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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두와 홍역을 최초로 연구한 임상의학자알 라지(Abu Bakr aMuhammad Yahya b.Zakariya al-Razi)

작성자
kislam0
작성일
2019-07-08 08:30
조회
102

천연두와 홍역을 최초로 연구한 임상의학자

알 라지(Abu Bakr aMuhammad Yahya b.Zakariya al-Razi, 865-925)

 

 

동서양 의학의 아버지

 

아부 바크르 무함마드 이븐 야흐야 이븐 자카리야 알 라지.  보통 알 라지 혹은 라지로 불리는 그는

우리로 치자면 허준이나 이제마처럼 이슬람 세계를 대표할 수 있는 최고의 임상의학자로 유명하다.

서양에서는 라제스로 더 잘 알려진 알 라지는 중세 시대의 걸출한 학자로서 다양한 학문 분야에 큰

영향을 미쳤다. 막스 메이어호프는 말한다.

 

"라제스는 의심할 여지없이 이슬람 세계의 가장 훌륭한 의사이고 역대 가장 위대한 의사들 중 한명

이다."

 

그는 매우  독창적이고 탁월한 의학 서적을 여러 편 저술하였으며,  그중 몇몇은  라틴어, 프랑스어,

독일어 등의 유럽어로 번역되었다.  이슬람 백과사전에 따르면, 17세기에 이르기까지 알 라지의 권

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고  임상의학 분야에서 그는 선대 학자들의 지식을 능가했다고 한다. 에

드워드 G 브라운은 아랍 의학에서 다음과 같이 인정하였다.

 

"가장 위대하고 독창적인 의사이고, 가장 많은 저술을 남긴 작가 중의 한 명이며, 이슬람 학문의 황

금기로 알려진 9세기의 가장 탁월한 사상가이다."

 

과학사에 관한 저술로 유명한 작가 조지 사턴은 '과학의 역사'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알 라지는 단지 이슬람과 중세 전체의 가장 위대한 임상의일 뿐만 아니라 화학자이며 물리학자이

다. 그는 르레상스 시대 의학자들에게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

 

이븐 시나(아비센나)와 함께, 알 라지는 이슬람 의학사에 가장 찬란하게 빛나는 별임이 분명하다.

알 라지는 임상 분야에서 출중했으며, 이븐 시나는 이론적인 면에 치중하는 특징을 보였다. 동양

뿐만 아니라 서양의 의학에 미찬 알 라지와 이븐 시나의 영향은 압도적이었다."

 

근대에 접어들기 전까지 유럽 각지의  의과대학 교육과정은 광범위하게  이븐 시나의 '의학정진'

과 알 라지의 '만수르 의학서' 제 9권을 사용했다.  12세기부터 17세기에  이르기까지 알 라지와

이븐 시나는 히포크라테스와 갈레노스보다 높은 위치를 차지했다.

 

생애

알 라지는 865년(이슬람력 251년) 지근의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가까운 레이에서 태어났다. 그

는 그리스, 페르시아, 인도의 의학에 정통했던  알리 이븐 랍반 알 타바리의 제자로 바그다드에

서 수학, 철학, 천문학,  그리고 연금술을 공부했다.  압바스 칼리파 조의 수도였던 당시의 바그

다드는 '지혜의 집'이라는 학문의 산실을 통해서 다량의 학술서를 발간하고 있었으므로 그에게

있어 바그다드는 최고의 유학지가 될 수 있었다.  그는 인생 대부분을 의학 연구에 헌신하며 진

료와 저술에 힘썼지만,  초년 시절에는 연금술과 화학, 철학, 논리학, 수학  그리고 물리학에 큰

관심을 가졌다.

 

또한 그는 음악 이론 뿐만 아니라 실용 음악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잘 알려진 예

술가였고 숙련된 가수이자 류트 연주의 전문가였다.  그는 음악과 관련한 백과사전을 저술하기

도 하였지만, 이후 음악에 관한 관심을 접고 의학 연구에 집중했다.

 

알 라지는 약 35년 동안 의학에 종사했다. 의학자로서 알 라지의 높은 명성은 이슬람 세계의 먼

지역으로부터 학생들의 관심을 끌었다. 너무나 많은 학생들이 그의 강의에 참석햇기 때문에 바

깥 줄에 앉은 학생들은 그의 말이 들리지 않았고, 그래서 가까이 앉은 학생이 그의 강의를 바깥

쪽의 학생들에게 전달해야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그는 당대 최고의 임상 의학자이자

외과 의사였고 시튼법(관선법)의 창시자였다. 또한 그는 외과 수술을 끈으로 동물 창자를 사용

하는 법을 소개했고, 빛에 대한 동공의 반응을 처음으로 인지했다. 그는 권위 있는 의사로서 고

향 레이와 바그다드에 위치한 큰 병원의 임상과 관리 업무를 맡아보기도 하였다. 그는 레이 병

원에서 의사들의 수장으로 지명되었고, 훗날 칼리파 알 무크타파의 치세 동안에는 바그다드에

새로 설립된 무으타디 병원을 책임지기도 하였다.  그가 이 병원을 세울 마땅한 장소를 어떻게

찾았는가에 관한 이야기가 다음과 같이 전해진다.

 

"칼리파 알 무크타파가 알 라지에게 병원 건축을 요청했을 때 그는 바그다드의 여러 곳에 신선

한 고기 조각들을 놓아두었다. 얼마 후에 그는 그 고기 조각들을 다시 살펴보았고 병원 장소로

고기 조각이 가장 적게 부패한 장소를 택했다."

 

의사로서의 알 라지의 높은 명성은 한 궁전에서 다른 궁전으로 전해졌다. 그의 삶은 일면 불안

정해 보이기도 했는데, 때로는 먼 도시들에서 다양한 요청들이 있기도 했고,  때로는 통치자들

의 변덕, 정치적 상황의 불확실성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그는 타향에서의 활동을 마치고 고향

레이로 돌아오기를 반복했으며, 결국 고향에서 925년 숨을 거두었다.

 

다양한 분야의 업적 및 저서

 

알 라지의 활동과 저술을 꼼꼼히 들여다보면 그가 의약 분야와 의학적 치료는 물론, 보건학 전

반에 걸친 영역에서  선구자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천연두와 홍역 그리고 다른 전염

병 질병 분야에 크게 공헌했으며,  소아의학, 산부인과 그리고 안과학 분야에서도 선구적 역할

을 했다. 그는 방광 내의 결석과 신장 내의 결석을 분리해서 다루고 있으며,  해부학 관련 논문

을 저술하기도 했다.

 

아마도 알 라지의 모든 저작들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천연두와 홍역'일 것이다. 이 책에서 그는

인류 역사상 최초로 이 두 질병이 서로 다른 종류의 것이라고 밝히고 있으며, 오늘날까지도 천

연두와 홍역에 관해서는 가장 믿을만한 책들 중의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필립 K. 히티는 그의

저서 '아랍인의 역사'에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이 논문은 이슬람뿐만 아니라 중세에서 가장 명민하고 창의적인 사상가이자 가장 위대한 의사

들 중 한 사람으로 알 라지의 명성을 확립하는데 일조했다."

 

천연두가 완전히 발진한 후의 농포 처리에 관해서 상세한 정보를 담고 있는 '천연두와 홍역'은

라틴어와 여타 유럽 언어들로 번역되어 1498년과 1866년 사이에 40회 이상 간행되었다.

 

1489년에 베니스, 1549년에 바질, 1747년에 런던  그리고 1781년에는 괴팅켄에서 출판되었다.

그리고 18세기까지  동양과 서양의 대부분 대학의 교과서로 지정되었다.  알 라지가 상세히 서

술한 천연두의 징후와 치료법은 그의 뛰어난 의학적 능력을 보여준다.

 

"열, 허리 통증, 코 가려움,  수면 중 떨림 등의 증상이 나타난 뒤에 천연두가 발병한다. 천연두

발병의 주요 징후는 열과 요통, 전신을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  얼굴의 울혈, 간혹 나타나는

몸무게 감소,  뺨과 눈의 충혈, 체내 압박감,  살이 근실거리는 느낌,  발성 장애를 동반한 목과

가슴의 통증,  두통과 머리의 압박감, 흥분, 근심, 메스꺼움, 불안이다.  흥분과 메스꺼움, 불안

은 천연두보다는 홍역에서 더 두드러지고, 반면 요통은 홍역보다는 천연두에서 더 격심하다."

 

근대 의학은 이러한 증후들 외의 특이한 증상들을 거의 추가하지 못하고 있다. 한편 알 라지는

의학은 물론,  화학, 물리학, 음악, 철학, 수학, 천문학,  윤리학 등에 대한 저술을  남긴 다작의

작가였다. 막스 메이어호프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의 학식은 모든 것을 아우른다.  주목할 만한 그의 과학 저술은 200권  이상에 달하고, 그 중

절반 이상이 의학 서적이었다."

 

과도하게 학술적 연구에  전념하는 과정에서 시력이 손상되어  사망하기 얼마 전에는 백내장으

로 인해 완전히 실명하는 상태에 이르기도 했다.

 

그리스 의학을 다룬 저서 '만수르 의학서' (라틴어로는 Liber Almansoris)는 레이의 통치자이자

그의 후원자였던 만수르 이븐 이스하크에게 헌정한 것으로, 총 10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

의 첫 번째 라틴어 번역판은 15세기 말에  밀라노에서 출판되었으며,  후에 독일어와 프랑스어

를 포함한 여타 유럽 언어로 출판되었다.  그 중 크레메나의 제라드가 'Nonus Al-Mansuri' 라는

이름으로 번역 출간한 제9권은 116세기까지 유럽에서 인기 있는 의학 교과서의 역할을 했다.

 

알 라지의 논문 '한 시간 이내의 치료'는 폭넓게 읽혔고 여러 언어로 번역되었다. '자연의 습관'

이라고 제목을 붙힌 소논문은 조건 반사론의 선구적 연구였다. 어린이들에게 있는 질병들은 그

에게 소아학의 아버지라는 이름을 안겨주었다.  그는 또한 부인과, 산부인과,  안과학에도 기여

한 바가 크다. 의학에 관한 그의 여러 논문들은 라틴어로 번역되어 'Opera Parva Abubetei'라는

이름으로 통합 출간되기도 했다.

 

의학의 영역에서 알 라지의 가장 위대한 업적은 총 20권에 이르는 포괄적인 의학 백과사전 총서

를 쓴 것이다. 기록에 따르면 알 라지는 이 저서를 살아있는 동안에 마무리 짓지 못했고, 현재의

형태는 그의 사후에 제자들이 새로이 구성한 것이다. 이 책은 시칠리아의 왕 찰스 1세의 명령으

로 1279년에 시칠리아의 유대인 의사 파라즈 이븐 살림이 라틴어로 번역하였으며, 1486년 이후

여러차례 출판되었다. 그가 15년에 걸쳐 쓴 총서는 이슬람 세계에서 가장 방대한 의학 백과사전

이다.  이 책에서 그는 각각의 질병에 대해 그리스, 시리아, 아랍,  인도의 의학 지식을 소개했고,

마지막에는 그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보탰다.

 

의학에 관한 알 라지의 글은 능숙한 의사들조차 모든 질병을 치료할 수는 없다는 사실에 관하여

왜 겁먹은 환자들은 숙련된 의사들마저 쉽게 저버리는가.  왜 무지한 의사, 비전문가, 그리고 여

성들이 학식 있는 의사들보다 더 성공하는가와 같은 가벼운 주제들도 다루고 있다. 이러한 저술

을 통해 알라지는 의사들에게 진료 활동을 위한 여러 귀중한 조언을 주었다.

 

"의사는 그의 환자에게 내면적인 동시에 외재적인 발병 원인들에 관해 가능한 모든 질문을 하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의사는 항상 치료법이 효과적으로 기능하고 있으며 상태가 희망적임을

환자에게 납득시키기 위해 노력 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환자의 심리적인 상태가 그의 육체적인

상태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만약 의사가 환자를 약보다  음식물을 통해 다룰 수 있

다면, 그는 실제로 최선의 처방을 한 것이다."

 

환자에게 주는 조언으로 알 라지는 다음과 같이 말하곤 했다.

 

"너무 많은 의사와 치료법을 찾는  사람은 의료 과실을 경험하게 될지도 모른다.  환자는 경험이

풍부하고 신뢰할 수 있는 한 명의 의사에게만 상담을 받는 것이 좋다."

 

다양한 학문분야에서 활약한 알 라지는 의학 이외에도 자연과학, 수학, 천문학, 윤리학, 철학, 신

학 그리고  음악과 관련한 귀중한 저서들을 남겼다.  연금술, 광학, 물질,  시간, 공간, 운동, 영양,

부패,  성장,  기상학을 포괄하는 자연과학에 대한 그의  공헌은 의학에 끼친  영향만큼이나 크다.

그가 저술한 화학에 관한 비법서(연금술에 관한 책)는 화학물질과 장비의 준비에 대해 다루고 있

다. 그는 물질의 세밀한 분류법에서 그 스스로가 자비르를 포함한 그의 모든 선대학자들 보다 더

위대한 전문가임을 증명했다. 화학 실험과 장비에 관한 그의 설명은 명료할 뿐만 아니라 그의 선

대 학자들의 성과와 사상을 답습하지 않는 독창성을 보였다.  자비르와 다른 이슬람 세계의 화학

자들은 광물질을 본 체(금, 은 ,동), 영혼(유황, 비소, 등), 정신(수은, 염화 암모니아)으로 분리한

반면,  알 라지는 광물질을 식물, 동물, 광물로 분류했다.  또 광물의 부류를 정신, 본체, 돌, 황산,

붕사, 소금으로 나누었다. 화학에서 그는 모든 자연 현상에 대한 비술적이고 상징적인 설명을 거

부하였다. 오로지 물질과 공정에 대해 분류하는 선에서 그쳤으며,  실험과 관련한 내용의 정확한

서술에만 관심을 기울였다.  그는 '자연 저울' 이라고 부르는 정수 저울을 이용한  중력 측정법에

대해 연구하기도 했다.  그는 물리학과 관련한 글에서는 물질, 시간, 공간, 운동을 다루었으며 물

질은 창조 이전의 원시적인 상태에서 흩뿌려진 원자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했다. 그는 형이상학에

서 창조주, 영혼, 물질, 시간, 공간 등 다섯 가지 영원한 윈칙이  존재한다고 주장하였다. 그에 따

르면, 유일무이하고 불변의 원칙인 신이라는 개념으로 인해 세상의 영원성은 필연적인 결과였다.

따라서 인간의 영혼이 육체로부터 해방될 때 세상은 사라질 것이고, 외형을 잃은 물질은 원시 상

태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가진 비관적인 형이상학에도 불구하고, 그는 과도한 금욕

주의에 반대했고 소크라테스처럼 능동적인 삶과 복지를 위한 행동을 지지했다. 또 아리스토텔레

스의 격언에 따라, 인간의 열정을 비난하지 않지만 지니친 방종은 경계했다. 그는 과학적이고 철

학적인 지식의 발전을 믿었으며, 이 점에서 고대 철학자들을 앞서 나갈 수 있었다. 물리학, 수학,

천문학, 광학, 형이상학, 철학, 윤리학에 관한 그의 대부분 저서가 사라져 버린 것은 무척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다양한 분야에서 탁월한 성과를 이룩한 알 라지는 심지어 지리학 분야에도 관심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지구 동쪽 끝 한반도의 신라에 대한 기록을 간접적으로 남기기도 했다. 중세

이슬람 세계에서 신라인들의 생활상을 가징 집중적으로 그린 사람은  지리학자 까즈위니(1203-

1283)인데, 그는 전대의 저명한 철학자이며 의학자인 알 라지의 신라 관련 기술을 인용해 신라인

의 무구무병한 생활환경에 대한 자신의 지식과 견문을 입증하려고 하였다.

 

"신라는 중국의 맨 끝에 있는 절호의 나라이다. 그곳에서는 공기가 순수하고 물이 맑고 토질이 비

옥해서 불구자를 볼 수 없다. 그들의 집에 물을 뿌리면 용연향이 풍긴다고 한다. 전염병이나 질병

은 드물며 파리나 갈증도 적다.  다른 곳에서 질병에 걸린 사람이 이곳에 오면  곧 완치된다. 무함

마드 알 라지는 신라는 살기 좋고 이점이 많으며 금이 풍부하기 때문에  그곳에 들어간 사람은 정

착해서 떠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알라만이 시혜자이시다."

 

 

안정국. 명지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