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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개요, 이주화 (기사입력: 2007/10/06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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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islam0
작성일
2019-06-14 17:52
조회
17



이슬람 개요

이주화 (기사입력: 2007/10/06 23:36)

1) 세계속의 이슬람

이슬람은 유대교, 기독교와 더불어 세계 3대 종교의 하나로 570년 아라비아반도의 멕카에서 탄생한 예언자 무함마드가 610년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를 받아 세상에 포교된 순수한 유일신 종교이다.

당시 아라비아 반도에는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유일신 하나님을 믿고 있었을 뿐 대다수의 사람들은 우상숭배와 조상신 그리고 다신교를 믿고 있었으므로 이슬람은 많은 어려움 속에서 선교에 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슬람은 그 당시의 어려운 사회적인 여건에도 불구하고 메카에서 메디나로 이주(헤지라)를 하면서 사회적으로 많은 호응을 얻었으며 급기야 사도 무함마드 생존시 이미 아라비아 반도 전체가 이슬람화 되었을 뿐만 아니라 멀리는 중국과 북아프리카 그리고 중앙아시아 일대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이슬람이 소개되게 되었던 것이다.

63세를 일기로 사도 무함마드가 별세하고 그의 뒤를 승계한 칼리파 시대와 수도를 메디나에서 다마스크스로 옮긴 우마이야 왕조, 그리고 바그다드에서의 압바스 왕조에 이르러 이슬람은 세계문화의 중심지로써 충분한 역할을 하였으며 이후 오스만 터키제국의 영화는 세계사의 한 장을 남기게 되었던 것이다.

이슬람 교세를 보면 아라비아 반도를 비롯하여 아시아와 중앙아시아 그리고 아프리카 일대에 방대하게 퍼져 있으며 유럽과 미국 등지에서는 이슬람의 부활을 말할 정도로 활발하게 이슬람 선교가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프랑스의 경우 제2의 종교로서 10 % 이상의 많은 사람들이 이슬람을 믿고 있으며 현재 1,600 개의 이슬람 성원이 있다고 한다.
오늘날 세계의 무슬림 인구는 약 17억에 달하며 이는 세계인구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이슬람교 신도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2)한국의 이슬람

한국에 이슬람이 전래된 동기는 물론 아랍 무슬림들이 한반도와 접촉한 최초의 시기로 보면 기록상 9세기 중엽 신라시대에 해상 무역로를 통하여 접촉한 사실이 나타나고 있지만 이 시기에 종교적으로 영향을 미치지는 못한 것으로 보고 있다

오늘날 한국에 이슬람이 본격적으로 전래되고 무슬림 공동체가 형성되게 된 직접적인 계기가 된 것은 6. 25동란 때 한반도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하여 유엔군의 일원으로 참전한 터키 군에 의해서 본격적으로 이슬람 선교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들 중 최초로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선교를 시작한 사람은 당시 터키 제6여단 사령부의 군 이맘(예배 지도자)이었던 “압둘 가푸르 카라 이스마일 오울루”였으며 그의 노력으로 인하여 한국 무슬림 1세대가 이슬람에 입교하여 한국에서의 이슬람 선교를 위한 전초기지를 마련하게 되었던 것이다.

1955년 9월 15일 최초로 입교한 한국 무슬림 1세대였던 김유도와 김진규형제는 “한국 이슬람 협회”를 결성하고 한국인에 의한 최초의 선교활동을 시작하였다.

1960년대에 접어들면서 조직적인 국내 선교활동에 임하는 한편, 이슬람 국가들과의 유대강화에도 적극성을 보이며 사절단을 구성하여 사우디아라비아, 파키스탄 등의 이슬람 국가들을 순방하면서 한국의 이슬람 현황을 알리고 지원을 호소하게 되었던 것이다.
1967년에 들어와 1세대 한국 무슬림 들은 이슬람 선교를 위하여 성원건립의 필요성을 통감하고 조속한 시일 내에 성원을 건립할 수 있도록 홍보와 한국의 이슬람 현황에 대하여 전 세계 이슬람 국가에 알리기 위하여 백방으로 노력한 결과 많은 이슬람 국가들로부터 성금이 답지하기 시작하였으며, 한국 이슬람교 역시 명실상부한 선교재단으로서의 성격을 갖추기 위하여 문공부에 공식적으로 “재단법인 한국 이슬람교”라는 이름의 법인체로서 등록을 필함으로써 공인된 교단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던 것이다.

성원건립의 소망은 70년대 초 박정희 대통령이 현 중앙성원 부지를 하사하면서 더욱 구체화되었으며 수차례의 사절단 파견을 통하여 모금한 성금으로 1976년 5월 21일 드디어 서울 중앙성원의 개원식을 할 수 있었으며 이날 개원식에는 세계 17개 이슬람 국가들로부터 장관, 국회의원 등 50여명의 사절단이 참석한 가운데 “소수 무슬림 국가에서의 이슬람 선교”라는 주제로 국제 세미나가 개최되기도 하였다.

1976년 서울 중앙성원의 개원을 계기로 하여 각 지방의 선교에도 박차를 가하기 시작하였는데, 1976년말에는 압두라힘 김명환 형제를 중심으로 한 부산지역 무슬림 들이 시내에 임시 예배실을 설치하고 신앙생활을 시작하였으며, 1978년 4월에는 경기도 광주군 쌍용리의 마을 주민들을 중심으로 다수가 이슬람에 입교하여 비닐하우스로 임시 예배 실을 마련하여 신앙생활을 함으로써 농촌 지역에서의 이슬람 선교에 가능성을 제시해 주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한국에서의 이슬람 확산은 이슬람권 국가들의 지대한 관심을 모아 리비아와 쿠웨이트 그리고 이집트의 독지가들로부터 지원을 받게 되었으며 부산을 비롯하여 경기도 광주, 그리고 전주에 지방성원이 건립되었고, 1986년 6월에는 후세인 유창식 형제가 기독교 교회를 매입하여 이슬람 성원으로 개조하여 개원함으로 안양을 비롯한 경기 일대의 이슬람 선교에 이바지 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한국에 이슬람이 들어 온지 50년이 지나고 있는 지금 한국에는 9개의 이슬람 성원과 각 성원마다 설치된 선교지회, 그리고 제주도와 안산에 이슬람 선교 센터가 재단법인 한국이슬람교 산하에 운영되고 있으며 경기도 일대와 지방공단을 중심으로 40여 개의 임시성원이 외국인 무슬림 근로자들에 의해서 운영되고 있다. 내국인 신도 수는 전국에 약 3만명 정도로 추정하며 7-80년대 중동 붐에 의해서 활발하게 이루어 졌던 이슬람 선교는 이후 다소 시들해진 상황이지만 90년대에 접어들어 부쩍 늘어난 외국인 근로자들에 의해 한국에서의 이슬람 선교는 활기를 되찾고 있으며 현재 국내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 무슬림 근로자 수는 10만 명에 이른다.

3) 오해받는 종교 이슬람

현재, 이슬람은 세계의 모든 국가에 선교되어 교세가 날로 확산되고 있는 추세이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이슬람에 대한 올바른 이해 없이 간접적인 방법으로 소개됨으로써 종교 명을 비롯한 창조주에 대한 개념, 교리의 왜곡 등으로 현재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오해와 편견에 의해 잘못 인식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슬람은 유대교 기독교와 같이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 종교로서 이 우주를 창조하고 그 속에 있는 피조물을 부양해 주시는 오직 한 분이신 창조주 하나님(알라)을 믿는 종교이다.
이러한 교리의 기본과는 달리 창조주에 대한 표현으로서 많은 사람들은 “알라신”이라 부르고 표기함으로써 또 다른 믿음의 개체가 있는 것처럼 이해되기도 한다. 이는 유일신 하나님을 영어의 The God 로 표현하는 것과 같이 아랍어로는 알라(Allah)로 표현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알라신”이라는 표현은 하나님이란 보통명사를 하나님신 이라고 중복 사용하는 것과 같다. 또한 이슬람은 마호메트교, 모슬렘교, 회교, 청진교 등으로 잘못 알려져 있는데 고유명사가 다른 이름으로 불려 지는 것은 올바른 방법이 아니다. 특히 타종교와 달리 이슬람교는 어떤 국명이나 지명 혹은 예언자의 이름을 따서 종교 명으로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왜냐하면 이슬람은 선민사상을 초월하여 전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종교이며 평화의 종교이기 때문이다.
이슬람이란 단어는 평화를 추구하다, 복종하다, 귀의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아슬라마”라는 아랍어 동사의 원형으로부터 파생된 동명사형으로서 “평화, 복종, 귀의”를 뜻하며 교리 적인 차원에서 보면 유일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평화를 추구하고 결국은 하나님에게로 귀의함을 말한다.

이슬람교의 기본이념은 평화, 평등, 국적을 초월한 무슬림 형제애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이슬람교에서의 평화의 염원은 무슬림의 인사, “앗 쌀라무 알레이쿰”과 이에 대한 답으로서 “와 알레이꾸뭇 쌀람” 즉 “당신에게 하나님의 평화가 깃드시길 기원합니다, 라고 하는 말을 서로 서로 교환함으로써 하나님의 진정한 평화를 기원하고 무슬림 상호간에 사랑과 신뢰, 보호와 안정감을 심어준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예배의 마지막도 “앗 쌀라무 알레이꿈 와라흐마 뚤라”를 오른쪽과 왼쪽으로 반복함으로써 모든 분들에게 하나님의 평화와 사랑이 깃들기를 축원한다. 그래서 만일 불교가 자비, 기독교가 사랑을 선교의 바탕으로 한다면, 이슬람은 이 모든 것을 포괄한 평화의 종교라고 말할 수 있겠다.

뿐만 아니라, 이슬람의 평등 사상은 국적과 민족, 피부색, 언어, 빈부의 귀천, 신분의 고하를 초월하여 모든 인류는 하나님의 피조물인 아담(A.S)의 자손으로서 한 가족이며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 평등함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므로 예언자 무함마드는 그의 언행록인 하디스에서 “아랍인이 비 아랍인 보다 우월할 수 없고 비 아랍인이 아랍인 보다 우월할 수 없으니, 오직 경외심 만이 그들을 구분할 수 있느니라.” 라고 말씀하셨다.
따라서 이것은 절대자, 창조주 하나님(알라) 앞에서 모두가 평등하며 단지 우리의 선행 즉, 얼마만큼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분을 공경하는 신앙을 가지고 임했느냐 하는 것만이 우리를 구분 지을 수 있는 유일한 기준임을 의미한다. 그래서 무슬림은 하나님의 말씀인 꾸란을 믿고 이를 가장 충실하게 따른 사도 무함마드의 언행을 추종함으로서 하나님의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확신한다.

무슬림 공동체(움마)는 혈연과 지연관계를 초월하여 하나님을 경배하는 동일한 믿음의 공동체로써 공통의 목표를 위해 서로 사랑하라고 가르친다. 그래서 이슬람에서 형제애는 그 유례를 찾아 볼 수 없을 만큼 강한 단결력과 결속력을 가지며 국적을 초월하여 친형제 이상으로 친분을 교환함을 볼 수 있다.
예언자 무함마드는 움마를 이루는 구성원들의 역할로서 함께 나눔을 아래의 하디스와 같이 강조하고 있다.
“모든 무슬림은 우리의 신체와 같아서 머리가 아파도 온몸이 아프고, 눈이 아파도 온몸이 아픈 것과 같으니라.”

2. 이슬람의 실천과 믿음

1) 다섯 가지 실천 사항(5행)

이슬람 교리는 크게 다섯 가지의 중요한 기둥(실천 사항)과 여섯 가지의 믿음(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확신)으로 이루어져 있다.
무슬림들은 일상생활을 통하여 다섯 가지의 실천사항을 지킴으로써 충실 한 삶을 살았다고 볼 수 있으며 충실한 삶의 결과는 하나님의 구원을 얻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슬람의 모든 의식행위는 이러한 실천사항들을 구체적으로 실현시키기 위한 방법들이라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서 이슬람에서 술이 금기 사항으로 규정되는 과정도 예배 의식의 실천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초기 계시에서 보면 술 취한 상태에서 예배에 임하지 말라고 했지만 나중에는 진실로 술은 해로운 것이며 사탄의 행위임을 경고함으로서 금기 사항으로 규정되었던 것이다.
무슬림은 다섯 가지의 실천 사항 중에 한 가지라도 부정하거나 불신한다면 믿는 자(무민)로서 인정될 수 없다.

(1) 신앙 고백(샤하다)

“앗슈하두 알라- 일라하 일랄라, 와 앗슈하두 안나 무함마단 라쑤-룰라.”
(나는 하나님 외에 신이 없음을 증언하고 무함마드는 하나님의 사도임을 증언하나이다.)

“샤하다”는 유일신 하나님만을 믿고 따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무슬림들은 일상 생활을 통해서 항상 믿음의 의지를 실천으로 옮겨야 함은 물론이고 믿음으로 실천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과 완전 무결하심에 대하여 확실한 신앙적인 정립이 필요하며 “샤하다” 를 통하여 신앙인임을 확신한다.
그리고 비 무슬림의 경우 이슬람에 입교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신의 의도에 따라 샤하-다를 아랍어 원문 그대로 선언해야 한다. 이슬람에서의 입교절차는 매우 간소하고 쉬운 것이 특색인데 이슬람은 형식보다 믿는 자의 의도에 더 큰 비중을 두기 때문이다. 그러나 입교 후에는 믿음의 실천을 선언하였으므로 신앙인의 자세로 한 걸음씩 한 걸음씩 실천하는 발전된 모습이 필요하다.

(2) 예 배(쌀라)

예배는 하나님을 경배하는 경건한 의식임과 동시에 신앙행위의 시작이다. 사도 무함마드의 언행록인 하디스에 의하면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의 구분은 예배의 근행 여부에 따라 구별할 수 있다고 할 정도로 이슬람에서 예배의 실천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예배의 종류에는 하루 다섯 번씩 행하는 의무예배와 매주 금요일에 근행하는 주마합동예배, 그리고 축제일에 근행하는 축제예배, 장례예배, 따라위예배(라마단 단식월에 근행하는 특별예배) 등이 있다.
하루 다섯 번의 예배는 성원(聖院)이 아닌 가정이나 일터, 야외 등 깨끗한 공간이면 어디든지 행할 수 있고 예배에 소요되는 시간은 불과 10여분 정도로 짧다. 본래 예배란 예의를 갖추어 절을 하는 것으로 예배는 선 자세로 꾸란을 암송하고 반절과 큰절을 몇 회 반복함으로써 조용하고 엄숙한 가운데 근행된다. 또한 성원에서 거행되는 예배 대열은 피부색, 국적, 빈부귀천을 초월함으로 하나님 앞에서 만인이 평등함과 동등한 존엄성을 갖도록 유도한다.

。 1일 5회 근행하는 의무 예배의 명칭은 다음과 같다.
1. 파즈르(새벽) 예배 - 동트기 전에 드리는 예배
2. 주흐르(낮) 예배 - 정오를 조금 지난 시간에 드리는 예배
3. 아스르(오후) 예배 - 주흐르와 마그립의 중간 시간에 드리는 예배
4. 마그립(저녁) 예배 - 일몰 직후의 시간에 드리는 예배
5. 이 샤(밤) 예배 - 잠들기 전어 드리는 예배시간
하루에 다섯 번씩 거행되는 예배 의식은 자신을 재조명해 보는 삶의 여유를 가지며 나아가 선을 권장하고 악을 멀리하는 자성의 시간을 갖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3) 단식(사 움)

단식은 이슬람력(히즈라)으로 9월인 “라마단”달 동안 새벽(해뜨기 전 미명의 시간)부터 해가 질 때까지 일체의 음식이나 음료, 성행위를 금하는 것을 말한다. 아랍어의 “사움” 또는 “시얌”이란 절제를 뜻하며 식욕, 물욕, 성욕 등 인간 본능에 대한 외적 절제와 언행과 모든 사악함에 대한 내적 절제까지 포함된다.
사도 무함마드의 언행록인 하디스에서 단식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단식은 정신적, 물질적 차원에서의 절제를 의미하며 일상생활에서 필요로 하는 모든 음식물을 동트기 전부터 일몰 시까지 금하고, 악의 요소로부터 멀리해야 하느니라.”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단식을 명한 가장 중요한 이유를 크게 3가지로 나눈다. 그것은 정화차원에서 신앙을 가진 개개인의 정신세계와 육체를 재정립하는 의미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비이성적이고 비도덕적인 만연한 악습을 뿌리뽑을 수 있는 연례행사로 간주되기도 한다.
그 첫 번째는 자신의 정신세계를 정화하는데 의미를 두고 있다. 단식을 행하는 무슬림은 단식 월을 맞이하여 매일 매일 근행하는 예배에 보다 충실하며 꾸란을 읽는 시간을 늘려 하나님의 가르침을 상기하고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진다. 1개월간의 단식 기간은 신앙심을 높이고 신앙인으로서의 자질과 인내심을 함양하는 수련기간이라 할 수 있다.

두 번째는 단식을 통하여 자신의 육체적 능력을 직접 시험해 볼 수 있다. 결코 짧지 않는 한달동안의 단식을 통하여 자신의 건강을 체크하고 육체적 한계를 체험해 봄으로서 하나님의 은총과 자신이 누리고 있는 축복에 대하여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는 데 의미가 있다.

마지막 이유는 자신의 정신세계와 육체를 재정비하는 과정에서 배고픈 사람들의 고통이나 아픔을 자신이 직접 체험해 봄으로써 주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들에게 자선을 베풀 수 있는 계기를 만든다. 우리는 일상생활을 통하여 축적된 부를 여러 가지의 방법을 통하여 사회에 환원할 수 있는데 단식을 통하여 자신의 재산 중 일부를 희사함으로써 재산을 정화하여 더욱 가치 있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4) 희사(자카트)

이슬람을 이루는 네 번째의 중요한 의무 사항은 희사의 의무로써 수입이 있는 모든 무슬림은 1년을 단위로 자신의 수입을 정산하여 순수 저축액 중의 2.5%에 해당되는 금액을 반드시 사회에 환원하여야 한다. 만일 부채가 있거나 가족을 부양해야할 의무가 있는 사람에게는 부채상환과 가족부양의 의무가 우선되며 지출에 있어서는 절약과 계획적인 소비를 의무로 규정하고 있어 과소비를 부추기거나 과다한 지출을 일삼는 행위를 금하고 있다

또한 축제헌금(자카뚤 피뜨르)이라 하여 이슬람력 10월 1일 축제예배가 끝나기 이전 시간까지 가족 수에 따라 지불하는 희사금이 있다.

자카트(희사)는 구빈세와 같은 세금의 일종임과 동시에 희사금이나 자선금의 의미까지를 포함하고 있다. 자카트의 언어적인 의미는 정화, 증진, 축복으로써 자카트를 함으로써 마음이 정화되고 소유한 재물이 순수해지며 희사의 행위로써 재물이 증가됨을 의미한다.
또한 재물에 대한 인간의 탐욕과 부정한 마음을 정화하고 가난한 자가 부자에게 가질 수 있는 시기심과 위화감으로부터 보호되고 아울러 자선의 미덕을 증진시켜 준다.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는 부익부 빈익빈의 부의 편중 현상을 완화시켜 경제적 안정에 도움을 주기도 한다.

(5) 성지순례(핫즈)

성지순례는 정해진 기간에 행하는 핮즈(대순례)와 기간 외의 순례인 우므라(소순례)로 구분하며 핫즈의 경우 무슬림들은 건강과 재력이 허용하는 한 사우디아라비아 성지 메카를 순례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특히 매년 이슬람력 12월에 거행되는 순례행사는 전 세계로부터 수백만 명의 무슬림 순례 객들이 같은 복장을 하고 인종과 신분, 빈부귀천의 차별 없이 신앙의 대 행렬에 참가함으로써 신앙을 다지고 확인하며 무슬림 공동체 의식을 공유하는데 큰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또한 순례기간 동안의 고행을 통해 이브라힘(아브라함)과 이스마일(이스마엘)의 유일신에 대한 투철한 믿음과 선례를 답습함으로써 신앙적 깨달음을 얻고 나아가 자신의 믿음을 확신하고 확고히 하는데 있다고 하겠다.

2) 여섯 가지 믿음(6신)

위에서 언급한 다섯 가지의 실천사항을 토대로 이슬람 신앙은 기초를 다지게 되며 이러한 믿음이 실천으로 옮겨지기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절대적인 확신을 가져야만 한다.
확신과 의무사항의 실천은 곧 믿음으로 승화되어 신앙인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이슬람에서 여섯 가지의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확신은 다음과 같다.

(1) 유일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

이슬람교는 유대교 기독교와 함께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된 순수하고 철저한 유일신 사상의 종교이다.
이슬람교에서 신의 유일성에 대한 믿음은 절대적이며 신앙의 근본이다. 창조주 하나님만이 오직 이 우주를 창조하시고 유지하시는 전지전능하신 분이시다. 따라서 이슬람은 창조주 외에 다른 잡신이나 우상, 신격화된 인간을 결코 신성으로 믿지 않고 이를 부정함으로써 샤머니즘에 현혹되지 않고 오로지 하나님의 진리만을 추구하는 바탕이 된다고 본다.
성 꾸란 112장 “알 이클라스”장에 의하면
“자비로우시고 자애로우신 하나님 이름으로
말하라, 그분은 한 분이시라고
하나님께서는 영원하시니
그분은 낳지도 않고 낳아지지도 않았으니
그분과 대등한 자 아무도 없느니라.”
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창조주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이 존재하지 않음을 확실히 했고 하나님은 부모와 처자식을 가질 수 없음을 명확히 했다. 그러므로 이슬람에서는 신격과 인격이 창조주와 피조물과 같이 주종의 관계로 분명하게 구분됨으로써 인간의 신격화나 우상화가 철저하게 배격되고 있다.

(2) 천사들을 믿는다.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는 임무를 맡은 영적 존재로 선지자들에게 하나님의 계시를 전한다든지, 인간이 행한 선악을 기록한다든지, 인간의 생사를 담당하는 등의 임무를 맡아 각 분야에서 하나님의 명령을 성실하게 이행하는 피조물의 하나이다.
그러나 이들 천사들은 자의에 따라 행동하는 능력을 부여받지 못했기 때문에 오직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하나님의 충직한 심부름꾼과 같은 존재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천사들은 지브릴(계시의 천사), 라낍(선행을 기록하는 천사), 아띠-드(악행을 기록하는 천사), 이쓰라필(부활의 천사), 이즈라일(죽음의 천사), 미카일(음식의 천사)등으로 이 이외에도 수많은 천사들의 존재를 믿어야 한다.

(3) 예언자들을 믿는다.

온 인류를 하나님의 바른길로 인도하도록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된 선지자들로 인류의 시조이며 최초의 예언자이신 아담(알레이히 쌀람)을 비롯하여 노아, 아브라함, 이쓰마엘, 이삭, 야곱, 모세, 예수 그리고 최후의 예언자 무함마드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예언자들을 믿는다. 이들 예언자 가운데는 하나님의 계시 없이 예언에 의해 인간을 계도하신 분이 있는가 하면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에 따라 인간들을 하나님의 바른 길로 인도하신 사도(Messenger)들도 이에 포함된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예언자나 사도들을 인간의 모범으로써 존경하고 사랑할 뿐이지 우리와 똑같은 하나님의 피조물임을 확고히 믿고 있다.

(4) 성서들을 믿는다.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된 모든 성서들을 믿는데 다윗의 시편, 모세의 구약, 예수의 신약, 무함마드의 꾸란을 행위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지침서로 하나님의 말씀이 담긴 성서임을 믿는다. 그러나 이들 성서의 말씀이 인간에 의해 수정, 보완된 구절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지를 않는다.
성 꾸란은 하나님의 말씀이 최종적으로 완성된 계시록으로써 1,400여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한자의 첨삭도 없이 원문 그대로가 철저하게 지켜져 오고 있음은 성 꾸란이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이 수록된 성서임을 증거 하는 예라 하겠다.
이슬람교의 경전인 꾸란과 예언자 무함마드의 언행록인 하디스는 이슬람법의 원전이 되고 있으나, 꾸란은 114장 전체가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이고 하디스는 사도 무함마드의 말씀과 행위 그리고 묵인 사항을 수록한 것으로 신의 말씀과 사도 무함마드의 말씀이 완전하게 분리되어 있다는 사실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5) 최후의 심판일과 부활을 믿는다.

우리 인간은 사후 영계에서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받기 위해 부활하며 현세에서 행한 행위에 따라 내세의 삶이 행복과 불행, 성공과 실패로 결정지어진다.
성 꾸란 7장 8절에 “선행으로 저울이 무거운 자는 성공하리라.” 하심으로써 천국과 지옥의 분류심사는 선악의 경중에 달려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현세에서 하나님께서 마련해 주신 기준에 따라 올바른 삶을 영위함으로써 하나님의 보상을 기약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신앙생활에 최선을 다 하여야 할 것이다.

(6) 정명을 믿는다.

하나님은 우주를 창조하시고 유지하시며 우리의 생사를 주관하신 전지 전능하신 분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다 아시고 계시는 분으로서 현세에서 발생하는 모든 일들은 하나님의 뜻과 예정에 따른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당한 어떠한 고난이나 불행도 하나님의 뜻이라 믿고 이를 겸허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강한 믿음이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성 꾸란 9장 51절에 “말하라, 하나님께서 명하신 것 외에는 어떠한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니라, 하나님은 우리의 보호자이시니 믿는 자들은 모든 것을 하나님께 의지해야 하느니라.”하셨다.
정명을 믿는 올바른 자세는 성공, 실패, 행복과 불행을 당했을 때 최선을 다한 좋은 결과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좋지 않은 일이나 결과에 대해서는 더 큰 하나님의 보상을 기대하고 도약을 위한 빠른 체념의 자세라 하겠다.

3. 의식 및 주요행사

이슬람에서의 의식은 주로 예배를 통하여 이루어지는데 예배의 종류에는 하루 다섯 번씩 근행하는 의무예배와 금요(주마)일 정오예배 시간에 근행하는 주마 합동예배 그리고 축제(이드)일에 근행하는 축제예배 고인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근행하는 장례예배 등이 있다.
각 예배마다 예배의 형식이나 회수의 차이는 있지만 의식을 거행한 가장 중요한 의미는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고 그분의 은총에 감사드리는데 그 의미가 있다.

주요 종교 행사로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라마단(이슬람력 9월)달의 단식을 종료하는 축제행사로써 단식 기간 동안 의무사항을 지키면서 자신의 신앙을 바로잡는 수행의 시간을 무사히 끝내고 새달을 맞이하여 첫째 날(10월1일) 거행되는 축제행사이다, 이를 일컬어 이둘 피뜨르(파제절)라고 한다.
이날은 동이 튼 후 집 근처의 가까운 이슬람 성원에 가서 축제예배를 근행하고 이웃과 친지를 방문하며 한 달 동안 건강하게 단식에 임할 수 있었던 하나님의 무한한 은총에 감사드리고 서로 음식을 나누며 안부를 묻는 것이 일반적이다.

또 다른 축제는 성지순례 기간 중에 거행되는 희생제 행사인데 순례의 절정이라고 볼 수 있겠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를 순례 중인 사람들은 메카에서 이둘 이드하(희생제) 축제 예배를 근행하고 순례의식을 행하며 순례를 떠나지 못한 사람들은 집에서 가까운 이슬람 성원에서 희생제 예배를 근행한다.
희생제의 의미는 진실로 우리들의 믿음과 희생 그리고 삶과 죽음, 이 모든 것이 창조주 하나님을 위한 것임을 상기하며 그 예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그의 아들을 재물로 바칠 것을 명하자 아브라함과 그의 아들 이스마엘은 추호의 의심도 없이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였다는 성서에서 유래하여 그들의 숭고한 희생정신과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돈독히 하는 계기로 삼는데 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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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이슬람교 중앙성원 이맘
* 이 글은, 한국 기독 청년학생 연합회(한기연)의 가을학기 강연회(10월 1일 개최)에서 필자가 발표한 내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