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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슬림 여성 지도자 카디자 (Khadijah bin Khuwaylid)

Author
kislam0
Date
2016-03-28 10:16
Views
416

무슬림 여성 지도자
카디자 (Khadijah bin Khuwaylid,555-619)

이슬람 초기 여성들은 적극적인 사회 참여를 통해 이슬람 공동체 발전에 많은 기여를 했다. 여성들은 예언자 무함마드의 조력자로서 활약했으며, 때로는 공동체를 이끄는 지도자로서의 역활도 해냈다. 예언자 무함마드의 첫 번째 부인이었던 카디자는 메카의 거상(巨商)으로서 그의 든든한 재정적 후원자였으며, 무함드가 예언자로 부름받았을 때에 이슬람으로 개종한 최초의 무슬림이었다. 또한 예언자 무함마드의 세 번째 부인이었던 아이샤는 내전이 벌어졌을 때 직접 낙타에 올라타 전투를 지휘했다. 한편 무함마드의 딸이었던 파띠마는 알리와 결혼하여 쉬아파에서 가장 존경받는 여인이 되었다. 현대 무슬림 여성들은 여권 신장과 여성들의 정치 및 사회 참여를 부르짖을 때마다 항상 이 세 여성들의 역사적 사례를 언급한다.

카디자 (555-619)
최초의 무슬림 카디자


카디자 빈트 쿠와일리드는 무함마드가 처음 계시를 받았을 당시 유일하게 그를 믿고 따랐던 든든한 후원자로 이슬람 신앙의 계보에서는 최초의 무슬림으로 간주된다. 카디자가 죽은 지 여러 해가 지나서야 예언자 무함마드는 다음과 같이 카디자에 대해 회고하였다.

"알라께 맹세코, 카디자를 대신할 수 있는 훌륭한 부인은 내게 없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믿지 않을 때 그녀는 나를 믿었으며, 사람들이 나의 가르침을 거부할 때 그녀
는 나의 가르침을 받아들였다. 사람들이 내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 갔을 때 그녀는
유일하게 나에게 경제적 지원을 제공했다. 그리고 그녀는 나에게 아이를 낳아 준
유일한 부인이었다."

이슬람 시대 이전 아라비아 반도에서 여성의 지위에 관해서는 이슬람 학자들과 서구 학자들 사이에 많은 논란이 있다. 그러나 이슬람 이전 시대의 여성들이 이슬람 시대의 여성보다 높은 지위를 누렸다고 주장하는 서구 학자들의 견해를 일부 수용한다고 하더라도 이슬람 이전 시대 여성들이 가정과 사회에서 남성과 비교할 수 없는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카디자는 경제적인 독립을 이루어 낸 보기 드문 여성이었다. 무함마드와 결혼하기 전 이미 그녀는 두 번 결혼한 바 있으며 전남편에게서 각각 한 명 씩의 자녀를 두었다. 카디자는 전남편으로부터 많은 유산을 상속받아 그것을 잘 운용하여 재산을 증식하였던 당대의 가장 부유한 여성 가운데 한 명이었다. 그녀는 자신을 대신하여 무역을 할 수 있는 남성을 고용하여 사업을 운영하였으며 스스로 혼인 상대를 선택한 독립적인 인물이기도 하였다.

카디자는 무함마드의 삼촌 아부 딸립의 주선으로 무함마드를 고용하였다. 카디자는 무함마드에게 자신의 종 마이사라와 함께 시리아 지방으로 가는 대상무역을 책임져 줄 것을 요청하였다. 그 무역여행은 매우 성공적이었고 무함마드는 많은 이윤을 남기고 돌아올 수 있었다. 무함마드와 동행했던 마이사라는 그의 성실함과 정직함에 대해 카디자에게 보고하였다. 그 결과 무함마드에게 호감을 갖게 되었던 카디자는 열다섯 살의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보내 무함마드에게 청혼하기에 이르렀다. 카디자는 꾸라이쉬 부족 출신의 여러 귀족 남성들의 청혼을 거절했었다. 당시 스물 다섯 살이었던 무함마드는 마흔 살이었던 카디자의 청혼을 받아들였고 둘의 혼인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무함마드는 카디자의 집으로 옮겨 가 함께 살았다.

혼인 이후 카디자가 무함마드에게 제공했던 넉넉한 삶은 그로 하여금 자신의 부족이 처해있는 현실을 비롯한 여러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고 명상할 수 있는 시간적, 경제적 여건을 제공하였다. 예언자가 되기 이전의 무함마드는 히라 동굴이 있는 산으로 들어가 칩거하면서 명상으로 시간을 보냈다. 이러한 무함마드의 습관 때문에 부인 카디자와 많은 날들을 떨어져 있어야 했다. 그러나 무함마드가 혼자 있는 시간을 보낼 때 카디자는 무함마드를 방해하지 않았으며 그의 정신적인 여행을 위해 적절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카디자가 무함마드와 결혼한 지 15년이 지난 후, 즉 무함마드가 40세에 이르렀을 때 그에게 아주 이상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그가 히라 동굴에서 명상을 하고 있는 동안 천사 가브리엘이 나타나 그에게 '읽어라'라고 명령한 것이다. 무함마드는 이 상황을 다음과 같이 전했다.

"내가 동굴 밖에 있었을 때 위로부터 소리가 들려왔다. [무함마드, 당신은 알라의 사자이고,
나는 가브리엘이다.] 위를 쳐다보자 누군가 지평선을 가득 채우고 말을 하고 있는 것을 보았
다. 그가 사라질 때까지 나는 그곳에서 넋이 나가 말을 잃은 채 서 있었다."


이 경험은 매우 이상하고 예사롭지 않은 것이었기 때문에 무함마드를 놀라게 했다. 그는 덜덜 떨면서 집으로 돌아와 부인 카디자에게 외투로 자신을 감싸달라고 했다. 이에 카디자는 그에게 자초지종을 물은 후 무함마드를 안심시켰다. "두려워하지 마세요. 당신은 진실하고 친절한 사람입니다.당신이 우리 민족을 위한 예언자가 될 것이라고 나는 알고 있어요."


카디자의 이러한 위로의 말은 무함마드를 안심시켜 주었고 두려움에서 벗어나 계시를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한편, 카디자는 당시 유대교와 기독교에 대해 깊은 식견을 지니고 있었던 사촌 와라까 빈 나우팔을 찾아가 남편 무함마드의 일에 대해 조언을 구했다. 카디자의 이야기를 듣고 난 와라까는 무함마드가 알라의 예언자가 될 것이며 그에게 말을 전한 사람은 바로 천사 가브리엘이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다.


하디스에 따르면 예언자가 카디자와 함께 있는 동안에도 천사가 나타났다고 전해진다. 카디자는 무함마드에게 천사가 나타나면 자신에게도 알려줄 것을 부탁하였다. 천사가 나타나자 무함마드는 카디자에게 그의 존재를 알렸다. 그러나 카디자는 정작 천사를 볼 수 었었다고 전해진다. 카디자는 무함마드의 머리를 자신의 왼쪽 다리 위에 올려놓기도, 또는 오른쪽 다리 위에 그의 무릎을 올려놓기도 하면서 여전히 천사가 보이는지를 무함마드에게 물었다. 무함마드가 그렇다고 대답하자 이번에는 자신이 쓰고 있던 히잡을 벗어 던지며 같은 질문을 했다. 그 때 천사가 사라졌다고 무함마드가 대답을 하자 카디자는 그들 앞에 나타난 것이 귀신이 아닌 천사가 확실하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예언자의 사랑스러운 아내이자 든든한 지원자

꾸란 의 74장 '앗 무닷씨르'의 장이 계시되면서 예언자 무함마드는 알라의 메시지를 설파하라는 명령을 받게 된다. 이에 카디자는 무함마드의 메시지를 받아들인 첫 번째 추종자가 되었다. 예언자 무함마드에 대적하는 불신자들의 핍박이 시작되자 카디자는 예언자의 편에 서서 무함마드의 상처를 치유하고 적극적인 격려를 아끼지 않는 사랑스러운 아내이자 든든한 지원자가 되었다. 계시가 시작된지 7년이 되던 해에 꾸라이쉬 부족의 주요 인물들이 이슬람을 받아들이자 불신자들의 핍박은 더욱 거세졌다. 급기야 그들은 무함마드가 속해 있는 하쉼가에 대한 보복으로 경제적 제제를 가하기 시작했다. 예언자의 충성스런 아내이자 든든한 조력자였던 카디자는 편안한 생활을 뒤로하고 협곡에 도망가 있던 예언자와 합류하기도 하였다. 불신자들이 경제적 제재를 종식 하기로 무슬림들과 합의하였을 때 이미 카디자는 매우 쇠약해져 병이 들어 있었다. 결국 카디자는 히즈라가 있기 3년 전인 619년 65세의 나이로 메카에서 사망하였다. 카디자가 살던 집은 후에 무아위야가 구매하여 모스크로 만들었고 이 모스크는 여전히 그녀의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카디자가 살아있는 동안 무함마드는 다른 여성과 혼인하지 않았다. 카디자는 무함마드와 혼인하여 25년을 함께 살면서 여섯 명의 자녀를 낳았다. 두 아들 알 까심과 압둘라는 어려서 사망하였고, 그 밖의 네 딸 파띠마, 자이납, 루까이야, 움무 쿨숨을 낳았다. 카디자의 딸 자이납은 사촌과 혼인하였고, 루까이야와 움무 쿨숨은 3대 칼리파 오스만과 각각 혼인하였다. 카디자의 딸 파띠마는 무함마드가 가장 애지중지하던 딸이었으며 제 4대 정통 칼리파 알리와 결혼하여 예언자의 혈통을 이은 두 아들 하산과 후세인을 낳았다. 이렇듯 예언자 무함마드의 후손은 기독교도였던 마리아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이브라힘을 제외하고는 모두 첫 부인이었던 카디자에게서 태어났다.

무슬림 여성의 본보기

앞서 설명한대로 카디자는 당대의 보기 드문 독립적인 여성이었다. 그녀는 남성을 고용하여 자신의 사업을 스스로 경영하였다는 점에서 오늘날 일하는 무슬림 여성의 본보기가 되고 있다. 또한 남성의 의지에 따라 운명이 결정되던 당시 대부분의 여성들과는 달리 자신의 자유의지로 결혼 상대자를 선택할 수 있었던 독립적인 인물이기도 하였다. 남편 무함마드가 후에 종교, 정치 지도자로 급부상 하면서 여러 가지 이유로 많은 여성들과 혼인한 것에 반해 카디자가 살아있는 동안 무함마드가 일부일처를 시행하였다는 사실은 카디자의 위상을 잘 보여준다. 카디자의 부와 지위는 이슬람을 포교하는데 실질적인 도움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무함마드가 불신자들을 상대로 담대하게 포교활동을 할 수 있는 바람막이가 되어 주었다.

많은 무슬림 페미니스트들은 이슬람 역사 속의 무슬림 여성들의 본보기로 카디자를 손꼽는데 주저하지 않고 있다. 대부분의 종교 무슬림 지도자들 역시 카디자와 파띠마, 아이샤를 가장 위대한 무슬림 여성들로 간주하고 있다. 그들은 파띠마를 1위로, 카디자를 2위로, 아이샤를 3위로 등급을 매기기도 하였다. 하피즈 빈 끼이임은 보다 구체적으로 예언자 무함마드와의 혈연적 관계를 생각할 때는 파띠마가 가장 선두에 있고, 이슬람을 받아들인 우선순위와 이슬람이라는 새로운 종교에게 쏟아 부은 물질적 지원을 고려한다면 카디자가 선두이며, 예언자의 가르침을 전하는 일에 전념한 것으로 따지자면 이이샤를 따를 자가 없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한편, 예언자의 여러 하디스에도 카디자에 대한 칭송이 담겨 있다. 하디스 모음집에 따르면 알라의 눈에 가장 높은 지위를 점하고 있는 두 여성이 있는데 그들은 바로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언자의 부인 카디자라고 되어 있다.

예언자의 결혼을 둘러싼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이슬람 세계에서 예언자의 부인들은 꾸란 의 계시를 통해 '신자들의 어머니'이라는 존귀한 명칭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까지 무슬림 여성의 본보기로 간주되고 있다. 전통적 무슬림 페미니스트들은 예언자의 부인들, 특히 카디자, 아이샤와 딸인 파띠마에게서 이상적인 여성상을 찾고 있다. 첫 부인 카디자는 일하는 여성의 상징으로, 아이샤는 교육받은 여성의 상징으로, 그리고 예언자의 딸이었던 파띠마는 도덕적인 여성의 상징으로 간주되고 있다. 오늘날까지도 이슬람 세계의 많은 여성들의 이름이 카디자를 비롯한 예언자의 부인들의 이름과 같은 것을 보면, 역사 속에서 그리고 오늘날의 현실 속에서 이들의 위상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조희선 명지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