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LAMP OF ISLAM

신을 사랑한 수피 라비야 알 아다위야

Author
kislam0
Date
2019-04-04 22:46
Views
321

신을 사랑한 수피 

라비야 알 아다위야(717-796)

생애

이라크의 바스라 시에서 태어나 '바스라의 라비아'라고 불리기도 하는 라비아 알 아다위야 알 까이시야는

이슬람 수피주의 발전에 기여한 여성으로 꼽힌다. 우리에게 전해지는 라비아의 행적들은 카돌릭에서의 성

녀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중세 무슬림들이 예루살렘에서 사망하여 그곳에 묻힌 라비야의 묘지를 순례하

였다는 이야기는 그녀가 이슬람의 성녀임을 보여준다.

 

라비아는 분명 역사 속의 실존 인물이지만 그녀에 대한 역사적 기록이 많이 남아 있지 않으며 전해지는 기

록들이나 이야기들은 과장된 것으로 의심이 가는 것들이 많다. 라비아의 가장 오래된 전기는 페르시아 시

인 파리드 앗따르(1120년 사망)가 쓴 '성인회고록'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이 쓰인 시점은 라비

아가 죽은지 거의 300년이 지난 후였기 때문에 기록된 라비아의 행적들을 전설적인 이야기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이야기들은 라비아의 신앙생활과 가르침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자료

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라비아의 출생과 신분에 대해서는 의견이 일치되지 않으나, 앞에 언급한 바와 같이 바스라에서 717년경에

태어나 생애 대부분을 거기서 살았던 것으로 추측된다. 전기 앗따르에 의하면 그녀는 가난한 집안의 넷째

딸로 태어나 아랍어로 네 번째 라는 뜻을 지닌 라비아 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녀는 어려서 부

모를 잃고 고아가 되는 바람에 노비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노비가 아니었다는 주장도 있으나, 이슬

람 수피즘을 연구한 마가렛 스미스는 라비아가 노비였다는 확실한 증거가 없다고 반박했다. 라비아의 이

름 뒤에 아버지의 이름이 없고 알 아다위야라는 부족 이름만 사용된 것이 그녀가 노비였음을 보여주는 증

거라는 주장도 있다. 라비아의 삶을 다룬 이집트 영화 '라비아 알 아다위야'에서는 남자들과 함께 술을 마

시고 향락에 빠진 모습으로 라비아를 그리고 있어 사실을 왜곡했다는 비난도 있다. 라비아가 노비에서 해

방되기까지의 신비로운 경험을 앗따르는 아래와 같이 적고 있다.

 

어느 날 어떤 남자가 노래와 향락에 젖어 살던 노비 라미아의 행실을 비난하자, 놀란 라비아가 도망가다가

길에서 미끄러져 의식을 잃었다. 얼마 후 라비아는 정신을 차리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알리시여, 저는 아는 이도 없고 부모도 없는 고아이며 천한 노비일 뿐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넘어져 손목을 다쳤습니다. 그러나 슬프지 않습니다. 저는 당신

을 기쁘게 해 드리길 바랄 뿐이며, 당신이 저에게 만족하시는지 아닌지를 알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이 때, 다음과 같은 목소리가 들렸다. "슬퍼하지 마라. 너는 최후 심판의 날 천국에서 알라와 가장 가까운

자들도 부러워할 자리를 차지하게 되리라."

 

이후 라비아는 낮 동안 주인이 시키는 힘든 일을 하면서도 금식을 했고 기도를 하며 경건한 삶을 살았다.

라비아의 주인은 어느 날 창밖을 내다보다가 기도하는 라비아의 머리 위에 둥근 고리 모양의 후광을 발견

하고 그 빛 때문에 집이 환하게 빛나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다. 이 일로 놀란 주인은 라비아를 노예에서 해

방시켜 주었다.

 

라비아는 노비에서 풀려난 후 사막으로 들어가 은둔처를 짓고 혼자서 기도에 정진했다. 독신으로 수도승

과 같은 삶을 사는 동안 당시 유명 인사들로부터 청혼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이들 가운데서 당대에 금욕주

의자, 신학자, 설교가로서 명성을 떨치며 바스라 근처에서 수도원 같은 은둔 조직을 설립한 압둘 와히드

빈 자이드)793년 사망)와 바스라의 하산(728년 사망)이라고 불리는 이슬람 초기 수피주의자의 청혼이 유

명하다. 최후의 심판날에 대한 두려움과 세상사에서 오는 슬픔 때문에 항상 울며 다니는 탓에 '우는 수피'

라고 불린 하산이 창문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울고 있었는데, 마침 라비아가 그 아래를 지나가다가 발 위

로 떨어지는 눈물을 보고 비가 오는 줄 알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러나 하산은 라비아보다 70년 먼저

세상을 떠난 인물이므로 두 사람의 만남이 실제 있었다고 보기에는 어렵다. 다만 이런 이야기는 두 사람이

모두 사색적인 것보다는 경건한 예배를 중시하며 재산이나 지위와 같은 세속적인 것을 거부하는 등 동일

한 입장을 취한 수피주의자였음을 의미하는 이약로 해석될 수 있다.

 

신을 사랑한 수피주의자

 

라비아가 살았던 우마이야 조 시대(661-750)에는 수피주의가 아직 초기 단계에 있었기 때문에 교리나 사

상 체계가 완성되지 못한 때였다. 그녀의 금욕적인 생활과 청빈 그리고 육체적 욕망에 대한 무관심, 신을

향한 사랑 등에 관련된 이야기들을 비추어 볼 때, 그녀의 수피즘은 '꾸란'에 묘사된 심판의 날에 대한 두

려움에서 발생한 금욕주의의 테두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니콜슨은 이슬람 초

기 수피주의자들이 취한 자기도취, 엄격한 금욕, 종교적 열정, 거의 냉담에 가까운 정적주의적인 행태가

감성에 의해 변형되면서 다음 단계로 발전되고 있음을 보여 주기 시작한 인물이 바로 라비아라고 평했다.

 

라비아는 사랑의 교리를 강조한 초기수피주의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알라는 우리를 사랑하며 분이며 우

리는 그 분을 무엇보다도 사랑한다" 라고 말하면서 신을 향한 절대적 사랑을 강조했다. 다음은 라비아의

신에 대한 절대적인 사랑을 보여주는 이야기들 중 하나이다.

 

"전능하신 알라를 사랑하느냐?" 라는 질문을 받고 라비아는 "그렇다"라고 답했다.

"악마를 증오하는가?"라고 묻자 라비아는 이렇게 대답했다. "알라에 대한 저의 사

랑으로 악마를 증오한 여유도 없습니다. 저는 꿈속에서 예언자를 만났습니다. 그

분께서 [라비아여, 나를 사랑하느냐?] 라고 물어서 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하

나님의 사자여,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알라를

랑하는 마음이 저를 사로잡고 있기 때문에 어느 다른 것을 사랑한다든지 미워할

마음이 제게는 없습니다]."

 

이 외에도 라비아는 신을 향한 수많은 사랑의 시들을 남겼다. 그 가운데 하나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당신을 사랑하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이기적인 사랑과 당신에게 걸맞는 만큼의 사랑인 것입니다.

 

항상 당신만을 생각하느라 다른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음은

비로 이기적 사랑인 것입니다.

 

나의 흠모의 눈길에 베일을 걷어 올려 줄 때

그것이 바로 가장 순수한 사랑입니다.

 

이것저것에 대한 찬미는 내 몫이 아니며

당신이 그 모두를 찬미하는 분임을 저는 잘 압니다.

 

이 시는 헌신적 사색이 어우려져 있으므로 금욕주의적 수피즘이 끝나고 견신론이 시작됨을 보여주는 시라

고 니콜슨은 평했다. 견신론은 "꾸라이나 순나의 완전함을 인정하지만, 어느 정도 외래 사상의 영향을 받은

수피주의 형태인데, 대표적인 인물로 이집트 출신의 유명한 수피인 두 알 눈(850년 사망)을 꼽을 수 있다.

그는 이슬람 수피즘의 쳬계와 교리를 완성한 인물로 타우히드, 즉 신과의 합일은 사랑을 통해서 가능하다

고 주장했다. 따라서 이 시는 라비아가 금욕주의적 신비주의를 한층 발전시킨 후대 수피주의 학자들에게

영감을 준 중요한 인물로 평가되는 근거가 된다.

 

라비아의 가르침과 유사한 경향을 추구한 동시대의 수피주의자로는 라바흐 알 까이시를 들 수 있다. 그는

순결한 삶과 회개와 신앙심을 중요시했으며, 라비아의 금욕적인 생활을 인도하고 많은 가르침을 준 스승

으로 지목된다. 그는 또한 예언자 보다는 성인들에게 무게를 더 두었다. 라비아가 자신의 가까운 동료인

수프얀 알 싸우리(777년 사망)가 지나치게 에언자 언행록에 집착하는 것을 비난하면서 그것이 오히려 알

라에 대한 섬김을 잘못 인도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고 전해진다. 이는 두 사람의 사상이 매우 유사함을 보

여준다.

회개와 감사

라비아는 알라를 향하여 가는 첫걸음은 '회개' 라고 가르쳤다. 그러면서 자신의 죄를 참회하면서 울었다.

회개는 '알라로부터의 선물'이라고 여겼고 진실한 참회를 통헤 용서를 받을 수 있다고 믿었다. 또한 라비아

는 죄를 지으면 영혼이 알라로부터 멀어지는 것이며 참회하고 슬퍼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 다음 단계는 '인내'이다. 라바아는 인내라는 미덕을 갖고 있었다. 그녀는 모든 것을 알라의 뜻으로 받아

들였다. 인내가 믿음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 생각하고, 알라가 원하지 않는 것을 하는 자는 믿음이 없

사람이라고 보았다. 인내와 함께 '감사하는 마음'도 가져야 한다고 가르쳤다. 축복과 불행, 모든 것들은 알

라로부터의 선물이므로 항상 알라를 찬양하고 알라에게 감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불행 앞에서도 감사해야

하는데, 그 이유는 지금보다 더 불행할 수 도 있기 때문이다. 알라께 감사하는 마음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

같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어느 날 라비아가 머리를 동여맨 남자를 보고 그 이유를 물었다. 남자는 머리가 아프다고 대답했다. 라비

아는 그 남자의 나이를 묻자 서른 살이라고 대답했다. 이어 라비아는 지난 30년 간 고통과 어려움이 많았

냐고 물었다. 그 남자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라비아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지난 30년 간 네 몸을 건강하게 해 주신 알라께 감사의 머리띠는 동여맨 적이

없으면서 겨우 하룻밤 두통 때문에 머리에 불평의 머리띠를 동여매고 있구나."

라비아에게 일어난 기적의 이야기

 

라비아에게 일어난 기적에 관한 이야기는 성녀로서 그녀의 지위를 높여주고 있다. 이 같은 기적은 라비아

의 알라에 대한 절대적 사랑과 믿음을 이야기한다.

두 명의 종교 지도자가 빵을 구하기 위해 라비아가 사는 집 앞에 오게 되었다. 라비아는 그 때 집에 있던

빵 두 덩어리를 두 사람에게 주려 했으나. 거지가 오자 그에게 빵을 주어 버렸다. 잠시 후, 한 노비 소녀가

그녀의 주인이 준 빵 열여덟 개를 가지고 왔다. 라비아는 그 빵을 세어보고 소녀에게 빵을 받지 않고 돌려

주었다. 노비 소녀가 빵 두개를 숨겼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라비아의 거절에 소녀는 죄책감을 느끼고

빵 스무 두 개를 가지고 돌아왔다. 라비아는 그 빵을 종교 지도자들에게 주면서 말했다.

"두 분께서 오셨을 때 저는 [귀한 분들에게 겨우 빵 두 덩어리를 어떻게 내놓나]라고

걱정했지요. 그래서 거지가 왔을 때 그것을 거지에게 주고 알라께 이렇게 기도했습니

다. [전능하신 알라시여, 당신은 한 개에 대한 보상으로 열 개를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이를 믿습니다. 저는 당신을 기쁘게 하기 위하여 두 개의 빵을 거지에게 주었습

니다. 저에게 열 배로 돌려주시리라 믿습니다.] 그래서 빵 열여덟 개가 왔을 때 그 노

비 소녀가 몰래 두 개를 숨겼거나 아니면 그 빵들이 알라가 나에게 보낸 빵이 아닐 것

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라비아에 대한 평가

 

라비아가 대단한 지식인이 아니였기에 그녀가 정말로 수피주의적 기원과 교리에 기여했는가에 대하여 학

자들 사이에 논쟁이 있었다. 그러나 여러 이야기들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라비아는 망설이지 않고 사람들

의 잘못을 타일렀으며 겁을 먹거나 위선을 참지 않았다. 라바아와 연관된 인물들은 대부분 남자들이었던

것으로 보이며, 이들 남자들 사이에서 자신의 입장을 지킨 당당한 여성의 모습니 여러 기록들과 전해지는

이야기들에서 엿보인다. 라비아는 여성들에게 사회적 자유가 허락되지 않았던 시대에 정신적 자유를 추

구한 원형으로서. 이슬람 세계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많은 여성들에게 영감과 용기를 준 역사적 인물로

평가된다.

김주희 한국외국어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