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의 역사

세종대왕과 꾸란경

작성자
kislam0
작성일
2017-07-12 09:51
조회
450

세종대왕과 꾸란경


우리 나라 기록에 보이는 무슬림의 대규모 방한 시기는 11세기 초 고려시대다. 이때 대식(大食)으로 알려진 아랍 상인들이 100명 이상의 대규모 구매 사절단을 이끌고 와서 간헐적으로 고려 조정과 교역을 시도하였다. 그들은 주로 향료나 약재, 진귀한 사치품 등을 가져와서 고려의 금·은·옷감 등과 바꾸어 갔다.

그러나 무엇보다 한반도에 이슬람 종교와 문화가 본격적으로 유입되는 시기는 고려 말과 조선초기다. 실크로드를 따라온 무슬림들은 고려에 정착하여 나름의 종교·민족적 공동체를 형성하면서 한국사회에 이질적 이슬람 문화의 이식에 기여하였다. 수도 개성을 중심으로 한 그들의 공동체 내에는 예궁(禮宮)이라 불리는 이슬람 사원이 존재하였으며, 그들 특유의 고유한 의상과 언어·문화적 특성을 유지해 갔다. 종교적 행위가 그들의 신앙에 국한되어 있다 하더라도 고려 여인과 결혼하여, 또는 인근 한국인과 일상적으로 교류하면서, 이슬람이라는 종교와 문화적 핵심요소들이 한국 사회에 소개되고 유포되었던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러한 이슬람적 요소는 조선시대 초기까지 영향을 끼쳤다. 세종 때, 궁중의 공식행사에 무슬림 대표나 종교지도자들이 초청되었고, 이슬람 의식에 따라 임금의 만수무강과 국가의 안녕을 기원하기도 했을 정도다. 15세기 초에 한국의 궁궐에서 코란의 신비적 가락이 낭송되던 모습을 떠올리기란 쉽지 않겠지만, 여러 정황으로 이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이러한 사실은 곧 한반도에 정착해 있던 무슬림들의 규모가 적지 않았다는 사실을 시사해 준다. 물론 그 당시 무슬림들은 아랍·페르시아계 사람들은 아니었다. 거의 대부분이 중앙아시아에서 건너온 투르크계 위구르 무슬림들이었다. 조선 초 사역원(司譯院)의 외국어 시험과목에 위구르어가 포함되었고, 공식 외국어로 위구르어가 교습된 사실에서도 이를 엿볼 수 있다.

많은 무슬림들이 한반도에 정착하면서 끼친 이슬람적 영향도 적지 않을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가장 주목할 만한 흔적은 이슬람력의 도입과 사용이었다. 이슬람역법의 원리를 가져다가 조선에서 만든 달력이 칠정산외편인데,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쓰는 음력의 기초가 되었다. 이외에도 조선 초기의 다양한 과학기기의 발명과 과학서적의 편찬에도 이슬람의 문화적 요소가 직·간접으로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한반도에서 이슬람의 발전은 15세기 중엽 이후 급격히 쇠퇴의 길을 걷는다. 이는 조선 왕조의 새로운 건국이념과 동아시아에서의 정치적 변혁이라는 대내외적인 요인에 기인한다. 즉 조선에서는 유교 이념에 따라 1427년 세종이 칙령을 내려 이질적 문화요소가 일대 소탕되었고, 중국에서도 명의 건국에 따른 유교사상의 부흥과 함께 이민족인 무슬림의 상대적 역할이 상대적으로 감소되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청조(淸朝)의 등장과 무슬림에 대한 대대적인 박해, 그리고 지리상의 발견 이후 동남아시아에서의 유럽 해상세력이 무슬림 세력을 압도하는 국제정치환경의 변화도 한반도에서 무슬림들의 고립과 단절을 촉진했다. 이러한 상태는 20세기 초 이후 개화의 물결을 타면서 인한 부분적으로 문호가 개방될 때까지 지속되었다.

이슬람은 새로운 종교도 우리와 관련 없는 가치체계도 아니다, 1000년의 교류 속에 우리 문화를 살찌웠고, 갈등과 충돌 없이 공존해 온 문화 파트너다. 아랍의 아라베스크가 당초문이란 이름으로 우리 문화에 섞여 있듯이, 두 문화는 이제 갈등과 편견의 시대를 접고 공존하고 협력하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로 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