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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 여성들의 여왕 (파띠마) 무함마드의 가장사랑하는 딸

Author
kislam0
Date
2016-06-08 09:44
Views
486

천국 여성들의 여왕 (파띠마, Fatima az-Zahra, 605-632)

무함마드의 가장사랑하는 딸


파띠마는 605년 주마디 알 사니 이슬람력 6월20일 금요일 메카에서 예언자 무함마드의 첫째 부인인 카디자의 막내딸로 태어났다. '아이 돌보는 여인(유모)'이라는 의미의 이름 파띠마 뒤에 '빛나는 이'라는 수식어가 따라와 파띠마 앗 자흐라라고 불린다. 그녀가 예배하기 위해 땅에 엎드린 자세를 취했을 때 동쪽에서 서쪽 하늘로 밝은 빛이 그녀의 얼굴을 비췄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외에도 알라의 명령과 예언자를 믿고 따르는 정직하고 '진실한 여성'이라는 의미의 앗 싣디까, 배고프고 가난한 자를 돕고 노예를 해방시켜 주는 은혜를 베푸는 여성 이라는 의미의 알 무바라카, 고결하고 순결한 이를 뜻하는 알 바툴 등 9개의 수식어가 붙은 별칭을가지고 있다.


파띠마는 자이납, 루까이야, 움무 쿨쑴 세 언니들 중에서도 무함마드가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딸이었다. 쉬아 학자들은 파띠마가 무함마드의 딸들 중 유일한 친혈육이라고 주장한다. 루까이야와 움무 쿨쑴은 카디자의 자매인 할라의 딸들이었는데, 할라가 사망한 후 무함마드와 카디자가 그들을 입양했다고 한다. 또한 예언자에게 가장 사랑 받았던 아내,아이샤는 늘 다음과 같이 말한곤 했다.


"파띠마는 예언자가 가장 사랑한 딸입니다. 무함마드의 가장 소중한 사람입니다."


다른 누구보다도 무함마드가 파띠마를 아끼고 총애하였던 이유는 아마도 그녀가 태어나기 전에 겪었던 특별한 일 때문일 것이다. 무함마드에게 어느 날 대천사 가브리엘이 쟁반에 대추열매와 포도를 한 송이씩 담아 가지고 와그것을 먹고 난 뒤 부인 카디자에게 가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한다. 그리고 그 후 파띠마가 생겼기 때문에 무함마드는 파띠마가 천국의 과일들에 의해 잉태되었다고 믿게 되었다. 출산 당일에는 천국에서 4명의 여인들이 무함마드의 집에 찾아왔다.


"나는 당신의 어머니. 이브요."

"나는 파라오의 부인인 아시야입니다."

"저는 무사(모세)의 자매인 쿨숨입니다."

"저는 이사(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입니다."


이와 같이 스스로를 소개한 후, 파띠마의 출산을 도왔다고 전해진다. 하디스에 따르면, 무함마드는 파띠마를 그녀의 어머니인 카디자, 예수의 어머니인 마리아, 고대 이집트 파라오의 아내였던 아시야(그녀는 모세와같이 하나님을 믿는 유일한 신도였다)와 함께 4대 무슬림 여성의하나로 말하였다고 한다.


파띠마는 신생아를 사막에 사는 유모에게 위탁하여 기르던 당시 메카의 관습과 달리, 어머니인 카디자의 손에 직접 양육되었다. 파띠마의 유년기는 예언자 무함마드가 이슬람 포교 활동으로 메카에서 꾸라이쉬 부족으로부터 억압을 받던 어려운 시기였지만, 그녀의 스승이 된 아버지 무함마드와 어머니 카디자의 교육과 보살핌 속에서 훌륭히 성장했다. 소녀 시절그녀는 새침하고 우울한 성격이었다. 몸이 허약하여 다른 아이들과 함께 어울려 놀지 못하였다. 그렇지만 예언자의 특별한 가르침과 지도로 교양있고 누구에게나 호감을 주는, 남다른 동정심을 가진 밝은 숙녀로 성장하였다. 619년 어머니 카디자가사망하자 파띠마는 큰 슬픔에 잠겼다. 그러나 예언자인 아버지로부터 신께서 어머니를 위해 천국에 특별한 궁전을 지어 놓으셨다는 천사 가브리엘의 전언을 듣고 위로 받았다. 그 뒤 파띠마는 아버지 곁에서 어머니의 빈자리를 대신했다.


그녀의 별칭인 알 무바라카(은혜를 베푸는 여성)와 관련된 일화가 있다. 꾸라이쉬 부족의 박해를 피해 메디나로 이주 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무함마드가 그의 동료들과 함께 메디나 모스크에 있을 때, 파띠마가 아버지에게 다가와 집안 일을 도와줄 하인을 한 명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그녀의 몸이약하고 건강하지 않았기 때문에 멀리 떨어진 우물에 가서 물을 길으는 일이나 농사 같은 힘든 일을 하기어려웠다. 예언자 무함마드는 이 말을 듣고 잠시 주저하더니, 감정을 억누르며 엄숙하게 말했다.


"나의 사랑하는 딸아! 어느 누구도 네게 보내줄 수가 없구나.너는 내세에서의 보상을 얻기 위해 현세에서 힘든 고통을 견뎌낼 줄 알아야 한다."


파띠마는 예언자의 이 답에 깨달음을 얻고 만족하며 돌아갔으며, 여생동안 하인을 두지 않았다.



파띠마의 박애정신


파띠마의 박애정신과 관련된 일화가 있다. 살림 부족의 마술사로 알려진 한 사람이 예언자에게 와서 욕설을 퍼붓는 일이 있었다. 예언자는 고운 말로 끝까지 참으며 그에게 친절히 응대했다. 이 마술사는 예언자의 이러한 비범한 행동에 감명받아 이슬람을 받아들였다. 예언자는 이방인이었던 그가 이제 이슬람으로 귀의하여 무슬림 형제가 되었는데, 누가 그의 휑한 머리를 덮어줄 천을 제공하겠느냐고 물었다. 알리가 즉시 자신이 쓰고 있던 터번을 벗어 그에게 주었다. 무함마드는 그 다음에 교우 살만에게 이 배고픈 마술사를 데려가라고 지시했다. 살만은 너무 늦은 때였기 때문에 누가 음식을 나눠줄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파띠마 집의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그의 방문 목적을 말했다. 파띠마는 울먹이며 삼일 째 먹을 것이 없어서 식구들이 굶고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손님을 거절하지 않았다.

"배고픈 손님에게 드릴 음식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손님을 그냥 보낼 수는 없죠."

그리고는 그녀의 홑겹 옷을 살만에게 벗어주며 유대인인 샤문에게 가져다주면 옥수수 약간과 교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살만 뿐 아니라 이 새로운 개종자 또한 그녀의 천사같은 마음씨에 감명을 받았다. 파띠마의 자비심에 깊은 감명을 받은 사람은 또 있었다. 유대인 샤문은 다음과 같이 말하며, 이슬람으로 개종하기로 결심했다.

"토라는 고귀한 가문에 대하여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살만은 예언자의 딸에게 옥수수를 가져다주었고, 그녀는 그 옥수수를 직접 빻아 빵을 구웠다. 살만이 배고픈 파띠마의 자녀들을 위해 빵 몇개는 남겨 두자고 했지만, 그녀는 알라를 위해 옷을 헌납했으니 그럴 권리가 없다고 그녀에겐 없다고 답하였다.



파띠마의 결혼


파띠마가 훌륭한 소녀가 되었을 때, 여러 교우들이 그녀에게 청혼하기를 원하였다. 무함마드의 사촌 동생인 알리도 여기에 포함되어 있었다. 그는 젊고 총명했지만 가난하여 파띠마에게 청혼할 용기를 내지 못하였다. 알리는 집안 형편이 어려워 어려서부터 예언자의 집에서 성장하였고, 예언자 무함마드와 부인 카디자는 그를 마치 아들처럼 대하였기 때문에 예언자는 처음에 그를 파띠마의 신랑감으로 생각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알리의 마음을 읽고 예언자는 그가 청혼할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청혼을 받은 파띠마는 침묵하였는데, 이는 곧 승락을 의마하는 것이었다. 알리는 바드르 전투(624년)에서 승리를 거둘 때 그가 직접 입고 싸웠던 갑옷을 팔아 400 디르함을 마련하여 검소한 예식을 준비하였다. 그러나 알리는 결혼식이 일생 최대의 이벤트가 되는 축하의 자리가 되길 원하였다. 그래서 검소하지만 축제 같은 행복한 결혼식을 치렀다. 그리고 이것은 무슬림들의 검소한 결혼식 관행으로 남는다.


그녀가 결혼 혼납금인 마흐르로 받은 것은 가죽 수통과 토기 주전자, 매트와 맷돌이 전부였다. 결혼식 전 무함마드는 그녀를 불러 덕담을 했다.


"사랑하는 딸아. 나는 누구보다도 강한 믿음과 깊은 지식을 가진 사람이 너와 결혼하길 원했다. 알리는 학식, 용기, 품행과 미덕에서 다른 어떤 이들보다 특출한 인물이다."


파띠마와 알리는 근면한 삶을 꾸려가며 서로에게 헌신하는 무슬림 부부상의 표본이 되었다. 파띠마는 알리와의 슬하에 3명의 아들, 하산, 후세인, 무흐신과 두 딸인 자이납, 움무 쿨숨을 두었다. 하산과 후세인은 예언자가 예배 할 때 엎드리면 등에 올라타 놀곤 했고, 무함마드는 이 귀여운 손자들을 그의 어깨 위에 태워주며 늘 놀아주기를 즐겨했다. 무함마드 가계의 계보는 파띠마에 의해 이어졌다. 그녀는 유일하게 생존한 예언자의 자식이었다. 무함마드의 두 아들은 어린 나이에 사망했다. 파띠마의 후손들에게는 샤리프, 사이드 라는 명예로운 타이틀이 주어졌다. 오늘날까지 쉬아 세계는 물론 순니 무슬림들에 의해서도 샤리프, 사이드들은 이슬람 세게 어디서나 존중받는다. 특히 파띠마는 가장 경애하고 존경받는 인물이다. 그녀의 두 아들과 딸 자이납 역시 이슬람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지위를 차지한다.



파띠마의 죽음에 대한 전승되는 이야기


그녀는 우흐드 전투(625)에서 부상을 당해 돌아온 아버지를 밤낮으로 정성껏 치료하였다. 630년 메카로의 무혈입성 때 그녀는 무함마드를 수행했고, 632년 아버지의 고별순례 때에도 동행했으며 항상 예언자의 곁을 지켰다. 무함마드가 고별순례에서 돌아온 후 병으로 눕자, 한시도 예언자의 곁을 떠나려 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예언자가 파띠마의 귀에 무엇인가를 나지막이 속삭이자 그녀는 미소를 지었다. 예언자 무함마드가 서거한 후 어느 날, 그녀는 아이샤에게 이 일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예언자가 그녀에게 "내가 죽어가고 있구나" 하였을 때, 그녀는 울었고, 다시 그녀의 아버지가 "다음 세상에 나와 만나게 될 최초의 사람이 파띠마 너다"라고 했을 때, 그녀는 행복해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파띠마도 곧 예언자의 뒤를 따른다. 부친이 세상을 떠난 지 불과 6개월 뒤인 같은 해(632) 주마다 싸니 월 3일 밤에 그녀는 눈을 감았다. 그녀는 메디나의 잔나 알 바끼으에 영면하고 있다.


그녀의 사망 경위에 대해서는 순니와 쉬아 간에 이견이 있다. 순니들에 따르면, 사망하던 날 아침 그녀는 목욕을 하고 새 옷으로 갈아입은 뒤 침대에 누워 죽음을 맞이했다고 한다. 이 때 그녀는 남편 알리에게 자신의 죽음이 가까이 왔음을 알렸다. 이 이야기를 듣고 알리는 울기 시작했는데 그녀는 두 아들을 잘 돌봐줄 것과 장례식 없이 그냥 묻어 달라는 청을 했다고 한다. 알리는 그녀의 유언에 따라 메디나 주민들에게조차 그녀의 죽음을 알리지 않고 그녀를 매장하였다. 그렇지만 쉬아들은 파띠마가 죽은 것은 오마르와 연관이 있다고 말한다. 초대 칼리파로 아부 바크르가 추대되었을 때 알리와 파띠마는 충성서약을 하지 않았다. 이 때 오마르가 그녀의 집에 찾아와 충성서약을 요구했었다. 그날 밤 오마르는 횃불을 들고 왔었다. 이 때 집이 불이 났고, 이 사고로 임신 중이었던 파띠마가 갈비뼈에 금이 가는 부상을 입어 그것이 죽음에 이르는 원인이 되었다는 설도 있다. 또 다른 쉬아 전승으로는 오마르와 그의 일행이 문을 부수고 침입했을 때 그녀가 문 뒤에 있다가 문고리에 배를 다쳐 복중에 있던 무흐신을 유산하게 되었으며 그 일로 인해 사망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그녀의 꿈에 무함마드가 나타나 다음날 겪을 일을 그녀에게 알려주었다. 그래서 파띠마는 이일을 남편 알리에게 그대로 전하였고 그녀에게 위해를 저지른 자들이 장례예배인 자나자와 장례식에 참석하는 것을 허락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였다는 것이다.



천국 여성들의 여왕


무슬림들에게 파띠마는 누구보다도 소중한 인물이다. 인간이 가진 심성 중 가장 고귀한 성격, 여성이 지녀야 할 고결한 성품을 두루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예언자 무함마드는 그녀를 '천국의 여성들의 여왕'이러고까지 추켜 말하였다고 한다. 그녀는 무슬림 여성들의 모범으로 추앙받는다. 쉬아파에서 파띠마는 더 큰 의미를 갖는다. 쉬아들은 파띠마를 이맘들의 어머니'라고 부른다. 그녀는 제4대 정통 칼리파 이맘인 알리의 아내이고 쉬아파의 두 번째 이맘인 하산과 세 번째 이맘인 후세인의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그녀에 대한 존경심으로 그녀의 이름은 한 쉬아 국가의 국명이 되었다. 바로 쉬아파의 한 갈래로 제7대 이맘 이스마일을 추종하는 이스마일파가 이집트에 세운 파띠마조(909-1171)이다. 이 왕조는 한 때 북아프리카를 통일하고 시리아까지 영향력을 미치는 전성기를 누렸다. 쉬아들은 파띠마를 무결점(무오류), 무죄의 존재로 믿는다.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 가난했음에도 불구하고 가진 것 모두를 타인과 나누고자 했던 박애정신을 강조하면서 그녀를 높이 흠모한다.


쉬아 전승에서 파띠마의 죽음, 슬픔, 고통은 쉬아 역사에서 드러난 최초의 비극이다. 그녀는 아버지 무함마드의 서거 후 비탄과 슬픔 속에서 그녀의 마지막 생애를 보냈다. 그리고 곧 죽음을 맞은 그녀는 그녀 뒤를 이어 무참히 살해되는 남편 알리와 또 그 뒤를 잇는 두 아들의 죽음을 비탄 속에 보아야 했고, 이 때문에 파띠마는 끊임없이 슬픔에 잠겨 울고 있었다. 그래서 쉬아 학자인 마흐무드 아이윱은 쉬아 전승에서는 파띠마를 '영원히 슬피 우는 자,' 내세에서의 판관이라는 두 이미지를 가진 여인으로 말한다. 그런 연유로 오늘날 쉬아 무슬림들은 파띠마의 슬픔과 고통을 그들도 함께 나누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그들이 흘린 진실한 눈물들이 파띠마를 위로한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쉬아들은 파띠마가 이 세상에서 받은 그녀의 고통을 보상받아 최후 심판의 날에 천국에 들어가는 첫 번째 여성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만약 죄인들 중에서 파띠마 가문을 사랑했던 자들이 있다면, 그녀는 그들의 구원을 위해 신께 변호해주는 중재자 역할도 할 것이라고 믿는다.




남옥정. 한국외국어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