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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니 조의 최전성기를 이룬 술탄 마흐므드 가즈나위 (Mahmud Ghaznawi)

Author
kislam0
Date
2016-09-03 16:03
Views
346

가즈니 조의 최전성기를 이룬 술탄



마흐므드 가즈나위 (Mahmud Ghaznawi. 971-1030)





가즈니 조의 수립과 마흐무드의 재위



술탄 마흐무드 가즈나위는 10세기부터 12세기 중엽까지 오늘날 아프가니스탄의 가즈니를 중심으로 한 가즈니 조의 최전성기를 이룩하고 이슬람을 인도로 전파했으며 학문과 교육을 발달시킨 위대한 무슬림 통치자 중 하나이다. 마흐무드는 가즈니 조를 창시한 부친 세북태긴의 장남으로 매우 강인하면서도 온화한 성품을 가진 투르크계 국가 지도자였다. 그는 971년에 태어났다. 그가 태어날 당시의 정치적 상황은 몰락하던 사만 조와 신흥 카라한 조, 그리고 오구즈 계열의 셀주크 조 등이 후라산과 트랜스옥시나 지역을 두고 각축전을 벌인 혼란기였다. 혼란한 상황에서 투르크 부족의 세북태긴은 사만 조의 장군 알프태긴의 노예 전사로 성장하게 된다. 962년 알프태긴이 가즈나 지역의 지배자가 되었고, 그가 죽은 후 적절한 후계자가 없어 재차 혼란이 시작되었을 때 세북태긴이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이 지역의 통치자가 되었다. (977)


이후 997년 사망할 때까지 세북태진은 국가의 기틀을 강화하는데 최선을 다했다. 이 과정에서 마흐무드는 어릴 적부터 혹독한 군사훈련으로 무장하고 동시에 리더쉽을 함양하여 장래의 통치자로서의 소양을 키워 나갔다. 세북태간의 여섯 아들 중 훗날 권력 계승권은 부친 사망 전까지 살아 있었던 3명에게 있었는데, 즉 후라산 지역사령관인 마흐무드, 부스트, 집정관인 나스르 및 가즈나와 발크 집정관 이스마일이었다.


예상과는 달리 부친 세북태간은 왕권을 이스마일에게 넘겼다. 이로써 형제간의 분쟁이 발생하게 되었는데 뛰어난 전략가였던 마흐무드는 아우 들의 세력을 효과적으로 제압하고 권력을 장악하는데 성공하였다. 마침내 998년 마흐무드는 30세가 되던 해에 제위에 올랐고 그 뒤 가즈니 도시와 왕조의 찬란한 역사가 시작되었다.


마흐무드는 이슬람 순니파의 열렬한 신봉자였다. 이러한 그의 돈독한 신앙심은 1000년부터 26년간이나 진행되었던 힌두스탄(인도) 지역 정벌 작전의 사상적 토대가 되었다. 이슬람 차원에서 볼 때 힌두교는 우상을 숭배하는 일개 종교에 불과했기 때문에 정복하고 파괴해야 할 대상이었다. 마흐무드는 카라한 조 및 셀주크 조와의 격렬한 영역 다툼 과정에서 자국 영역을 동쪽으로 확장하기로 결정하고 힌두인들의 땅에 대한 대대적인 군사작전을 감행했던 것이다.


제1차 원정은 1000년에 단행되었는데 힌두스탄 국경선 내의 일부 부락을 탈취하고 퇴각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이듬해의 제2차 원정에서 마흐무드는 페사와르 지역을 본영으로 삼고 라이 자이팔이 이끄는 인도 군대와 대격전을 치른 후 승리하였다. 1004년에 속개된 제3차 원정에서 술탄 마흐무드는 인더스강을 넘어 브헤라의 비지 라즈 부대를 격파하고 수백 마리의 코끼리를 얻었는데, 당시 코끼리 부대는 대표적인 힌두인들의 주력 전투 부대로 유명하였다. 1006년붙터 1년간 진행된 제4차 원정은 물탄 지역에 대한 성전으로 기록된다. 물탄의 통치자는 이슬람 쉬아파에서 갈라져 나온 이스마일파 신봉자였는데 철저한 순니파이던 술탄 마흐무드에 의하여 완전히 파괴당한다. 이로써 힌두스탄 지역의 군사작전에서 성공을 거둔 마흐무드는 또 다른 투르크 왕조와의 전투에 대비하기 위하여 가즈니로 회군하였다.


1007년부터 1011년 사이의 제 5차-제8차 원정은 브헤라와 물탄 등 과거 평정하였던 지역에서 일어난 반란을 재차 진압하는 수준의 군사 작전이었다. 제9차 원정 1011-1012에서 술탄 마흐무드는 힌두교의 성지인 만스와르를 점령하고 그곳의 종교적 상징물들을 모두 파괴하고 금은보화를 획득하였다. 이어서 제10차 원정에서 마흐무드는 민두라 지역을 병합하고 제11차 원정 1015년에 카쉬미르 지역을 통과한 후 라하트까지 진격하였다. 제12차 원정 1018년과 제13차 원정에서1019년 마흐무드는 도입, 바란 마하보르 지역을 점령하였다. 마침내 제14차 원정 1021년에는 편잡 지방이 가즈니 조의 영토가 되었다.


제15차 원정 1022년에는 괄리오르 및 칼란자르 지역을 평정한 술탄 마흐무드는 제16차 원정 1025년에 구자라트 지역 인근까지 접근하였다. 마흐무드는 구자라트 반도 연안에 위치해 있던 숨나트 신전에서 2천만 디나르 상당의 금전을 획득하였다. 숨나트 원정은 현지 힌두 문화의 뿌리를 철저히 제거하고 이슬람 신앙을 전파한다는 의미가 있었다. 힌두교를 신봉하는 인도인들에게 마흐무드는 철저한 파괴자로 인식되었고, 대규모의 인도인들이 마흐무드의 영향권에서 벗어나기 위해 카쉬미르나 갠지스강 유역을 따라 대피하였다.


마지막 힌두스탄 원정으로 기록되는 제17차 원정 1027년는 숨나트에서 가즈나로 회군하던 군대에게 조롱하던 자트인들에 대한 대대적인 징벌 작전이 전개되었다. 이 전투를 승리로 이끈 술탄 마흐무드는 전투에서 노획한 막대한 보물을 가지고 가즈니로 복귀하였고 더 이상의 원정은 전개하지 않았다. 이상에서와 같이 술탄 마흐무드의 힌두스탄 지역 원정은 우선 종교적으로 이슬람을 전파하고, 동시에 힌두교 사원을 중심으로 쌓여있던 막대한 재물과 코끼리, 노예 등을 꾸준히 확보하기 위하여 이루어 졌다.


술탄 마흐무드는 인생의 마지막 30년을 힌두스탄 지역에 대한 원정에 몰두하여 국가 영역을 동쪽으로 크게 확대시킨 이슬람 통치자였고, 셀주크 조가 득세하던 서쪽 지역에 대해서도 성공적인 군사 원정을 단행하여 가즈니를 중심으로 한 대제국을 만들었다.




대내 정책 : 지식인 양성을 통한 문학과 학문의 발전



술탄 마흐무드는 대외적으로 힌두스탄 지역을 평정하고 영토를 크게 확장시키는 한편 막대한 금은 보화를 챙김으로서 국가 재정을 증대시킨 군주로 알려졌다. 동시에 교육과 문화를 발전시키고 여러 지식인들을 보호함으로써 대내적인 지지를 이끌어 낸 군주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시기에 마흐무드와 관계를 가졌던 문인들은 알 비루니(천문학자 및 백과사전 저술가), 알 파라비(철학자). 아스자디(시인), 마누체흐리(시인), 안사리(철학자)등이 있으며, 무엇보다도 '샤나메'를 저술한 페르도우시(서사시인)가 유명하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페르도우사는 마흐무 드로부터 6만 디나르를 받는 대가로 27년간에 걸친 대역작 '샤나메'를 마흐무드에게 바치기로 하였다. 그러나 마흐무드가 약속을 지키지 않자 두 사람간의 갈등이 깊어졌고 결국 페르도우시는 비극적인 최후를 스스로 선택했다고 한다. 현재 이 부분에 관한 여러 견해가 있지만 분명한 사실은 페르시아 조 서사시의 중요한 대작 페르도우시의 '샤나메'가 술탄 마흐무드 시기에 완성되었고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것으로 보아 술탄 마흐무드는 문학과 학문에 조예가 있었음을 알 수 있는데 특히 왕실에는 400명 이상의 시인들이 소속되어 있었다고 한다.



기타 정책 : 친페르시아 정책, 건설 사업



술탄 마흐무드는 고위 관료와 군지휘관들을 페르시아인들 중에서 기용하였고 페르시아 문화와 전통을 유지 발전시키는 데 큰 역활을 하였다. 이로써 왕조 초창기에 투르크 전사들이 상용하던 터키어보다 페르시아어 사용이 확대되었고 가즈나 조의 페르시아 연관성이 확립되었다.


술탄 마흐므드는 과거 지방도시 중 하나에 불과하던 가즈나 시를 국가 수도에 걸맞는 모습으로 승격시키기 위해 건설 사업을 단행하였다. 거대한 이슬람 사원 건립을 비롯하여 박물관, 도서관, 저수조, 수로, 분수 건설이 전개되었다. 그 결과 국가 수도에 걸맞는 모습으로 가즈니는 거대한 국토의 중심으로서 여러 도로와 연결되었고 수많은 상인들이 드나드는 국제도시로 성장하게 되었다.



술탄 마흐무드에 대한 평가



1030년 수도 가즈나에서 생애를 마감하기까지 술탄 마흐무드는 영토를 크게 확장시키고 문예를 크게 발전시킨 지도자로 평가된다. 그가 남긴 족적 중 가장 큰 것은 무엇보다 힌두교 영역을 오늘날 인도 지역으로 밀어내고 편잡 지방을 중심으로 이슬람 문화를 파급시킨 점이다. 이미 16세기 초 투르트계 통치자인 바부르가 여러 차례 인도 정복을 시도함으로써 정복의 기초를 닦아 놓았다. 가즈니는 현재 아프가니스탄 지역에 포함되어 있지만, 파키스탄이 인도에서 분리 독립된 역사적 근거를 바로 술탄 마흐무드의 업적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그리고 마흐무드는 스스로 철저한 이슬람 순니파 신자로서 타 교파나 타 종교에 대해 적대적이었기 때문에 훗날 무슬림 역사가들에 위해 신앙심 깊은 통치자로 분류되었다. 술탄 마흐무드는 뛰어난 군사적 감각, 열정, 야망과 강력한 의지력을 소유한 군주였고 용기와 자신감이 넘치는 활달한 행동가였다. 동시에 학문과 문학에 대한 깊은 조예와 이해는 문화적으로 풍성한 가즈니 조의 근간을 형성시켰다. 200년간 유지된 가즈니 조는 술탄 마흐무드 때 최전성기를 맞았다.



손영훈. 한국외국어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