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의 역사

전 근대 원리주의 이슬람 부흥운동 (인도의 이슬람 부흥운동)

작성자
무스타파
작성일
2015-08-25 09:34
조회
336

전 근대 원리주의 이슬람 부흥운동 4

인도의 이슬람 부흥운동

18세기 무함마드 빈 압드 알 와합과 동시대 인물로 인도 이슬람 부흥운동의 기반을 쌓고 근대 이전의 무슬림 사상을 이끈 사람이 샤 왈리 알라(1702~1762년)이다. 그의 시대는 인도 무슬림사회의 어두운 침체기였다. 무갈 제국의 힘은 쇠잔하였고 무슬림 공동체는 힌두와 시크의 도전을 받으며 소수 공동체로 전락해가는 위기에 처해 있었다. 순니와 쉬아, 울라마와 수피 지도자 간에 분열과 갈등이 심화된 고난의 시기였다. 그는 메카에서 이슬람 교육을 받고 나그쉬반디 종단의 개혁주의 인물로 성장하였다. 그는 그보다 앞선 17세기 인도 무슬림 개화운동을 주도했던 쉐이크 아흐마드 시르한드(1564~1624년)의 발자취를 그대로 따르려 했다. 시르힌디처럼 비이슬람적 관행과 실천들을 무슬림의 생활에서 걸러낼 필요성을 주장하고 이미 대중화된 수피 수행의 개선을 도모하였다. 물론 이러한 정화와 쇄신은 꾸란 과 순나에 근거한 샤리아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같은 무슬림사회의 갱생과 부활이 무굴제국을 다시 부활시킬 수 있는 선결조건이라고 그는 생각하였다. 그는 실제로 무굴제국의 재건을 믿었다. 무슬림 통치에 대한 그의 이러한 신념은 무슬림 공동체가 사회적, 도덕적 개혁을 이룩해 낼 수 있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샤 왈리 알라의 개혁 방법은 압드 알 와합이나 시르힌디와는 다소 독특한 면이 있었다. 그것은 엄격함을 피해가는 조화의 방법이었다. 그는 대결구도의 투쟁을 피하였다. 압드 알 와합처럼 급진적이지 않았다. 과거를 복원시키려고 현재를 부인하지 않았고 항시 초기 이슬람 시대의 실천 사례에 비추어 현재 신앙과 실천 방향을 수정해나가려고 했다. 다시 말해 와하비들처럼 수피주의를 억압하고 수피전통을 뿌리채 뽑으려 하지 않았다. 시르힌디가 이븐 알아라비를 이교도로 선언하고 열광적으로 수피개혁에 뛰어들었던 것과는 달리 이븐 알 아라비에 대한 비난도 온건하였을 뿐이었다. 그 결과 인도 수피 종단들 내에서 갈등과 논쟁을 일삼던 진영들이 그로인해 화해를 이루었고 이런 조화를 통해 비이슬람적이거나 우상숭배 관행을 제거시키고 개선해갈 수 있었다.

왈리 알라가 인도의 근대 이슬람에 끼친 가장 큰 공적은 그가 전통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과 모방을 비난하고 이슬람을 재해석할 이즈티하드의 문을 열어 놓아야 한다고 주장한 점이다. 이 때문에 그는 근대 인도의 이슬람 사상의 아버지로 간주된다. 이즈티하드에 관한 그의 주장은 이븐 타이미야의 이론을 ?따른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주목할 만한 것은 그에게 있어서 재해석(이즈티하드)의 목적은 새로운 해답을 찾아내어 그것을 공식화 하려는데 있지 않고 잊혀진 가르침과 올바른 진리와 지침을 과거로부터 되살려내는데 있다는 것이다. 어쨋든 그의 가르침과 화해의 방법론은 법학자들과 정통 무슬림들 간의 오랜 갈등을 해소시켜주는 역할을 하였고, 수피와, 순니, 쉬아의 견해 차이도 좁혀주는 큰 효과를 보았다. 그리고 그의 뒤를 이은 싸이드 아흐마드 칸과 무함마드 이끄발, 아불 아으라 알 마우두디 같은 전, 현대주의자들에게 모범이 되는 개혁의 길을 열어 놓았다.

왈리 알라의 뒤를 이은 싸이드 아흐마드 바렐레위(1786~1831년)는 이슬람 부흥 사상과 운동을 지하드 운동으로 바꾸어 실천한 행동주의 무슬림이다. 그는 무굴제국의 붕괴를 막기위한 효과적인 대응은 무장봉기라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그는 먼저 쉬크군의 위협에 대항하고 그 다음으로 영국의 식민지 야욕에 대항하는 지하드를 촉구하였다. 무슬림제국의 붕괴는 인도가 더 이상 이슬람의 영토가 아니라 비이슬람지역이 됨을 의미하므로 지하드는 의무라는 것이다. 그것은 사회정의와 평등에 기초한 이슬람국가를 수립하기 위한 종교적 정화운동과 군사력 배가운동을 결합한 것이었다. 일부 사람들은 이러한 그의 운동이 와하비야 사상에 고무되어 일어났을 것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그의 청교도적 개혁운동은 와하비야 운동와 흡사했고, 순니법학파에 추종함을 거부함으로써 한층 개혁적인 성향을 띠였다. 또 지하드는 이운동의 핵심이었다. 언제나 무함마드를 본보기로 삼고 이슬람부흥 운동을 펴면서 그는 추종자 집단을 이끌고 메카 순례를 하였다. 그리고는 과거에 무함마드의 추종자들이 메카인들과 조약을 체결했던 후다비야에서 싸이드 아흐마드 바렐레위는 그의 성스러운 전사들에게 이슬람을 위한 지하드 서약을 하게 되었다.

그는 1826년 무슬림 군대를 이끌고 나가 발라코드에서 쉬크인들을 물리친 후, 샤리아 법에 기초한 이슬람국가를 세웠다. 그리고 그는 초기 이슬람 시대의 칼리파들처럼 아미르 알 무으민(신도들의 총통)으로 추대되었다. 비록 그가 1831년 전쟁에서 죽었지만 그의 추종자들은 영국에 대항하는 지하드를 외치면서 그의 이슬람 부흥운동을 수년간 더 지속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