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의 역사

1960년대 한국 이슬람의 좌절과 재건기

작성자
kislam0
작성일
2016-07-19 05:03
조회
521

 

1960년대 한국 이슬람의 좌절과 재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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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이슬람의 좌절과 재건기
한국 무슬림들은 1960년대에 들어와 조직적인 국내 선교활동에 참여하는 한편, 각 이슬람국가들과의 유대강화에도 적극성을 보이게 된다. 당시 이슬람협회 지도자인 우마르 김진규는 사브리 서정길을 대동하고 1959년 11월부터 약 1년간에 걸쳐 사우디아라비아, 파키스탄등의 이슬람 국가를 순방하며 한국 이슬람의 실정을 알리고 지원을 호소했다.
이들은 1960년 사우디 아라비아 순방 중, 성지순례에 참가함으로써 한국 무슬림 최초의 성지순례자가 되기도 했다.
이들의 이슬람 국가 순방결과, 1961년 9월 말레이지아 상원의원 우바이둘라(Ubaydullah)를 단장으로 한 14명의 말레이지아 사절단이 내방해 한국 이슬람의 실태를 직접 파악했으며, 1962년 2월에는 현 서울 중앙성원 원로 이맘인 술레이만 이행래를 비롯한 한국 무슬림 학생 11명을 6개월간 말레이지아 “클랑 이슬람대학”으로 초청해 체계적인 이슬람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짧은 기간이나마 최초의 한국 무슬림 유학생으로 기록될 이 11명의 연수단에는 여학생도 3명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 후 1962년 11월 압둘 라작(Abdul Razzaq) 말레이지아 부수상 내외, 1963년 10월에는 하지 노아(Haji Noah) 말레이지아 국회의장이 내방해 한국 이슬람의 어려운 실정을 파악하고 귀국한 직후, 1963년 11월 말레이지아 수상 압둘 라흐만(Abdul Rahman)으로부터 성원 건립기금으로 말레이화 33,000불이 지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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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바탕으로 “한국 이슬람교 협회”는 1964년 10월부터 서울 상도2동에 성원 건립용 부지를 확보하고 착공에 들어갔으나, 대규모 공사계획에 따른 후속 지원금 미확보와 누적된 부채로 인해, 한국 최초의 성원건립의 꿈이 무산되는 시련을 겪기도 했다. 이후 협회는 더욱 가중된 재정난으로 주요 업무가 마비되고 의욕을 상실한 무슬림들이 하나 둘씩 협회를 떠나 새로운 이슬람 단체를 조직했다.
 군소 이슬람 단체로 분열되어 침체기를 맞고 있던 한국 이슬람교는 그 후 수 차례의 통합이 시도된 끝에, 1965년 4월 ‘한국 이슬람교 중앙연합회’를 발족시켰고, 이 연합회가 오늘날 한국 유일의 이슬람 조직체로 발전한 ‘한국 이슬람교 중앙회’의 전신이다. 연합회는 서울 용산구 원효로에 임시성원과 사무실을 마련하고 선교활동을 재개하는 한편, 해외 이슬람 단체들과의 유대강화에도 힘썼다.
한국이슬람의 대부로 추앙되는 파키스탄의 종교지도자 사이드 무함맏 자밀(Saiyd Muhammad Jamil) 파키스탄 “꾸란협회”회장이 내한한 것도 바로 이 무렵이다. 그는 1966년 10월 내한하여 약 40일간 한국에 체류하면서, 이슬람선교와 국내 무슬림 교육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는 그 후에도 여러 차례 방한해 한국 이슬람 발전에 지대한 업적을 남겼다.
성원건립의 필요성을 절감한 한국 무슬림들은 1967년 1월 하지 사브리 서정길 회장과 오스만 김용선 섭외부장을 약 7개월간 이슬람국가에 파견해 성원건립의 시급함을 호소했다. 이에 1967년 3월, 쿠웨이트 종교성 희사금 미화 14,000불을 포함해 전세계 이슬람 국가들로부터 성금이 답지했다. 같은 달 “한국 이슬람교 중앙연합회”는 문교부에 “재단법인 한국 이슬람교”법인 등록을 마침으로써 공인된 교단의 면모를 갖추었다.
술래이만 이화식을 비롯한 압둘 아지즈 김일조, 하지 사브리 서정길, 무함맏 윤두영, 유숩 윤형구, 오스만 김용선 등이 이 시기의 중견이사들로서, 한국 이슬람 현대사에서 한국 이슬람의 정착과 발전에 공헌한 무슬림 지도자들이다.
1967년 6월 격월간지 “코리아 이슬람 헤럴드”를 한글과 영문으로 발간해 한국 무슬림들의 활동을 전세계 이슬람국가에 홍보함과 동시에 예배근행과 선교활동의 구심점이 될 성원건립 사업에 전력했다. 1967년 10월, 임시성원과 사무실을 서울시 용산구 남영동으로 이전한 연합회는 교리강좌를 통해 무슬림 배가운동을 전개하는 한편, 파키스탄, 이집트 등의 이슬람 국가에 유학생을 파견하여 무슬림 지도자를 양성했다. 동시에 이슬람 각국에 사절단을 보내, 본격적인 성원건립 추진사업을 전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