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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아파 이슬람 사상의 대가 (사드르 앗 딘 쉬라지 Sadr ad-DIin Shirazi)

Author
kislam0
Date
2018-12-31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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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아파 이슬람 사상의 대가

사드르 앗 딘 쉬라지 Sadr ad-DIin Shirazi, 1571-1641

 

생애

사드르 앗 딘 쉬라지는 이슬람 역사에서 큰 족적을 남긴 쉬아파 이슬람 사상가이자 철학자이다. 그는 일반

무슬림들과 학자들 사이에는 흔히 '물라 사드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그는 17세기 이란 학문의 르네상스

를 이끌었던 대학자이다. 쉬라지 연구가인 올리브 리만에 의하면,  그는 최근 400년간 이슬람 세계의 가장

중요하고 영향력 있는 철학자였다고 말할 수 있다.  쉬라지는 이슬람 황금기와 안달루스 시기에 이룩한 이

슬람 학문의 금자탑을 총체적으로 집대성안 학자로서  철학 분야에서 계몽주의의 태두로 일컬어지고 있다.

 

쉬라지가 행한 불멸의 작업은 그에 앞서 1000년 동안 활동한 선학들의 이슬람 사상을 집대성하여 이를 체

계화한 일이다.  그는 방대한 작업을 수행할 만큼 박식했으며,  다방면에서 학문의 최고봉에 올랐다. 그는

이슬람 철학과 사상의 최고 전문가였을 뿐만 아니라, 신학, 수피사상, 꾸란 주해, 특히 그는 '꾸란'과 하디

스에 정통하였고, 쉬아파 이맘들에 대한 연구에서도 독보적이었다.

 

쉬라지는 그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1571년 이란  남부 도시 쉬라즈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친 이브라힘 쉬라지는 사파비조의 장관을 역임한 관료이자 학자로서 명망이 있던 인물이었다. 그는 쉬

라즈에서 초등교육을 이수하였고,  그 후 1591년  카즈윈을 거쳐 1579년에 이스파한에서 고등 교육을 받

았다. 당시 이스파한은 사파비 조의 수도로서 전 세계의 학자들과 문인,  지식인들이 몰려드는 문화적 중

심지였다.  그곳에서 그는 당대 최고의 스승인 아스타라바디, 미르 다마드, 바하우딘,  알 아밀리 등의 가

르침을 받았다.  아스타라바디는 쉬라지의 천재성과 학문적 우수성을 알아보고 그에게 남다른 애정과 학

문적 열정을 쏟아 부었다.  몇 년 후 쉬라지는 거의 모든 학문분야에서 스승을 능가할 정도로 급성장하였

다. 즉, 쉬라즈는 쉬아파 학문 전통에서 강조되는 법학, 꾸란 주해, 하디스학 같은 정통 이슬람 학문은 물

론 철학이나 신비주의 연구 같은 이성적 고학 분야에서도 최고 학자로서 확고한 학문적 토대를 이룩하였

다. 동시에 그는소위 철학적 신비주의 계몽주의 학파라는 새로운 학문적 흐름을 주도했다.

 

쉬라지는 교육을 마친 후 세속적인 도시를 떠나 이란 쉬아파의 성지인 콤 시 근교의 카학 이란 조그만 시

골에서 오랜 기간 묵상과 금욕으로 고행 수련을 하면서 은둔하였다. 그는 지식이란 머릿속에서 논리적으

로 조합되는 것이 아니라 깊은 명상과 적절한 체험을 통해 생성되는 산물일 때 그 가치가 있다고 믿었다.

 

쉬라지는 고매한 학식과 인품을 지닌 학자로서 당시 지식사회에 널리 알려져 있었으며,  궁정 학자로 추

대되어 이스파한으로 초대를 받았다.  그러나 그는 궁정에서 벌어지는 음모와  비학문적 술수에 크게 낙

담하고 부와 권력을 내팽개치고 다시 쉬라즈로 돌아왔다.  그 후 그는 본격적으로 새로운 교육과 저술에

전념했다.  그의 가르침은 종전의 보수적이고  관념적인 고루한 지식과 학문 전통에 바탕을 두기 보다는

실용적이고 행동하는  실천적 학문의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깊은 신앙적 본질을

조금도 흩뜨리지 않았다.  그것은 그가 도보로  7차례나 메카를 순례했던 사실에서도 잘 나타난다. 그는

마지막 순례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바스라에서 사망하였다.  그의 무덤은 현재 이라크  영토인 나자프

시에 있다.

 

업적

 

쉬라지의 학문적 업적은 지대하다. 현재 그가 집필한 책은 50권 이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계몽

철학의 대가인 샤합 알 딘 수흐라와르디와 이슬람 세계 최고의 철학자인 이븐 시나의 주해서를 집필했

을 뿐만 아니라, 이븐 아라바의 수피 형이상학,  아쉬아리학파와 쉬아 열두 이맘파의 신학 등을 체계적

으로 집대성해서 정리했다.  더욱이 그는 신학, 꾸란 주해, 이슬람 법학, 철학 등 분야에서 독창적인 저

술을 남겼다. 그의 주요 저술에는 '통찰', '무지 시대의 우상 배격'. '4개의 지적 여행' 등이 있다

 

쉬라지는 '4개의 지적여행'이란 저술에서 철학에 대한 무지를 질타하면서 철학이 종교와 잘 접목될 수

있는 학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 책에서 현재 우리가 세상의  진리라고 믿고 있는 것은 최초의 인간

인 아담에게 계시되었던 바로 그 진리라고 말했다.   즉 그는 태초의 진리는 아담에서 아브라함과 이후

의 예언자들에게로,  그리스 철학자와  이슬람의 마지막 예언자 무함마드에로,  그 다음에는 무슬림 수

피들에게, 그리고 맨 마지막으로 최근의  철학자들에게 단계적으로 전이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피타

고라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플로티누스 같은  철학자들은 모두 '지혜의 기둥들'이며

예지 능력을 가진  '지혜의 빛을 받았다고 간주했다.  쉬라지가  예언자로부터 얻어진 지식과 철학자들

에게서 얻어진 지식을 서로 구분하지 아니한 학문적 입장은 매우 독특하였다.  이 견해에 의하며, 쉬라

지는 하나님의 진리가 존재한다고 믿었다.  예언자 무함마드의 가르침과 그리스 철학자의 지식을 하나

의 개념으로 설명하고 논증한 방식을 놓고 쉬라지는  정통 이슬람 울라마들로부터 심한 비난을 받았다.

심지어 그는 이단이나 무신론자로 간주되기도 했다.

 

쉬라지가 주장한 진리의 통일성은 결국 이슬람 사상의 핵심인 일원론적 유일신 사상, 즉 타우히드와

일맥상통할 뿐만 아니라, 쉬아파 전통의 논리적 허점을 보완하는 학문적 근거로 널리 인용되기도 했

다. 정통 순니파 이슬람에서는 모든 계시의 진리는 무함마드 시대에 종결되었다고 주장하지만, 쉬아

파 전통은 열두 이맘들이 계속해서 무함마드의 계시 전통을 부분적으로  이어 받았다고 주장하기 때

문에 쉬라지 사상은 크게 각광을 받을 수 있었다. 물론 열두 이맘 각각은 그 자신이 예언자가 아니라

하더라도  무함마드에 의해 계시된 계시된 진리를 적용하고  실행하는 주관자 역활을 가지고 있었다

고 믿었다.  인류역사에서 이러한 주관자 전통은 열두 이맘 이전부터 계속 존재해 왔으며  결국은 아

담까지 소급될 수 있다는 것이  쉬라지의 학문적 믿음이었다. 그는 열두 번째 이맘이 은둔 생활을 떨

치고 재림자인 마흐디로 다시 지상에 강림하면, 인류는 아브라함 시대의 유일신 사회로 돌아갈 것이

라고 주장했다.

 

철학적 사상

 

쉬라지 철학의 핵심은 실체로서의 존재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어디서 존재의 대상을 인식하던, 결

국은 다양한 모습으로 보이는 존재의 하나의 실체를 인식하는 것이다.  존재 그 자체에 대한 강조 학

풍은 그 보다 약 300년 이후에 등장한 독일 철학자 하이데거의 존재로 이어졌다. 존재론자로서 쉬라

지 철학 사상의 근간은 "존재는 실제에 앞서고, 따라서 무엇이 먼저 존재한 다음에 실재한다"는 것이

었다.  그렇지만 그는 신을 모든 존재의 우위에 둠으로써  이슬람 철학의  형이상학적 논지를 전개해

나갔다.

 

하나의 존재, 일원론적 진리, 그리고 실체적 인식 같은 개념은 쉬라지 이전의 아랍 철학자 이븐 아라

비의 철학 사상을 이어받은 것이었다. 쉬라지 자신도 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쉬라지의 이러한 철

학적 추론의 궁극적 귀결은 태양이며,  모든 존재는 태양의 한 줄기 빛으로 표현된다는 것이었다. 이

러한 사상은 동시에 태양의 빛줄기 이론을 정립한 신플라톤 학파의 주장과도 유사하였다.

 

그런 철학적 맥락을 이슬람에 유추해보면 결국 실체의 궁극적 존재는 신에게 귀결되며,  모든 존재는

신으로부터 나오는 하나의 줄기인 셈이었다.  물론 존재의 다양성이나 존재의 차이는 달라질 수 있었

다. 쉬라지는  이런 유추 개념을 이슬람에 적용시켜  '꾸란'을 신의 말씀인  동시에 존재 그 자체로 보

았다. 따라서 종래의 신학적 접근이나 방법론이 아닌  존재 철학의 방식과 인식으로 신과 '꾸란'을 해

석한 것이 쉬라지 학문의 특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쉬라지가 신의 존재를 증명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어떤 존재가 있다.

2) 이 존재는 모든 완벽함 중의 완벽함이다.

3) 신은 완벽하고 존재 속의 완벽함이다.

4) 존재는 실체다.

5) 실체는 완벽함의 정도에 따라 구분된다.

6) 구분은 한계를 가진다. 가장 큰 최상의 존재로 나아간다.

7) 따라서 신은 존재한다.

 

쉬라지는 평생 계시와 이성 간의 대립과 조화를 찾기 위해 고뇌했으며, 지성을 인간의 내적 예언으로 보았

다. 물론 이런 사고는 16-17세기 이슬람 학문 전통에서 위험한 발상이 었다. 왜냐하면 무함마드 이후 어떤

인간도 신의 지식이나 말씀에 토를 달거나 논쟁할 수 없도록 규정한  울라마들의 보편적 인식 구도에 균열

을 일으키는 결과를 가져다주었기 때문이다.

 

꾸란 해석

 

쉬라지는 꾸란 주해에 있어서 내적 성찰이나 내면의 숨겨진 의미를 파악하지 않는 표면적 해석이나 자구

번역에 강한 거부감을 나타냈다. 그렇지만 이성적 판단을 뛰어넘으면서까지  내면의 숨겨진 해석에 매달

리는 닫힌 주장을 고집하지는 않았다. 그에게 최상의 접근 방식은 외적 의미를 다치지 않으면서도 내면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갈려는 노력이라 할 수 있다.

 

이런 방식의 꾸란 해석에서,  역사상 어떤 이슬람 철학자도 쉬라지 만큼 깊이 있게 고민하고 성취를이룩한

사람은 없었다. 그는 '4개의 지적 여행'에서 인간의 지성이 진보하는 단계를 다음과 같이 나누었다.

 

1) 물질적 세계로부터 벗어나서 성스러움에 몰입하는 단계

2) 성스러운 이름과 속성을 얻는 단계로서 성인의 반열에 올라 신의 뜻대로 보고 듣고 행동할 수 있는 단계

3) 자기 소멸의 마지막 단계로서 개인의 완전한 변화의 단계

4) 성인으로사 다시 세상으로 회귀하여 영적인 길을 다른 사람에게 인도하는 단계

 

영혼과 관련해서 쉬라지는 정통 이슬람 학자들의 사후 관련 주장을 지지했다. 그는 부활의 날이 오면 육체

의 부활은 생전의 육신이 아니라 새롭게 태어나서 주어지는 육신이라는 점에 동의했다.  놀랍게도 그는 인

도 사상인 카르마를 연상케하는 부활의 개념을 제시했다. 그는 인간 각 개인은 사후에 육신과 영혼이 단순

히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현세에서의 행위로 엮어진 육체를 갖게 된다고 보았다. 결국 인간은 그들이 살았

던 대로 새로운 세상으로 입문하는 것이었다.  현세에서 쌓인 악행은 지옥으로 향하게 되는데 그것은 영혼

이 이미 악으로 물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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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라지에 대한 평가

 

쉬라지의 학문적 깊이와 영향에도 불구하고 서구 사회에서 그에 대한 연구는 아직 크게 주목을 받지 못

하고 있다. 최근에 앙리 코르벵, 제임스 모리스, 사이드 후세인, 나스르, 파즐루르 라흐만 같은 학자들이

쉬라지에 대한 새로운 연구 결과를 내놓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 파즐루르 라흐만으 쉬라지의 형이상학적

철학에 관한 연구는 가장 심도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의 이슬람 사상에 대한 기여는 그의 시대에

이미 페르시아와 인도 사상 연구에 영향을 끼쳤고, 1950년대 이후에 와서는 이란의 종교학자들에게 지대

한 영향을 끼쳤다.

 

 

이희수 한양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