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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무라비뜨 조의 창건자 유수프 빈 타쉬핀(Yusuf bin Tashfin )

작성자
kislam0
작성일
2016-09-27 08:37
조회
299

알 무라비뜨 조의 창건자 유수프 빈 타쉬핀
유수프 빈 타쉬핀 (Yusuf bin Tashfin 1061-1106)

알 무라비뜨 조의 시작과 성장


그는 베르베르 족의 군사 지도자로 성장하였고 나중에 알 무라비뜨 조의 창시자가 되었다. 이 왕조는 종교적 지도력과 교리에 의해 단결된 베르베르 연합체였다. 무라비뜨 운동은 사하라에서 산하자 베르베르인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산하자족은 무역을 생업으로 삼고 있었는데, 사하라 종단 교역로의 북단을 지배하고 있던 제나타 베르베인과 남쪽 출구를 장악하고 있던 수단 지역의 가나 왕국에 밀려나는 신세가 되었다. 산하사족은 종교 이슬람을 통해 이러한 어려운 상황에 대처하였다. 추종자들에게 엄격한 도덕과 종교적 규율을 부과했으며, 불법 세금을 폐지하고 이슬람 법에 따라

노획물을 배분하였다.

이렇게 시작된 알 무라비뜨 조는 사하라의 베르베르인들을 대거 이슬람으로 개종시키면서 그 세력을 키웠고, 마르부트(성인)로 불리는 영적 지도자 아래서 거대한 영토를 점령하고 북아프리카의 막강한 세력으로 성장하였다.



기독교 세력에 대항한 스페인 정복



1061년 유수프 빈 타쉬핀은 알 무라비뜨 조의 영적 정치적 지도자가 되었다. 그는 용감하고 유능한 지도자로 중서부 아프리카까지 영토를 확장했으며 1062년에 마라케쉬를 왕조의 수도로 정하였다. 바그다드의 칼리파는 그가 이슬람에 기여한 일들을 치하하며 그에게 아므르 알 무으미닌(신자들의 총통)이라는 영예로운 이름을 하사했다. 말리크 법학파의 학자들은 알 무와히둔 조의 행정평의회에 참석하여 수피주의 반대하는 등 법률적인 조언을 하면서 북아프리카 이슬람 문명의 초석을 놓았다.


우수프 빈 타쉬핀과 그의 후계자들은 바그다드 칼리파의 권위를 인정했다. 반세기가 넘도록 알 무라비뜨 조의 통치는 북아프리카와 스페인 남부에서 지속되었다. 알 무라비뜨 조는 사하라와 모로코, 스페인을 연결하는 새로운 무역지대를 건설했으며, 모로코는 정치적 안정을 이룩하고 교역을 발전시켜 11-13세기에는 상업화된 도시 사회로 성장했다.


11세기 말경 스페인에서 무슬림이 갖는 힘은 아직 미약했다. 왕조는 이직 작은 무슬림 공국들로 나누어졌고 각 공국을 통치하는 영주들은 영토 분쟁에 몰두했다. 한편, 프랑스 남부와 스페인 북부의 기독교 왕조들은 상호 연합하여 스페인에서 무슬림 세력을 축출하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 그 결과 일부 무슬림 공국들은 기독교 왕조에 합병되었고 나머지 무슬림 공국들도 기독교 세력에 심각하게 노출되었다.


그라나다 왕국은 북부의 기독교 세력으로부터 끊임없이 괴롭힘을 받았다. 특히 본인 스스로를 제왕으로 칭하던 알폰소 6세에 의해 많은 피해를 입었는데 이 때문에 일부 무슬림 지도자들은 알폰소 6세와 연합하기도 하였다. 그의 침략으로 인해 무슬림 왕국은 스페인 서남부의 카디즈까지 밀려났고 스페인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했다. 알폰소 6세는 무슬림들을 스페인 땅에서 몰아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이러한 위험이 본인에게도 곧 닥칠 것을 예상한 세빌리야의 왕 무으타미드는 다음과 같이 외치면서 극단적인 정책을 취하였다. "카스티야서 돼지를 치느니 아프리카에서 낙타몰이꾼이 되는 편이 낫다." 무으타미드는 스페인 무슬림 세력에게 닥칠 위험에 대처하기 위해 유수프 빈 타쉬핀을 불렀다.


유수프는 무으타미드의 청을 받아들여 지브롤터 해엽을 건너 스페인 땅에 발을 내딛었다. 그는 파죽지세로 북쪽으로 진군하였다. 도중에 무으타미드 및 다른 무슬림 세력들과 연합하였는데 바다호스에 이르러 병력의 수가 2만에 이르렀다. 당시 알폰소 6세의 병력은 6만 명이었으며 이 두 세력은 잘라카에서 마주하였고, 그는 알폰소 6세의 군대와 아주 전통적인 방식으로 일전을 벌이게 되었다. 무슬림들이 '잘라카의 전투'라고 하고 기독교도들은 '사그라하스의 전투'라고 부르는 이 싸움은 1086년 10월 23일 시작되었고 유수프의 이슬람군은 알폰소에게 굴욕적인 패배를 안겨주었다. 겨우 300명의 기병만이 전투에서 살아 남을 정도로 알폰소 6세의 대부분의 군사들이 전장에서 끔찍한 죽음을 맞이하였다. 이러한 유스프의 빛나는 승리는 스페인에서 꺼져가던 무슬림 세력을 한 번에 일으켜 세웠으며 이 여파로 더 많은 이슬람 세력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이 승리로 인해 스페인 무슬림 세력이 더욱 확장되었고 우수프는 안달루스의 시인들이 그의 공적에 대해 찬양하는 가운데 모로코로 돌아갔다.


몇 년 뒤 유수프는 스페인에서의 지속된 혼란을 보고 다시 스페인으로 돌아왔다. 그는 스페인의 무슬림들을 무능력한 지도자들이 아닌 본인이 직접 통치하기를 원했다. 그리고 이 무슬림 국가를 기독교 세력의 땅까지 확장시키고 싶어 했다. 그는 중남부 스페인까지 세력을 확장하고 이 지역을 알 무라비뜨 조에 합병시켰다.


그리하여 유수 프 빈 타쉬핀은 스페인 남부를 지배하기 시작하였는데, 반 세기 정도였기 때문에 여향력이 뚜렸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유수프가 스페인을 지배하면서 아프리카 문화가 현지에 전파되기도 하였다. 남자들이 베일(라삼이라고 부르며 오늘날에도 사하라의 무슬림들이 사용하고 있다)을 쓰는 것이라든지 낙타를 즐겨 이용하는 것이 그러한 예였다.

유수프 빈 타쉬핀은 전쟁에 능했고 조직을 잘 통솔했던 유능한 지도자였다. 또한 두려운 존재이면서 사랑받고 존경받는 지도자였다. 그는 반세기 동안 눈부신 치세를 누리다가 1106년에 사망했다.




최진영. 한국외국어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