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의 이해

이슬람과 꾸란 1대 칼리파 아부 바크르의 꾸란 집대성

작성자
kislam0
작성일
2019-06-13 22:33
조회
19

이슬람과 꾸란

3부 꾸란의 완성

[개관] 인류를 올바른 길로 인도할 경전

1대 칼리파 아부 바크르의 꾸란 집대성

'꾸란'이 완성되면서 예언자로서 그리고  사도로서 사명을 다한 무함마드는

모든 인간들이 죽어간 것처럼 63세를 일기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무함

마드가 세상을 떠나자  그의 동반자로서 그림자처럼 평생을 함께해 온 친구

이자 장인인 아부 바크르가 칼리파(계승자) 위를 승계하여 이슬람 공동체를

이끌게 되었다.

칼리파 위를 승계한 아부 바크르는  예언자 사후에 흔들렸던 이슬람 공동체

의 기강을 바로잡고 주변국들의  이슬람에 대한 경계와 더불어 불신감을 조

성하는 요소들을 없애고  메디나를 이슬람 공동체의  중심지로 공고히 만들

기 위하여 최선을 다했다.

이를 위해서 아부 바크르가 무엇보다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는 이슬람 발전

을 경계하며  호시탐탐 위협으로 맞서는  로마제국과 페르시아 제국을 견제

하여 이슬람을 확장하는 것과  이슬람 공동체 내에서 급속히 확산되어 가고

있는 배교자들의 난을 평정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무함마드가 살아 있을 때

는 그를 따라서 예배도 근행하고 단식도 하면서  순종적으로 따랐지만 그가

사망하고 없는 상황에서 굳이 이러한 의식들을 지키고 따라야 할 이유가 없

다고 한 배교자들이었다. 이슬람 의식을 거부하는 배교 행위는 이슬람 공동

체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이며 나아가  예언자를 충실히 따랐던  교우들에

게 반기를 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행위였던 것이다.

아부 바크르는 군대를 파견하여 배교자들을 평정하기 위하여 그들과 전쟁을

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이슬람을 거부하는 배교자들과 치른 전쟁 중에서 가

장 치열했던 야마마 전투에서는 70명을 웃도는 우수한 '꾸란' 암송자(al-Qur

ra) 들이 순교하게 되었는데 이를 목격한  오마르와 많은 추종자들은 걱정이

앞섰다. 왜냐하면 '꾸란'을 암기하고 있는 사람들이 전쟁에서 살해되는 것은

'꾸란'의 가르침에 따라  이슬람을 주도적으로 가르쳤던  사람들이 없어지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이슬람이 다음 세대로 온전하게 전해지

지 못할 수도 있을 뿐만 아니라 이슬람 공동체가 분열과 혼란에 휩싸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마르와 몇몇 추종자들은 모여서  칼리파 이부 바크

르에게 간언(諫言)을 했다. 더 많은 '꾸란' 암송자들이 죽어가기 전에 반드시

여러 곳에 기록되어  산재되어 있는 '꾸란'을 모아서 한 권의  책으로 묶어서

보존해야 한다는 의견이 었다. 아부 바크르는 이 일이 예언자 무함마드가 살

아 있을 때 하지 않은  새로운 것이었기 때문에 무척 조심스러웠다.  만일 예

언자 무함마드가  자신에게 산을 옮기라고  명령했다고 해도'꾸란'을 모아서

집대성 하라고 한 명령보다 더 무겁지는 않을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고민을

거듭하던 아부 바크르는 배고자들의 난이 평정되고 이슬람 공동체가 안정을

찾자 교우들의 조언을 받아들이기로 결정 했다. 그리서 그는  예언자 무함마

드의 서기였던 자이드 븐 싸비트에게 '꾸란'을 집대성하여서 한 권의 책으로

묶는 일을 맡겼다.

자이드 븐 싸비트는  무함마드가 생존해 있을 때 지척에서  계시를 목격하고

기록하여 암기하던,  무함마드의 신망이 두터웠던 교우들 중 한 사람이 었다.

그는 뛰어난  암기력과 기억력으로 '꾸란' 암송자들을 지도했으며  정확하고

완전한 그의 기록은 '꾸란' 암송자들에게  자신들의 기록과 암기를 비교하고

대조해 볼 수 있는 근거가 되기도 했다.  그래서 자이드 븐 싸비트는  수많은

'꾸란' 암송자들과 지속적으로 접촉해 왔으며 '꾸란'을 암송하거나 기록하고

있는 예언자의 추종자들을 가장 많이 알고 있었다. 아부 바크르의 지시에 따

라 자이드 븐 싸비트는 자신과함께 '꾸란'을 기록하고 암기하던 교우들과 한

권의 책으로 집대성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이 작업은 칼리파 아부 바크르가

염려하고 두려워한 것처럼 한 점,  일획의 착오도 허용될 수 없는  중요한 일

이 었기 때문에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었다.

예언자 무함마드는 계시를 받음과  동시에 이를 암송했다. 그리고 자신이 암

송하고 있는  새로운 구절들을 기록을 위해 선택된  다수의 추종자들에게 들

려주면 그들은 이를 바로 암기하고 기록하여 계시의 증인이 될 수 있도록 하

였다. 자이드 븐 싸비트는  기록되어 여기저기  보관되어 있는 '꾸란' 구절들

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묶는 작업을 예언자 무함마드가 계시를 받아서 암기

하고 기록하여 보관한 것과 같은 방법으로 하고자 했다. 그는 예언자 무함마

드를 추종하면서 신뢰를 얻었던 신앙심이 두터운 '꾸란' 암송자들을 모았다.

그리고 그들이 암기하고 있는 구절들과 이미 기록되어  보관되어 있는 구절

들을 대조하여 다름이 없음을 확인한 후 예언자와 함께 '꾸란' 암송과  기록

에 참가한 교우들 중 최소 2명의 증인을 확보한 다음에야 비로서  필사본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또한 2명 이상의 증인들은 반드시  자신들이 암기하고

록한 구절들이 예언자 무함마드의 입을 통해 직접 전해  들었어야 한다는

건이 따랐다.

수많은 추종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한 치의  오류나 이견도 허용할 수 없는

숭고한 직업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자이드 븐 싸비트의 '꾸란' 기록은 예언

자 무함마드의  추종자들로부터 동의를 얻을 수 있었으며  여기 저기 흩어져

보관돼 왔던 '꾸란'은 한 권의 책으로 완성할 수 있었다. 무슬림들은 계시 후

14세기가 지난 오늘날에도 이렇게 보존되어 전해지는 '꾸란을 경전으로 믿

고 신앙을 지켜오고 있다.

이주화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