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의 역사

셀주크 터키

작성자
무스타파
작성일
2015-05-11 07:59
조회
451

셀주크 터키


11세기 전반부에 이르자 중동의 이슬람세계는 새로운 지배세력을 만나게 되었다. 이때는 압바스조, 파띠마조, 비잔틴제국 모두가 쇠퇴해져 있는
때였다. 중동무대에 새로운 신흥세력이 등장한 것이다. 중앙아시아의 투르크인, 오구즈 터키족에 속한 셀주크터키가 그들이다 이들은 1043년 이
스파한을 함락함으로써 이란고원에 들어와 페르시아를 장악하고는 곧 이어 1055년 바그다드에 입성하여 부와이흐로부터 지배권을 넘겨받는다. 셀
주크군주 뚜그랄(1038~1072년 재위)은 압바스 칼리파 알 까임(1037~1075년 재임)으로부터 동서방의 술탄, 최고의 아미르 라는 칭호를 받는다.
이때부터 술탄이라는 칭호는 세속통치의 절대 권력자에게 붙이는 칭호가 되었다. 압바스 칼리파들은 다시 새로운 보호자들 아래 허수아비 칼리파
로 남게 되었다. 셀주크조는 알프 아르슬란(1063~1072년 재위)과 그의 아들 말리크 샤(1072~1092년 재임) 때에 전성기를 맞는다.이들과 뛰어
난 재상 니잠 알 물크의 노력으로 정치적, 군사적인 면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절정에 올랐던 것이다. 1071년 이들은 시리아의 팔레스탄인을
점령하고 파띠마조를 이집트 본래 영토 쪽으로 돌아가게 했다.

11세기 말, 셀주크조는 페르시아, 메소포타미아, 시라아, 팔레스타인을 포함하는 대제국을 건설하였다. 중동 이슬람세계는 전기 압바스 칼리파조
이래 처음으로 다시 재 통일되었다. 셀주크는 순니파였으므로 바그다드에도 순니 신앙이 회복되었다. 뿐만 아니라 특히 셀주크군의 투루크만 전사
들은 서쪽으로 눈을 돌려 비잔틴 제국의 부유한 땅을 탐내었다. 1071년 셀주크 술탄 알프 아르슬란은 반호수 북방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비잔틴 군
을 참패시키고 황제 로마누스 디오게네프를 포로로 잡았다. 이 전투에서의 승리는 이슬람 역사뿐만 아니라 세계역사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투르크
가 소아시아에 정착하여 새 주인이 되는 순간이고 이 지역이 영원히 기독교의 손에서 떠나는 기점이 되었다.

아나톨리아 전지역이 이슬람화화는 기틀이 마련된 것이다. 12세기 말까지 이들의 후계자들은 코니아를 수도로 한느 강력한 터키군주국을 건설한다.
다양한 형태로 14세기 초까지 지속된 이들 셀주크 통치하에서 중부와 동부 아나톨리아는 터키 영토가 되어갔다. 동쪽으로부터 대규모 터키 이주민
이 유입되면서 터키적 이슬람 문명이 그리적 기독교 문명을 대체하였고 이들은 셀주크 룸(1077~1307 존속 룸은 아랍어로 로마)으로 알려졌다. 한
편 동부의 셀주크조(1038~1194년)는 1157년 술탄 산자르(1097~1157년 재위)의 사망 이후 세력이 약화되어 여러 소국가들로 분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