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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맘 자으파르 앗 싸디끄(Imam Jafar al-Sadiq)

작성자
kislam0
작성일
2018-01-01 14:40
조회
264

이맘 자으파르 앗 싸디끄(Imam Jafar al-Sadiq, 702-765)

 

 

생애

이맘 자으파르 앗 싸디그는 702년 메디나에서 쉬아의 제5대 이맘 무함마드 알 바끼르와 순니 이슬람의

초대 칼리파였던 아부 바크르의 증손녀 파르와 사이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중간

정도의 키에 얼굴이 희고,  이마로부터 흘러내린 검은 머리는 땋은 것처럼  곱슬곱슬 하면서 빛이 나며,

잘생긴 코의 이목구비가 뚜렷한 미남형 인물이었다. 자으파르의 별칭으로 앗 싸디끄가 가장 많이 사용

되었지만 그것 외에 알 파딜과 앗 따히르 등 여러 별칭들이 많았다.

 

그는 어려서는 할아버지인 알리 자인 알 아비딘으로부터, 할아버지가 사망한 후에는 아버지 무함마드

알 바끼르 밑에서 지식을 전수받았다.  따라서 어려서부터 '꾸란'과 예언자 전승에 조예가 깊고 765년

사망할 때까지 고매한 인격과 신에 대한 열렬한 열정 그리고 학문에 대한  개방적인 태도 등으로 유명

한 학자 중의 학자였다. 그는 자신과 견해가 다른 많은 학자들과 학적 논쟁을 즐겼다.

 

그의 활동시기는 우마이야 조 말기와 압바스 조 초기였다.  우마이야 조에서는 쉬아들에 대한 통제가

심했는데, 유독 이맘 자으파르에 대해서는 비교적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아마도

다른 이맘들과는 다르게 비교적 정치적인 입장 표명을 하지 않고 늘 종교와 학문 탐구에 열정을 쏟았

던 그의 태도 때문이었을 것이다.

 

전통주의자의 표상

이맘 자으파르 시대에는 이슬람 사상과 문화가 한창 꽃을 피우고 있던 때였다.  그리고 또 다른 한편

으로는 이맘들의  사상과 지식이 학문과 문화 발전 및 성장에 기여를 하는 시대였다.  그의 시대에는

이슬람 제국이 극도로 팽창하여 부와 번영이 극점에 이르고, 무엇보다 비잔틴이나 페르시아 등 이문

화가 무슬림 사회에 계속 유입되던 때였다.  특히 번역이 활성화 된 시기로 외국어로 된 철학과 지식

그리고 과학의 많은 것들이 아랍어로 옮겨졌고,  무슬림들이 이러한 과학과 지식들을 수용하고 그것

들을 심화 발전시켜 재창조하던 시기였다. 그래서 이슬람 사회에서는 과거 어느 때보다 학문적 열정

으로 다양한 사상들이 자라나고 있었다.

 

이맘 자으파르 앗 싸다끄는 주로 메디나에 거주했으며 당대에 예언자 무함마드의 전승을 가장 많이

알고 그것을 제자들에게 전달해 준 가장 위대한 전승학자이자 박식한 법학자였다. 다른 분야에서도

그의 해박한 지식은 상당한 수준에 이르러  천문학자, 화학자, 철학자, 의사, 물리학자, 과학자로 불

릴 정도였다.  그와 학문적 교류가 가장 빈번했던 학자로는 4대 법학파 중  하나피 법학파를 창시했

던 아부 하니파를 꼽을 수 있다.  또 그는 최초의 정통  하디스집으로 알려져 있는  '알 무왓따'의 저

자이며 말리키 법학파의 창시자였던  말리크 빈 아나스의 스승이기도 하다.  아부 하니파가 지닌 많

은 중요한 지식들이 이맘 자으파르와의  교류를 통해서 얻은 것들이다.  또한 중세 무으타질라 신학

의 창시자인 와실 빈 아타이도  그의 제자로 알려져 있다.  또한 중세 가장 유명한  화학자로 서양에

서 게베르로 알려져 있는  이븐 하이얀의 스승이기도 하다.  그가 영향을 끼친 또 다른  인물로는 알

쿨리니와 이븐 바브야가 있으며,  그를 추종하던 제자들에 의해 기록되었던  수천 가지 전승의 전승

자였다. 따라서 그는  순니 이슬람에서  존경받고 누구나 따르는  전통주의자의  표상으로 간주된다.

무엇보다  예언자 전승의  이스나드(전기의 사슬)에서 수없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는 항상 금욕

적인 생활을 몸소 실행하여 많은  무슬림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은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후일

출현하는 유명한 수피 종단인 나끄쉬반디야에서는 특별한 존경을 받고 있다.

 

 

가르침

이맘 자으파르 앗 싸디끄는 이슬람 신학과 법학뿐만 아니라  아랍어 문법학 분야에서도 수천 명의

제자들을 훈련시킨 것으로 알려져 있다.  히샴 빈 알 하캄,  주라라 빈 아이얀 그리고  무함마드 빈

무슬림 같은 사색적인 쉬아 신학자들과 법학자들이 그와 교류하면서  많은 사상들을 배웠다. 그가

가졌던 많은 대담 중에 중요한  가르침으로 남아  전해오는 것 몇 가지를 열거해 보면  1. 불신자들

과의 대담.  2. 유추에 대한 아부  하니파와의 대담.  3. 무으타질라파  지도자들과의 대담.  4. 인도

의사와의 대담.   5. 압달라 빈 알 파들 알  하쉬미야와의 대담.  6. 알라의  전지전능하심에 대한 이

단자.  무신론자와의 대담.  7. 이븐 아비 아우자이와의 대담.   8. 예언자에게  연결되는   이스나드

법칙에 대한 아부 하니파와의 대담.  9. 비전의 기식, 지혜에 대한 대담 등 수없이 많은 대담들이있

다.

 

이맘 자으파르 앗 싸디끄는 항상 극단적인 이견들이 중심에 있었기 때문에  일부 제자들은 이슬람

법과 신학의 주요 관점에서 자으파르 앗 싸디끄의 가르침과는  다른 견해를 표출하기도 했다.아불

카탑(755-756)의 경우에는  앗 싸디끄가 자신을  그의 대리인으로 임명하여 비전의 지식을 위임했

었다고 주장했고, 신은 앗 싸디끄를 통해 자신에게 신비한 비학을 이해하는 힘을 주었다고 주장하

였다.  이에 자으파르 앗 싸디끄는 아불 카탑을 그의 문하에서 추방하는 등 일부 그와 견해를 달리

했던 인물들을 파문하기도 하였다.

 

 

이맘 승계 문제

쉬아 법이 그의 이름을 따서  자으파르 법학파라 불리는  법적 시스템을 구축하였을  정도로 쉬아

무슬림 법 체계에 큰 공헌을 하였고,  그의 박학다식한 지식은 결국  이맘제라는 쉬아 무슬림들의

교리 형성과 발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것은 임마의 지위가 예언자나  뒤를 이은 이

맘들을 통해 신에 의해 지명된다는 것이다. 이로써 이맘은 항상  무오류의 초인간적 존재로, 현세

문제 뿐 아니라 샤리아(이슬람법)의 제한 문제에 대해 절대적  해석권과 판결권을  가진다는 독자

적인 교리관을 형성하게 되었다. 즉, 알리의 혈통으로 이어진  이맘들은  신으로부터 계시된 지식

에 대한 접근이 허요된 유알한 존재들이며,  따라서 이맘은 미래의 사건들에 대해 예견할 수 있으

며 비전의 지식을 전수 받은 존재라는 것이다.

 

자으파르 앗 싸디끄는 전재 군주들(우마이야 조와 압바스 조 칼리파들)에 반대하는 정치적 투쟁

을 선호하기 보다는 조용히  이슬람의 진리와 학문을 탐구하는  온건적  정적주의의 길을 걸었다.

이를 통해 현세 정치를  공존케 하는 틀을 가르치는 공개적으로 그가 지녔던 정치적 리더쉽에 대

한 것을 표방하지 않았다.

자으파르는 뛰어난 학식을 지녔던  그의 아버지  이맘 무함마드  알 바끼르가 독살 당하자,  나이

34세 쉬아의 전통에 따라 쉬아파의 6번째 이맘직을 승계하였다. 알리의 첫째 아들이었던 하산의

후손인 부인과  결혼하여 두 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그중 장남인 이스마일 빈 자으파르는 아버지

보다 일찍 죽는 바람에 이맘으로 등극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나중에  이스마일을 추종하는 파가

만들어지는데 이들이 바로 쉬아들의 한 주요 갈래인 이스마일 파로, 한 때 이집트를 중심으로 하

여 북아프리카를 통치한 파띠마 조가 이 파에 속한다.

 

이스마일 파는 앗 싸디끄가  그의 장자인 이스마일로 하여금 그를  승계하도록 했었다고 주장하

였다.  이스마일파는 점치 과격주의 경향을 띠어 다시  여러 분파로 나뉘었는데, 그 중에는 암살

교단으로 악명높은 니자리파(일명 암살단파로 불리며 기독교들의 십자군 원정 때 활약)가 있다.

이맘  앗 싸디끄의 뒤를 이어 그와 베르베르 여인  하미다 카툰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무사

알 카잠이 쉬아파의 7대 이맘이 되었다. 그리고 이 계보를 따르는 쉬아들이 오늘날 주류 쉬아들

의 갈래를 이루는 12이맘파가 된다. 이들은 수세기 동안 현세 정치로부터 자유로운 길을 걸었다.

정치 운동을 하기보다는 주어진 정치상황을 받아들이며 그들의 역량을 주로 종교, 예술. 학문의

많은 분야의 것들이 쉬아들에 의해 세워져 이어오고 있다. 열두 이맘과 쉬아들은 통치활동 영역

에서보다 이같이 무슬림 공동체 생활의 지적 활동영역에서 더 큰 공헌을 하였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이스마일파는 초창기부터 정치적 삶에 관심을 쏟으며  혁명 세력으로 성장

했다.  종교적 세계관에서는 열두  이맘파와 공감하고 비슷한 점들이 대부분일지라도 정치관에

서만큼은 출발부터 열두 이맘파의  정적주의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이스마일파는 모든 사물

의 양면성을 내적인 것(바띤)과 외적인 것(자히르)으로 구별해 보았다. 나비(예언자)와 왈리(이

맘)을 구별하여 전자는 신법(샤리아)을 대표하고 후자는 그 법의 내면이 것을 해석해 낸다고 주

장하였다. 열두이맘 쉬아파는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과 평형을 유지하고 양자간의 균형을 강조

한 반면,  이스마일파는 숨겨진 진리를 쫓는 비교주의를 내세우며,  바띤의 것을 중시하였고. 왈

리의 지위를 열두 이맘보다 월등히 놓여서 보는 경향이 있다.

 

자으파르 앗 싸디끄는 폭력적인 박해의 시대에 살았다.  쉬아 무슬림들은 우마이야 칼리파들의

정적이거나 이단자로 간주되었고  자으파르 앗 싸디끄의 많은  친인척들이 우마이야 조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우마이조 말기에 이르렀을 때 그의 아버지에 이어  우마이야 조의 반정부 지도

자였던 삼촌 자이드 빈 알리도 희생되었다. 앗 싸디끄는 반 우마이야 활동에 가담치 않았다.  결

국 우마이야 조는 그 운명을 다하고  750년 압바스 조가 창설되었는데,  그 때 그의 나이는 48세

였다. 이 때에도 많은 반란의 반정 세력과  분파들이 그에게 그들의 주장을 지지해 줄 것을 요구

하였으나,  이맘 자으파르는 자신의 주장을 명확히 하지 않고  그들의 요구를 빗겨갔다. 그는 그

에게 보내어진 편지들(그를 칼리파로 인정하는 서신들)을 불태우면서 말했다.

 

"이 사람들은 나에게 서있지 않으며 알라의 영역에서 나에게 어떠한 것도 줄 수 없다."

 

자으파르의 신중한 처신은 쉬아파의 이론인 타끼야로 말해지는데,  쉬아들은 위험에 처했을 때

자신을 숨기고 순니인 척 하는 타끼야를 교리화 하였던 것이다.

 

압바스 조의 제2대 칼리파 알 만수르는 지하에서 벌어지고 있는 쉬아들의 활동과 문제들에 골머

리를 앓고 있었기 때문에 6대 이맘인 자으파르에 대해  경계심을 풀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자으

파르는 항상 가까이서 감시를 받았으며,  그와의 관계를 끊어놓고자  그의 추종자들을 체포해 감

옥에 넣기도 하였다.  자으파르는 인내심을 가지고 이러한  역경들을 견디어 내면서 오직 학문적

성취에 온갖  열정과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며 따라서 그만큼 저술할동을 열심히 했다. 그러나 그

는 결국 압바스의  칼리파 알 만수르에 의해 765년 12월 독살되었고,  메디나의 자난툴 바끼 묘지

에 안장되었다.

 

제6대 이맘의 계승권 문제는 당시 압바스 칼리파 알 만수르가 쉬아 운동의 종식을 바라면서 누구

든지 6대 이맘의 후계자로  선출되는 자는 죽음에 처해진다는  결정을 공표함으로써 큰 어려움에

직면했다. 압바스 조에서 쉬아파들은 더 지하에 숨어들어 새로운 비밀 조직을 만들면서 이맘제를

이어가야 했고,  이러한 환경 속에서 앞서 언급한 자으파르보다  먼저 사망한 장남 이스마일을 추

종하는 무리들인 이스마일파가 등장하게 되었던 것이다.

 

전해지는 일화로 누군가가 자으파르에게 알라를 보여달라고 요구하자, 자으파르가 답했다.

"태양을 보시오."

그 사람이 말했다.

"태양이 너무 부셔서 태양을 똑바로 볼 수 없습니다."

그러자 자으파르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당신은 창조된 것도 보지 못하면서 어찌 창조주를 보기를 기대하는가?"

 

 

종교적 사상

다양한 무슬림 저술가들이 그에게는 세 가지 중요한 종교적 사상이 있다고 평가하였다. 첫째,

그는 정명론(까다와 까디르)에 대한 질문에 있어 널리 채택되고 있는  절충적 이론(후일 아쉬

아리에 의해 획득 이론이 됨)처럼 신이 어떤 것들을 절대적으로 결정지었지만 다른 것은 인간

자유의지에 남겨놓았다고 주장하면서 중도의 길을 택했다.  둘째, 하디스학에 있어 소위 여러

다른 증거들이 그  하디스를 지지할지라도 이슬람의 경전 '꾸란'에 반한다면 거부되어야 한다

는 원칙을 천명했다. 셋째, 그는 예언자 무함마드의 빛이란  아담 이전에 창조된 신의 빛이 예

언자에게 내려졌고, 그것이 무함마드로부터 그의  후손들에게 전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황의갑. 부산외국어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