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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비안 나이트의 칼리파 하룬 알 라쉬드 (Harun Al-Rashid)

Author
kislam0
Date
2016-07-25 06:49
Views
441

아라비안 나이트의 칼리파
하룬 알 라쉬드 (Harun Al-Rashid, 763-809)


찬란했던 이슬람 제국을 통치한 칼리파


하룬 알 라쉬드는 찬란하고 번성했던 이슬람 제국의 부흥기를 통치했던 가장 유명한 칼리파 중의 한 사람이다. 그의 통치 기간은 압바스 제국의 황금 시대였다. 하룬 알 라쉬드는 압바스 조의 제5대 칼리파로 대 이슬람 제국의 전성기인 786년부터 809년까지 통치하였다. 그는 아라비안 나이트 이야기를 통해 학문과 문화를 후원한 칼리파로 전 세계에 알려져 있다. 아라비안 나이트에서 바그다드에 있는 그의 궁전은 부유하고 화려하게 묘사되어 있다.


하룬 알 라쉬드는 오늘날 테헤란 남쪽인 알 라이 시에서 칼리파 무함마드 알 마흐디의 셋째 아들로 763년 (또는 766년)에 태어났다. 하룬의 모친 알 카이주란과 그의 아내 주바이다는 그의 통치 기간 중 영향력있는 역할을 수행했다. 하룬은 11명의 아들과 12명의 딸을 두었다. 그의 아들 알 아민, 알 마아문, 알 무으타심은 각각 칼리파가 되었다.


하룬은 10대 때 이미 2개의 원정 부대를 이끌고 비잔틴을 공격하였다. 전쟁의 승리를 위해 그는 북서 아프리카, 이집트, 시리아,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등 지역의 총독직을 수행하였으며, 그의 스승 야흐야 알 바르마키는 실제적인 행정관 역활을 수행했다. 하룬은 그 후 자신의 이복 형이자 경쟁자인 무사 알 하디의 왕위 찬탈 음모에 직면하였다. 아버지가 사망 한 후, 알 하디가 통치자가 되었지만 권좌에 오른지 1년 후 의문의 죽음을 맞게된다. 알 하디의 아들은 무리의 위협에 굴복하여 칼리파 지위를 포기하였다. 당시 하룬은 20대 초반이었지만 칼리파 지위를 상징하는 반지를 물려받고 칼리파로 선포되었다. 그는 모친의 조언에 따라 국정을 이란 스승인 야흐야 알 바르바키와 그 일가에게 위탁하였다.



문화적 부흥, 그리고 정치적 몰락

786년 하룬 알 라쉬드는 강력한 압바스 조의 제 5대 칼리파가 되었다. 당시 압바스 조는 국력면에서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으며, 알 라쉬드의 통치 시대에는 위대한 문화적 부흥이 시작되고 있었다. 하룬 알 라쉬드는 예술을 적극적으로 후원하였다. 그리하여 문학 비평, 철학, 시 수학, 천문학, 의학이 바그다드 뿐만 아니라 쿠파, 바스라, 하란 등과 같은 제국 내 다른 도시에서도 번성하였다. 그러나 이슬람 초기 4명의 정통 칼리프들과는 대조적으로 칼리파 하룬 알 라쉬드는 절대 군주를 자처함으로써 평화를 유지하였다. 그는 신하들과 거리를 두고, 신하들이 칼리파 앞에서는 바닥에 입을 맞추게 하였다. 그는 권좌 뒤에 사형 집행인을 대기시켜 둠으로써 백성들에게 칼리파가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다는 점을 일깨워 주려 했다. 국정운영은 대부분 고관(총리)의 손에 맡겨두고, 스스로 부여한 직책인 '지구상 신의 그림자'가 되어 금요 예배에서 신도들을 이끌거나, 필요할 경우 군대를 이끌고 전쟁터로 나갔다.


중세 아랍 학문에 묘사된 하룬의 모습은 악간 상반된다. 한편으로 하룬은 독실하고, 정치인답고, 매우 온화한 성품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상류층의 특권과 포도주를 즐기는 방종하고 무능한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룬의 계몽사상 덕분에 이슬람 사회는 발전하였다. 하룬은 멀리는 중국까지 교역을 확대하였으며, 미슬, 시, 문학 음악, 건축 자연과학등을 발전시겼다. 그는 법과 질서를 강화하고, 국가 재정을 확보하였으며, 대규모 공공 건설 사업을 추진하였다. 하지만 학문의 통치는 압바스 조 칼리파 지위에 전환점이 되기도 했다. 통치 기간 중 행정의 효율성이 떨어지고 제국의 정치적 단결력이 붕괴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하룬의 외교는 궁극적으로 지방 왕조들과 지역 통치자들을 무력화하는데 실패하였으며, 제국을 세 아들에게 배분하려는 계획은 정치적 몰락이라는 결과를 촉발시켰다.



하룬의 통치 말기

바르마키 일가는 하룬을 도와 하룬의 정치적 라이벌들과 쉬아파 반대자들을 통제하고, 시리아(796), 이집트(788, 794-795), 북서 아프리카(786, 794-795, 797), 예멘(795-804) 등 지방에서의 주요 폭동을 진압하였다. 그러나 알 바르마키 일가로 구성된 행정부는 얼마 지나지 않아 국가 내의 또 다른 하나의 국가가 되어 당시까지 아랍인이 차지했던 이슬람 제국의 통치자 지위를 '이란화'하는데 힘쓰게 되었다. 하룬은 통치 기간 중 비잔틴에 대한 많은 군사적 공격을 주도하였으며 무슬림 해군을 창설하였고, 805년에는 키프러스, 807년에는 로도스 섬을 습격하였다. 그는 유럽 기독교인들의 예루살렘과 성지순례 상황을 개선해 달라는 로마 황제 샤를마뉴 대제(재위 805-814)의 요청을 승인하였고, 상호 대사관을 개설하였으며 귀한 선물을 주고 받았다. 그 예로, 하룬은 샤를마뉴 대제에게 코끼리 한 마리와 독특한 디자인의 물시계 하나를 보냈다. 통치 기간 말기에 하룬은 초기에 보여주었던 능력과 힘을 보여주지 못했던 것 같다. 하룬 알 라쉬드는 건강이 악화되어 마침내 809년 3월 24일에 사망하였다.




박순례. 한국외국어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