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의 역사

아랍의 기록에 나타난 신라 2

작성자
kislam0
작성일
2017-06-06 09:14
조회
550

아랍에 나타난 신라 2





바닷길을 따라온 처용의 등장



<삼국유사>에 처용이라는 심목고비한, 즉 눈이 깊고 코가 높은 이방인이 등장한다. 880년경의 일이다. 바닷길을 따라 외국의 진귀한 보물들을 가지고 지금의 울산항인 개운포에 나타난 것이다. 외관이 특이하고 지금껏 접촉해본 적이 없는 이방인은 신화의 대상이 되고 악을 쫓는 선신으로 널리 숭상되기 시작했다. 그가 만약 역사적인 실존인물이라면, 당시 교역 상황과 바닷길 상업 구도에 비추어 처용은 아랍, 페르시아계 상인일 것이라는 가능성이 널리 인식되어 왔다.



우리가 한반도에서의 좁은 상황에 얽매이지 않고 당시 동북아와 서아시아의 해상 교역을 떠올리면 문제는 의외로 쉽게 해결될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876년 발발한 황소의 난은 예사일이 아니었다. 중앙정부 관료를 향한 꿈이 무산된 소금장수 황소가 산동반도에서 난을 일으켜 닥치는 대로 재물을 약탈하고 인명을 살상하면서 해안선을 따라 남진한 것이다. 당시 최대의 피해자는 말할 것도 없이 중국 동남부 해안도시를 중심으로 변방을 형성하고 교역권을 장악하고 있던 아랍, 페르시아계 상인들이었다. 잔혹한 살해와 약탈이 그들에게 들이닥쳤다, 살해된 사람만 12만명에서20만 명을 헤아린다고 한다. 이 소식을 전한 사람은 아랍 학자 아부 자이드다. 물론 그는 참상을 극대화하기 위해 다소 숫자를 과정 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 하더라도 당시 세계 최대 도시 장안의 중삼부 인구를 50만으로 본 다면 이는 어마어마한 수이다.



이 사건으로 많은 이슬람인들은 생명을 부지하기 위해 전략적 선택을 하게 된다. 해안 도시를 떠나 중국 내륙으로 들어가 중국인으로 살아가는 길을 택한 그룹도 있었다. 그들은 중국 성과 이름을 새로 만들고, 의상과 관습에서 중국식을 받아들였다. 오늘날 회족으로 불리는 중국인 무슬림들의 선조가 된 셈이다. 중국화된 무슬림들은 '마(馬)'씨로 많이 개명했다. 마호메드, 무함마드, 마흐무드, 마수드 등 아랍인들이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이름의 시작 부분에 '마'자가 많이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8세기 이후 중국 동남부에 연원을 둔 마(馬)씨 성의 70퍼센트 이상이 무슬림이었음을 밝힌 마천명의 보고서도 이와 관련해 흥미를 끄는 대목이다.



한화의 길을 택했던 그룹과는 달리 바다라는 삶의 터전을 포기할 수 없었던 또 다른 무슬림 집단은 아예 중국을 떠나 인근 동료들이 상권을 장악하고 있는, 동남아시아 등지로 이동해 갔다. 그리고 일부는 살기 좋고 그들이 동방의 유토피아라고 묘사했던 신라라는 목표를 놓칠 리가 없었을 것이다. 이미 이들은 한반도와 긴밀한 교역을 하고 있었고, 적지 않은 동료들이 신라를 오가며 쾌적한 풍토와 교역 이익을 챙기고 있던 지역이었다. 황소의 난이 거의 끝나갈 무렵에 돌연 울산항에 이르는 처용이 과연 누구일까. 과연 당시의 역사적 인과관계 없이 단순한 한 사건으로만 처용을 바라볼 것인가. 황소의 난 이후 삶의 기반을 빼앗긴 중국 동남부 해안도시의 이슬람 집단의 일부가 모든 재산을 싸들고 내해처럼 자유롭게 왕래하던 지척의 신라로 망명해온 것이 틀림없다면 처용은 아랍, 페르시아계 바닷길 무역상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