외손자이며, 쉬아 무슬림의 3번째 이맘이다. 그의 아버지는

예언자 무함마드의 사촌 동생이자 사위인 제 4대 정통 칼리프 알리로 쉬아파의 초대 이맘이다.

쉬아 무슬림들은 후세인을 이슬람에서의 '순교자들 중 순교자'로 말하고 있다. 또 그들은 우마

이야조의 초대 칼리파가 되는 무아위야가 후세인의 형인 하산이 무아위야에게 충성 서약(바이

야)을 하는 조건으로, 자신이 죽으면 하산에게 칼리파직을 계승하기로 약속했었지만 무아위야

는 이 약속을 어기고 하산을 독살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680년,  우마이야 조의 두 번째 칼리파 지위는 무아위야의 아들인 야지드에게 승계되었다. 칼

리파가 된 야지드는 후세인에게 자신에 대한 충성의 맹세(바이아)를 요구하였다. 그렇지만 후

세인은 이를 거부하고 메카의 하람 성원으로 피신하여, 그곳에서 4개월 정도를 보냈다. 이 때

이라크 쿠파 주민들이 그에게 지지를 표하며 그를 쿠파로 초청하는 서한을 보내오자, 그는 가

솔들을 이끌고 쿠파로 가기로 결정하였다.  메카를 떠나기 전,  몇몇 원로들이 그를  말렸으나

후세인은 이번 여행이 그에게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여정이지만,  야지드에 대항하고 자신

을 지지하는 쿠파 주민들을 위해 떠나야 한다고 말했다.

 

이라크에서 후세인을  초청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칼리파 야지드는 우마이야 가에 충성을 다

하고 있던 바스라 총독 우바이둘라 빈 지야드를 쿠파 총독으로 겸임  발령하고는 쿠파에서 일

고 있는 우마이야 조에 대한 반정 음모를 철저히 소탕할 것을 명령하였다.  우바이둘라는 3만

여명의 병사들을 동원하여 쿠파로 향하던 후세인과 카르발라에서 마주치게 되었다.

 

이 때의 비극적 상황들이 여러 쉬아 전승들에 담겨 전해오고 있다. 후세인과 여동생 자이납은

오빠에게 말했다.  "여기 도착하니 세상의 모든 슬픔이 내 가슴에 들어와 앉는 것같아요. 우리

에게 어떤 재앙이 닥칠지 모르니, 오빠! 이곳을 빨리 떠납시다."

 

그러나 후세인은 다음과 같이 말하며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이곳이 우리가 고난을 당할 곳이다. 이곳에 남아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이슬람력 61년(680) 무하람달 10일인 이 날에 야지드가 보낸 우바이둘라 군대는 이라크 남부

유프라테스 강 근처의 카르빌라에서 후세인과 그의 가솔들을 포위하고 약 9일간이나 물 공급

을 차단했고,  10일째 되던 날 무자비한 살육을 단행하였다.  여기서 후세인과 그의 가솔들은

여인과 어린이를 제외한 전원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였다.  역사가들은 이 비극적 사건을 카

르빌라 참극이라고 부른다.

 

 

쉬아파의 실질적 출현

 

몸이 두 동강이 난 후세인의 비참한 죽음이 알려지자 이라크 전역은 알리 가문에 대한 동정과

우마이야 가문에 대한 증오로 가득 차게 되었다.  후세인과 동맹하기로 약속했던 쿠파 주민들

과 많은 이라크인들은 후세인을 애도하면서 참회자들(앗 타와빈)이 되었다. 무참한 죽음을 당

한 예언자의 외손자를 추모하면서 그를 초청하여 화근을 만든 것을 후회하게 된 것이다. 카르

빌라 참극으로 쉬아 알리들(알리의 추종자들,  이 말을 줄여 쉬아로 부르게 됨)은 전열을 하나

로 집결시켜가며 후세인의 복수를 맹세하게 되었다.  게다가 그들에 대한 조사와 박해가 계속

이어지자, 지하 세계로 숨어 들어가 적개심을 키워가며 조직화하였다.  그리고 새롭게 형성된

교리관에서 후세인은 신의 뜻에따라 카르빌라에서 비극의 최후를 맞아야 할 운명의 순교자로

받아들여졌으며, 그것은 '거룩한 순교'로 평가되었다.

 

이 비극적인 소식이 이슬람 세계 곳곳으로 퍼져 나가자, 놀라움과 동정으로 쉬아주의에 동조

하는 풍조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라크인들은 물론이거니와  아랍의 지배에서 독립을 원하

던 많은 페르시아인들이 쉬아주의의 열광적인 지지자가 되었다.  이렇게 후세인의 죽음과 카

르빌라 참극은 쉬이파의 실질적 출현을 낳는 쉬아 역사의 분기점이 된다.

 

쉬아 무슬림들은 오늘날까지 이 비극적인 순교의 날을 수난의 날로 여겨 추모와 애도의 기념

행진을 하면서 그날의 고통을 되새기고 있다. 열성적인 신도들이 무리지어 "야 후세인! 야 후

세인!" 애통한 외침을 반복하면서 울며 스스로를 매질하고 자해하면서 후세인 추모행진을 한

다. 그리고 후세인의 고통을 대단히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재현하는 애도의 연극공연을 한다.

카르빌라의 비극이 1,330년 전에 일어난 것이 아니라 마치  어제 일어났던 일처럼 생생히 느

끼려 한다.

 

후세인이 묻혀있는 카르빌라는 모든 쉬아 무슬림들에게는 가장 성스러운 성소가 되어 메카

메디나보다 더 중요한 순례지가 되었다.  잘려진 몸의 일부분은 카이로로 옮겨져 유명한 칸

카릴리 시장 근처에 안장되었고,  여기에 마스지드가 세워져  이집트에서 유명한 후세인 모

스크가 되었다.

 

쉬아 무슬림들에 있어서 이맘 후세인은 그들을 알라께 연결시켜주는 중재자로서의 역할과

함께 죄를 용서할 수도,  천국으로의 인도를 이끌어 줄 수도 있는 인물로 간주된다.그리고

카르빌라에서 몸이 두 동강이 나 죽은 후세인의 순교를 애도하는 것은 그의 중재를 얻을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의 하나로 인식된다. 애도 행사에 참가한 사람은 쇠사슬로 자신의

등을 매질하거나 자신의 가슴을 양손으로 번갈아  치는 행위를 반복하며 그의 고통의 만분

의 일이라도 느끼려 하고, 당시 그를 지원하지 못했던 쿠파인들의 죄를 상징적으로 속죄하

고 참회한다.

 

쉬아 무슬림이 대다수인 이란에서 이맘 후세인의 존재와 순교의 역사는 예나 지금이나 그

들 삶의 종교적 표상이다. 1978년 호메이니의 이슬람 혁명 때에도 후세인이 흘린 피는 그

가 행한 중요한 정치적 역할로 비견되어 등장한다. 아야툴라 호메이니는 1978년 11월 23

일 이란 국민들에게 다음과 같은 연설을 했다.

 

"우리는 지금 위대한 영웅심과 자기 희생의 달인 무하람 월을 맞이하고 있다.  이 달에 인

간의 고귀하고 순수한 피는 압제자의  무력에 대항해 승리했으며,  진리는 거짓을 물리쳤

다. 역사를 통해 무하람 달은 다음 세대들에게 무력에 대항에 승리하는 길을 가르쳐 주었

고, 막강한 권력도 진리에 의해  패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시켜 주었다.  무하람 달에

우리 무슬림들의 지도자인 이맘 후세인은 역사의 모든 압제자들에 대항하여 어떻게 투쟁

할 것인가를 가르쳐 주었다."

 

호메이니는 세속화된 이란 팔레비 왕정의 국왕, 샤에  대항하는 자신의  투쟁을 야지드에

대항한 이맘 후세인의 투쟁과 견주었다.

 

이렇듯 이맘 후세인은 오늘날까지  쉬아 무슬림들의 신앙과 삶 속에 살아있는  존재이다.

매년 무하람 달이 되면  그들은 한 달간을 추모의  기간으로 정하고  결혼식도 하지 않을

정도로 이맘 후세인을 기리고있다. 거리 곳곳에는 무함마드, 파띠마, 알리, 하산, 후세인

을 의미하는 다섯 손가락 조형물과 이맘 후세인의 초상화가 걸려있다. 아슈라(무하람 달

10일)전날 밤에는 사슴과 비둘기 등으로 장식한 이맘 후세인 군대의 깃발이 나부끼고 불

촛대들이 활활 타오르며 거리 곳곳에는  촛불의 제단이 마련되어  이맘 후세인의 비통함

을 기리는 행사가 지속된다.

 

쉬아들에게 이맘 후세인은 단순한 종교 지조자의 위상이 아니라 신성한 존재로 다른 사

람의 죄를 대신해 희생된 순교자인 것이다.

 

유목민의 관습 중에는 사람이 죽으면 슬픔의 표시로 머리에 흙을 끼얹고 얼굴을 때리는

풍습이 있었는데,  아슈라의 날 행사에서도 카르빌라에서 가져온 흙을 사람들의 이마에

칠한다. 또한 이맘 후세인이 탔던 피 묻은 말,  강보에 싸인 아이, 그리고 이맘 후세인의

가솔과 당시 추종자들, 부녀자들의 모습을 그 날 그대로 재현하고,  야지드 군대의 병사

가 후세인 진영의 천막을 불태우는 광경 등 그 날의 비극을 되살린다.

 

대중적 쉬아 사상에서 이맘 후세인은 신 앞에 나아가 심판받기 전, 중재할 수 있는 인물

로 간주되고, 죄의 사함, 천국으로의 인도 등과 같은 교리관은 오늘날 개신교의 여러 교

파에서 말하고 있는 예수의 모습이나 교리관과 매우 흡사하다고 할 수 있다.

 

이맘 후세인을 추모하는 아슈라의 행사는 쉬아 무슬림들의 길고 긴 슬픔의 서사시이다.

1300년 이 넘는 동안 계속되고 있는 이 슬픔의 아슈라 행사에 대해 이방인들은 폭력적

인 종교 행사로 오해하기 쉽다.  그러나 이 아슈라는 박해받던 역사의 슬픔을 털어내고

스스로가  쉬아 공동체의 일원임을 확인해 왔던 거룩하고 전통적인 신앙생활의 일면이

다. 이들은 13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다시 메시아로 돌아올 이맘을위해 아슈라를 계속

하고 있다.

 

 

황의갑, 부산외국어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