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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나라 정치를 구현한 칼리파 오마르 2세

Author
kislam0
Date
2016-07-19 05:08
Views
413

신의나라 정치를 구현한 칼리파
오마르 2세 (Umr b. Aziz. 680-720)


이상과 원리에 가장 가까운 통치자


오마르 2세(쟁위 717-720)는 우마이야 조의 다른 칼리파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이슬람 칼리파제의 이상과 원리에 가장 가까운 통치를 편 출중한 칼리파로 추앙받고 있다. 그는 학식이 풍부하였을 뿐만 아니라 신앙생활에 충실하며 성품까지 훌륭하여 이슬람을 빛낸 개척자로 추앙받고 있다. 우마이야 조 통치의 선임자들이 유혈과 독재에 의존한 군사 통치를 하였다면 그는 정반대로 통치를 하면서 우마이야 조 역사의 한 장면을 장식하였다. 그 결과 무슬림들은 그의 정의로운 성품과 경건한 자세를 제2대 정통 칼리파인 오마르 빈 알 카탑과 비유하였다. 그리고는 그를 오마르 2세라고 불렀다.


오마르 2세의 아버지 압둘 아지즈는 총독으로서 당시 이집트 주를 20년(684-705) 이상 통치하였다. 오마르 2세는 현재 이집트 수도인 카이로에서 24마일 정도 떨어진 헬완에서 680년에 태어났다고 전해ㅣ진다. 그러나 메디나에서 출생했다는 설도 있다. 그의 어머니는 제2대 정통 칼리파인 오마르 빈 알 까땁의 아들인 야심의 딸이라고 한다.


오마르 2세는 궁정에서 화려하게 성장하였으나, 제국을 다스리는 칼리파가 되었을 때에는 일반 백성과 같이 검소하고 겸손한 지배자가 되었다. 그는 종교적이며, 도덕적인 청년이었다. 또한 '꾸란'을 늘 암송하며 성장하였다. 부친 압둘 아지즈는 그를 메디나로 보내 많은 알라마들과 교류 하며 성장하게 하였다. 그는 이슬람 법학에 깊이 빠졌고, 예언자의 언행록인 하디스를 익혔다. 그는 성장하자 자신의 사촌인 칼리파 압둘 말리크의 딸 파티마와 결혼하였다. 그는 26세 때 메디나의 지사로 임명되어 지도자가 되는 길을 내딛었다. 그는 메디나의 지사가 되자 의무 수행을 도울 10명의 울라마를 선택하였다. 그들은 압둘 이지즈가 백성들에게 부당한 행위를 할 때에 성실한 충고와 경고를 하는 임무를 수행하였다. 그 외에도 오마르 2세는 메디나에 있는 예언자의 사원을 대대적으로 손질하였다. 그는 언제나 경건한 종교적 생활을 했으므로, 주변에도 독실한 신앙인들이 모였다. 그는 성실하고 공정하게 통치하였다.


오마르 2세는 당시 우마이야 가문에서 칼리파직위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었다. 그는 성실하였으며, 공정하였고, 또한 다양한 분야의 여러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제6대 칼리파 왈리드 1세가 자신의 후계자로 정해진 형제 술레이만을 제치고 아들 야지드 빈 알 왈리드를 후계자로 정하려고 할 때에, 오마르 빈 압둘 아지즈는 신에게 행한 맹세를 저버릴 수 없다고 하면서 칼리파 왈리드 1세와 그의 심복들의 의사를 끝까지 거부하였다. 이런 어려운 과정을 거치면서 제7대 칼리파로 등극한 술레이만은 그의 칼리파 위 계승에 반대한 인물들에게 비정한 정치적 보복을 했지만 오마르 빈 압둘 아지즈(오마르 2세)에 대하여서는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혈연관계나 나이 등을 고려할 때에도 오마르 빈 압둘 아지즈는 직계 자식이 없었던 술레이만에게는 최적의 후계자였다. 술레이만은 죽기 전 칼리파 위 후계자의 이름을 써 놓은 다음 우마이야 가문의 사람들을 불러 개봉하지 않은 채로 충성 서약을 하게 했다. 많은 실정을 한 칼리파 술레이만이지만 결과적으로 훅켸자 선정만큼은 정도를 걸은 셈이다.

그를 후계자로 정한 칼리파 술레이만이 타계하자, 717년 오마르 2세는 다마스쿠스에서 칼리파직에 올랐다. 오마르 2세는 신하들에게 충성서약을 받을 때, 자신에게 맹목적으로 복종하지 말고 알라의 법을 깨지 않을 때에만 복종하라고 말했다. 많은 이슬람 학자들은 오마르 2세의 태도가 이슬람 초기 정통 칼리파들의 길을 따른 것이라고 본다.



평화와 안정의 시대



우마이야 조 칼리파 통치는 일반적으로 전제와 유혈 사태로 물들어 있었고, 종교와는 동떨어져 현실 안위와 풍요로운 생활만 추구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런 우마이야 조에 대한 인식은 상당 부분 우마이야조를 뒤엎고 자신의 가문의 칼리파조를 세운 압바스 칼리파들에 의하여 후일에 조장 확대된 부분이 많다. 그러나 유일한 예외가 있으니 그 인물이 바로 오마르 2세이다. 칼리파 오마르 2세의 시대는 내란이나 혼돈과는 거리가 먼 평화와 개선, 안정의 시대였고 진실한 신의 나라의 정치를 실천한 시대로 평가받는다. 그는 신앙심이 투철하고 매사 경건하였다. 칼리파로서 그는 이슬람 전파의 주역이었고 믿음이 강한 신앙인의 표본이었다. '꾸란'과 순나에 철저히 의존하였고 오로지 이슬람을 위해 헌신하였다. 그래서 압바스 조가 우마이야 조를 뒤집어엎고 그들의 칼리파 조를 세웠을 때에 모든 우마이야 조 칼리파들의 무덤은 철저하게 파해쳐졌으나, 오마르 2세의 무덤은 온전하였다.



이슬람 평등사상의 실현



오마르 2세는 특정 민족이 다른 민족들에 대한 지배권을 가진다는 것은 이슬람 행동사상에 어긋나는 시대착오적 발상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는 군대와 행정에 몸담고 있는 이민족들은 물론이거니와 이슬람을 전파하는 데 앞장서고 있는 비아랍 상인이나 직장인 모두를 제국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보았다. 또한 무슬림과 비무슬림 사이에 적대감은 보편적인 무슬림 공동체를 세움으로써 해소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마르 2세가 판단하기에는 아랍인이 우위를 고수하면서 개종자들을 회유하는 것은 능사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제국을 아랍인의 제국이 아니라 모든 무슬림의 제국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적극적인 이슬람 선교



오마르 2세에게 있어서 이슬람 선교는 그의 칼리파제의 목표였다. 그는 무력을 통해서 불가능한 선교 효과를 새로운 시도를 통하여 거두었다. 아랍 제국의 새 신민이 된 변방지역 주민들을 이슬람에 귀의시키기 위하여특별 재정지원, 포교단 교육단을 파견하는 계획을 세우고 이를 시행하였으며 그 외에도 가능한 모든 선교 방법을 동원하였다. 동로마의 레오 3세에게 친서를 보내 이슬람 입교를 권했는가 하면 인도와 신드 왕들에게도 포교 편지를 썼다. 뿐만 아니라 그는 이슬람에 귀의하는 모든 신민들에게 인두세인 지지야를 면하라는 명령도 내렸다. 그는 스스로 신께서 자신을 칼리파로 임명하신 것이라고 믿었다. 칼리파의 중요한 직무는 세금을 거두는 것이 아니라 이슬람이라는 종교로 백성을 불러오고 인도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오마르 2세의 이러한 조치로 인하여 이슬람에 입교하는 새로운 무슬림들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심지어 그런 새 무슬림들이 다수인 일부 지방 통치자들은 인두세의 감소로 국고 수입이 현저히 낮아져 칼리파에게 재정의 위험을 불평할 정도가 되었다. 이런 혼란에 대하여 칼리파는 실용적 해결 방법을 보여주었다. 그는 비아랍인 무슬림인 마왈리들에게 인두세를 면제하여 주었을 뿐만 아니라 비아랍인 무슬림 병사들의 봉급도 아랍인 무슬림 병사와 똑같게 지급하도록 하였다. 하지만 발생하는 국고의 손실을 만회하기 위하여 무슬림이건 비무슬림이건 모든 토지 소유자는 토지세를 내게 하였다. 원래 비아랍인 개종자들이 아랍인처럼 인두세와 토지세를 모두 면제해달라고 하였던 것이다. 이에 대하여 비아랍인 개종자들의 인두세를 면죄하여 준 대신에 비아랍인 무슬림이건 아랍인 무슬림이건 토지소유자는 모두 세금을 내게 하였으며, 모든 무슬림이 사다까를 납부하게 함으로써 국가 재정 손실을 보충하는 방법을 태하였다.



오마르 2세의 겸손함과 검소함





칼리파 위에 오른 후에 오마를 2세는 화려하고 뷰유한 생활로부터 철저하게 탈피하고, 경건하고 검소한 생활로 변화하였다. 그에게 있어 부나 화려함은 그의 경건하고 진실된 행동을 방해할 뿐이었다. 하지만 오마르 2세가 칼리파 위에 오르기전에 화려하게 살았다 해도 경건하지 않은 삶을 산 것은 아니었다. 그는 신앙의 법을 어긴 적이 없었으며, 의도적으로 남에게 해를 끼친 적도 없었다. 그는 칼리파가 되었을 때 어느 다른 칼리파와 달리 금욕적인 생활을 하면서 신을 기쁘게 하기 위하여 열심히 일하였다. 그는 지배자를 위한 공식 퍼레이드를 거절하고, 근위대를 다른 곳으로 보내면서 자신은 무슬림 공동체의 일원일 뿐이므로 이러한 것이 필요 없다고 말하였다.


칼리파 오마르 2세는 칼리파를 찬양하는 사람에게 지급되던 상이나 재화의 증여를 정지시켰다. 그는 공공의 재화를 이런식으로 사용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돈이라는 것은 진짜로 필요한 사람에게 가야한다고 생각하였다. 오마르 2세는 경건하고 정의롭게 말만 한 것이 아니라 실천으로 옮겼다. 그는 아내 파띠마에게 값나가는 귀중품을 국고에 넣으라고 요구했다. 왕족이라고 평범한 백성보다 나은 것은 없으며. 특별대우를 받을 것도 없다고 생각하였다. 또한 칼리파는 가난한 자를 돕고, 백성이 가난에서 자유롭도록 하는 것이 의무라고 보았다. 그는 또한 극도로 겸손한 이상적인 인물이 었다. 그는 세계에서 제일 큰 제국의 지배자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단순하고도 평범한 의복을 걸치고, 단순한 생활양식을 취하였다. 그는 하인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지배자들은 일반적으로 그의 신하를 감시하기 위하여 사람들을 임명하나, 나는 나와 나의 행동을 감시하기 위하여 그대를 임명하였다. 그대는 언행에서 나의 잘못을 발견하면 나를 제지하고 올바른 길로 인도하라."


오마르 2세는 720년 시리아 북쪽에 있는 다이르 삼안에서 타계하였다. 40세를 넘지 못지 나이로 칼리파 위에 오른 지 2년 5개월 밖에 되지 않았을 때였다.




송경근 조선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