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의 이해

이슬람과 꾸란(메디나와 예언자 무함마드)

작성자
kislam0
작성일
2019-04-18 13:30
조회
150



 

이슬람과 꾸란

2부 '꾸란'의 계시

메디나와 예언자 무함마드

메디나는 예언자 무함마드가 이주해 오기 전까지는 야쓰리브 또는 앗 따이

바로 불렸다. 남북으로는 산맥이,  동서로는 사막이  펼쳐져 있으며 사방이

병풍처럼 대추야자 나무로 띠를 이루고 있는 오아시스로 토지가 비옥하고

물이 풍부한 도시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막의 각박하고 건조한 분위기와

는 사뭇 다르다. 훈훈한 인심과 인간미가 넘쳤다.  또한 메디나는 지리적으

로 대상들이 북 아프리카에서 홍해 바다를 건너 메카를 거쳐 샴(시리아) 지

역과 페르시아 지역으로 통하는 남북을 잇는 교역로의 중요한 길목에 위치

해 있었다.

예언자가 메디나로 이주해 왔을 당시에 그곳에는 크게 세 부류의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들은 무함마드와 함께 이주한 이주민들과 메디나에서

이주민들을 돕고 지원하는 원주민들이 었다. 원주민들 중에는 일찍이 무함

마드를 만나 무슬림이 된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아직까지 이슬람에 대하여

반신반의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주자들의 역할이 커지고

이슬람이 확산되자 이내 이슬람으로 개종하여 이전에 입교한 사람들과 함

께 원조자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했다.

그 다음으로 많은 분포를 이루고 있는  사람들은 유대인들이었다. 그들은

비잔틴제국의 박해를 피해 메디나로 피신해 정착한 이주민 3개 부족으로

나디르 부족과 까이누까아 부족  그리고 꾸레이자 부족이었다. 그들은 주

로 전문직과 상업에 종사하였다.  고리대금업을 통하여 메디나 상권의 많

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또한 그들은 메디나에 정착하면서 아랍부족

과 평화협정을 맺고 일부는  아랍인들과 결혼하여 친인척 관계로 발전하

기도 하였지만 그들의 민족성은 결코 변하지 않았다. 그들은 권모술수에

능했으며 부족 간에 분쟁을 조성하여 갈등을 유발시키고 각종 이권에 개

입하여 중립을 지키는 듯하면서 이익을 챙기기도 하였다. 메디나 시내에

거주하고 있었던  까이누까 부족은 카즈라즈 부족과  동맹관계에 있었다.

이러한 동맹관계로 인하여  아랍부족인 카즈라즈  부족과 아우스 부족은

같은 아랍인임에도 항상 갈등과 분쟁에 시달려야 했다.

무함마드에게 가장 중요한 과제는 이러한 다양한 종류의 민족과 부족, 종

교들이 섞여있는 메디나를 한 깃발 아래 통합하고 그곳에 이슬람 움마 공

동체를 세우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각 부족들의 요구 사항을

듣고 이를 각각의 부족들에게 적용하는 것이었다 이주민들에게는 떨어져

있는 가족들을 한시바삐 메디나로 이주시켜 정착에 힘이 될 수 있게 하는

것이었고 원조자들에게는 부족 간의 갈등을 해소하고  이슬람 공동체 건

설에 동참해 줄 것을 호소했다. 이주민들과 원조자들은 무함마드의 가르

침에 수긍하고 절대적인 지지를 보냈다.  무함마드는 이주민들과 원조자

들을 피를나눈 형제처럼 신앙으로 함께 묶었다. 그들은 서로서로 결연을

맺어 하나가 되었고  원조자들은 그들이 소유한 재산은 물론 무기까지도

나누어 결속을 다졌다. 그들은 이슬람공동체 속에서 하나가 되어가고 있

었다.

그들(메카 이주민들)이전에 가정을 이루고 살면서 신앙을 받아들였던 사

람들(메디나 원조자들)은 그들에게 피난 온 이주자들을 사랑하고 시기하

지 않았으며 그들(원조자들) 또한 가난하였지만 자신들보다 그들을 먼저

생각하고 누구에게도 인색하지 않았으니 실로 그들은 번성하리라 (59:9)

실로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길에서 자신의 생명과 재산을 바쳐 이주한

자들과 그들을 보호하고  도와준 자들은 서로가 서로를 위한 보호자들이

니라.....(8:72)

그러나 문제는 메디나 부족들의 반을 차지하고 있는 유대 부족들이었다.

무함마드는 그들과도 공감대를 얻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했지만 그들은

여전히 자신들만이 선택을 받은 민족이기 때문에 그들만이 신의 축복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아랍인인 무함마드가 신의 계시를 받는 것은

불가능한 것으로 여겼다.  오직 유대인만이 예언자가 될 수 있으며 신의

계시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무함마드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어떻게 전지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  인간이 서로 다르고 우월

할 수 있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일찍이  메카에서 13년 동안

수많은 박해와 고난을 참아온 가장 중요한 이유도 누구나 신 앞에서 공

정한 대우를  받는다는 평등사상이 있었기 때문이다.  흑인이든 백인이

든 아랍인이든 비아랍인이든  부자이든 가난한 자이든  신 앞에서 구분

될 수 있는 것은 오직 그분을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신앙심 한 가지뿐이

었던 것이다.

무함마드와 유대 부족 간의 갈등이 심화되어 가면서 더 이상 무슬림은

예루살렘을 향해서 예배를 드릴 수가 없었다. 유대인들과의 관계를 어

떻게 유지해야 할까? 그들과의 동맹관계는 메디나에서 외부세력에 대

항하여 생존할 수 있는 중요한 힘이 되었지만 무함마드의 신앙적 정체

성을 흔드는 그들의 행위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무함마드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었다.

히즈라 2년 8월 그동안  예루살렘을 향해서 예배를 근행하던 무슬림들

에게 하나님의 새로운 계시가 내려졌다. 이후부터는  예루살렘이 아닌

메카의 하람 성원을 향해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우리(하나님)는 하늘을 향한 너(무함마드)의 얼굴을 보고 있나니 그대

가 원하는 끼블라(예배)로 방향을 정할 것이니라. 그러니 너의 얼굴을

(메카) 하람 성원으로 향하라. 그리고 너희들이 어디에 있던 너희들의

얼굴을 그 방향(끼블라)으로 향하도록 하라. 실로 성서의 가르침을 따

르는 자들(유대인과 기독교인)은 이것이 그들의 주님으로부터 계시된

진리임을  알게 될 것이니라. (2:143-144)

그동안 예루살렘을 향해서 예배를 드린 무슬림들은 갈등과 고뇌 속에

서 결정된 끼블라의 전환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끼블라가 예루살렘에

서 메카로 바꿔진 것은  무슬림들에게 크게 두 가지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첫 번째는 메카에서 계시초기부터 이주 전 까지 13년 동안 유일

신에대한 선교를 할 때도 그랬지만 메디나에서도 예언자를 따르는 믿

음의 형제들과 위선과 불신으로 믿음의 대오를 흩뜨리는 일단의 무리

들을 구분하는 계기가 되었고 두 번째는 메카로 예배방향이 정해지면

서 무슬림들에게  새로운 임무가 부여된 것이다.  불신자들에 의해 관

리되고 있는 성지를 되찾고 각종우상과 미신이 난무하는 메카를 유일

신 하나님을 믿는 성지로 회복시키는 일이었다.

이러한 많은 변화에 힘입어 이슬람은 메디나에서 빠른 속도로 성장해

나갔다. 메디나 중심부에는 예언자 성원이 완공되어 공동체의 면모를

갖추었고 이주민들과  메디나 원주민들과의 강한 결속은 신앙의 이름

으로 발전해 갔다. 이전에 아랍부족들과 맺었던 동맹으로 유대인들과

의 관계는 지속되었지만 무함마드에 대한 그들의 불신과 반목은 여전

히 무함마드가 풀어여 할 큰 과제로 남아 있었다.

이주화 지음

 

* 이슬람력

이슬람력은 달의 주기에 근거하여 만들어진 순수 태음력으로, 한 달이 29일 또는 30

일이며 1년은 약 355일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해의 주기로 이루어진 서력에 기준

했을 때 1년에 10일씩  줄어들어 3년이면 한 달씩 당겨짐을 알 수 있다.  이슬람력은

이후에 대상로를 통해서 중국으로 전해지면서 목축업 위주의 사막 문화에서 농경사

회에 적합한 새로운 형태의  태음력으로 번경되어 오늘에  우리가 사용하는 윤달이

가미된 태음력이 되었다. 달의 주기에서 부족한 한 달을 윤달로 부르고 3년에 한번

씩 추가해 줌으로써 태양력과 같이 절기를 맞출 수 있었다.

이슬람력의 열두 달의 이름들은 다음과 같다.  1월, 무하르람(Muharram), 2월, 싸

파르(Safar). 3월, 라비울 아우왈(Rbi' al-Auwal). 4월, 라비웃 싸니(Rabi'al-Tani).

5월, 주마달 울라(Jumada al-'Ula). 6월, 주마달 아키라(Jumada al-Akhirah) 7월,

라잡(Rajab), 8월, 샤으반(Sha'ban), 9월, 라마단(Ramadan), 10월, 샤우왈(Sha

uwal). 11월, 둘 까으다(Dhu al-Qa'da). 12월, 둘 힛자(Dhu al-Hijjah).

참고사항 : 금년 1월 1일은 양력으로 33년 만에 한번씩 날짜가 바뀌어 33년 후에

똑같은 날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