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의 역사

아랍의 기록에 나타난 신라 1

작성자
kislam0
작성일
2017-05-18 05:55
조회
409

아랍의 기록에 나타난 신라





고려사의 기록보다 훨씬 앞서 이슬람 학자들의 저술에서는 무슬림들의 신라 진출과 신라의 위치, 자연환경, 산물 등에 관해 주목할 만한 기록이 보인다. 9~15세기 사이에 이슬람 역사학자, 지리학자, 여행가들에 의해 집필된 상당수의 아랍어 역사서와 지리서에 신라에 관해 언급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특히 이븐 쿠르다드비(Ibn Khurdhadih)는 신라에 거주하는 무슬림들에 대해 언급한 최초의 이슬람 지리학자였으며 마수디는 한반도에 이라크인이 진출, 거주했다고 한다. 신라의 무슬림들에 대해 특징적이고 유의할 만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은 디마쉬키(Dimashiki), 알-누와이리(Al- Nuwairi), 알-마크리지(Al-Maqrizi) 등의 저서인데, 이들은 놀랍게도 우마이야(Umaiya) 왕조(661~750)의 박해를 피한 일부 알라위족들이 한반도에 망명한 사실을 밝히고 있다. 따라서 인근 중국 동남부에서의 이슬람 문화의 유입과 발전 과정을 생각한다면, 신라에 진출한 무슬림들이 끼친 종교적 영향, 이슬람 문화의 부분적 소개, 또 후일 고려시대 때 대규모 무슬림 상인에 의해 이슬람 종교가 도입된 것 등도 충분히 숙고해볼 수 있다.



아랍인들의 신라 진출에 관한 가장 주목할 만한 정보는 846년에 편찬된 이븐 쿠르다의 <왕국과 도로총람>이다. 아랍인들이 직접 신라로 진출했다는 최초의 기록이 846년에 비로서 나타난다. 바로 그 해 장보고가 살해되면서 청해진을 중심으로 하는 그의 해상세력이 붕괴되는 시점이라는 것은 매우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



지금껏 동북아 무역을 완전 통제하고 있던 장보고 해상세력과 상권 분점 상태에서 간접 교역을 하는 아랍인들이 힘의 공백 상태에 빠진 한반도 시장을 그냥 내버려둘 리가 없기 때문이다. 바로 열흘의 항해거리에 있던 신라로 직접 내왕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상인들의 기본적인 속성이었다. 이제 아랍인의 신라진출에 관한 기록도 이때를 거점으로 빈번하게 등장한다.



<왕국과 도로총람>에는 두 구절에 걸쳐 신라에 관해 다음과 같은 흥미 있는 기사가 실려 있다.

"중국의 동쪽 칸수의 맞은 편에 신라라는 나라가 있다. 산이 많고 왕이 많은 나라이다. 그곳에는 금이 많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물품으로는 비단, 검, 사향, 범포, 육계 등이 있다... 신라로 진출한 무 슬림들은 자연환경의 쾌적함 때문에 영구정착하여 떠날 줄을 모른다..."



카즈위니와 바쿠위 같은 학자는 신라의 쾌적한 자연환경에 대해 극찬하고 있으며, 심지어 이븐 사이드나 아불 피다 같은 학자들의 책에서는 신라를 동양의 유토피아로 묘사되고 있다.



"중국의 마지막 나라인 신라는 너무나 아름다운 곳이다. 맑은 공기와 깨끗한 물, 완벽한 위생조건으로 인해 그곳 사람들은 질병을 모르고 건강하다. 집집마다 호박 향내가 기득하고..., 아무리 불치의 병에 걸려도 신라에 오기만 하면 씻은 듯이 나아버린다."



"동쪽 대양의 끝에는 신라라는 섬이 있다. 이 섬은 서쪽 끝에 있는 '이상향'에 대비될 정도이다. 서쪽의 이상향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신라는 비옥하고 쾌적한 기후를 가진 유토피아다."



이처럼 17 명의 아랍, 페르시아 학자가 쓴 20 여권의 책에서 신라에 대한 다양한 내용을 발견할 수 있다. 산수가 뛰어난 쾌적한 자연환경은 물론, 비옥한 토지와 풍부한 물자,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 주는 교역품의 생산과 특히 양질의 금이 생산된다는 사실을 공통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이런 환상 속에 많은 아랍인들이 유토피아를 찾아, 질병을 치료하기 위한 최적의 휴양지로, 남은 인생을 보장할 수 있는 정치적 망명처로 신라를 향해 떠났다고 기록한다.



더욱이 신라의 금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이드리스가 1154년에 편찬한 세계 지도에는 신라가 5개의 큰 섬으로 묘사되어 있다. 이 지도는 한국에 관한 최초의 지도로 평가된다. 이드리스의 세계지도를 포함하여 많은 자료에서 신라가 여러 개의 섬으로 묘사되어 있다는 사실은 무슬림 상인들이 육로가 아니라, 중국 동남부 해안을 따라 해로로 한반도에 도착했음을 시사한다. 그리고 신라로 출발하는 항구는 자치 거주지인 번방이 형성되어 신라인과 잦은 접촉이 가능하던 향주나 양주였을 것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아랍 필사본에 나타난 신라 관련 기록은 서양학자들에 의해 분류되고 정리된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랍 지역 도서관에 산재되어 있는 약 200여만 권에 이르는 아랍어 고문서 필사본이 제대로 연구되고 분류된다면 신라에 관한 귀중한 자료들이 쏟아져 나올 가능성이 매우 높다.





출처 : 주간 무슬림 103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