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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슬림 여성의 등불 (아이샤(Aisha bin Abu Bakr, 614-678)

Author
kislam0
Date
2016-05-09 11:33
Views
442

무슬림 여성의 등불
아이샤(Aisha bin Abu Bakr, 614-678)
예언자의 아내, 아부 바크르의 딸


아이샤는 이슬람의 예언자 무함마드의 부인들 중에서 예언자의 전승과 관련된 지식 전파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이다. 그녀는 제1대 정통 칼리파가 된 아부 바크르의 사랑하는 딸이었는데, 아부 바크르는 예언자 무함마드의 가장 신망받는 동료로서 예언자가 사망한 후 초대 정통 칼리파로 선출되었다. 아이샤는 무슬림 가정에서 태어나 자랐으며, 9세의 어린 나이에 무함마드의 청혼을 받아 결혼했다.


예언자가 아이샤에게 청혼을 하게 된 이유는 그녀가 꿈에 나타났기 때문이라는 흥미로운 전승이 있다. 예언자는 그의 친한 동료 아부 바크르의 집을 자주 방문하였기에 아이샤를 빈번히 만나게 되었다. 예언자 무함마드는 그녀를 사흘 밤 내내 꿈속에서 만났다. 그의 꿈속에서 천사가 등장하여 실크 베일을 쓴 한 여성을 데려왔으며 천사는 이 여인이 부인이라고 말해주었다. 베일을 벗은 모습을 보니 바로 아이샤였다는 것이다. 또 다른 전승에서는 가브리엘 천사가 예언자에게 실크 베일을 쓴 여성 아이샤의 초상화를 보여주면서, 다음과 같이 알려주었다고 한다.


"이 여성이 그대의 현세의 부인이며, 내세의 부인이다."


두 가지 전승 모두 예언자의 꿈에서 천사가 등장하여 향후 자신의 아내가 될 아이샤의 얼굴을 알려주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이샤는 예언자 무함마드가 이슬람력 11년(632년)에 사망하면서 예언자와의 10년에 걸쳐 짧은 결혼생활을 마쳤으며, 이 때 그녀의 나이는 18세였다. 예언자는 아이샤가 살던 방에 안치되었다. 그곳은 세상에서 그녀를 가장 사랑한 두 사람인 남편인 예언자와 아버지 아부 바크르가 사후에 안치되었던 곳으로, 제2대 정통 칼리파 오마르 역시 아이샤의 허가로 이곳에 묻혔다. 아이샤는 30년간의 정통 칼리파 시대 동안 이슬람이라는 새로운 종교가 겪는 다양한 변화의 모습과 우여곡절을 목격하고 직접 체험했으며, 678년 무아위야의 통치 시절에 생을 마감했다.


예언자의 사촌 알리가 목걸이 사건으로 그녀와 예언자 간의 이혼을 한순간 잘못 거론했기 때문에, 알리와 그녀 두 사람 사이에 불화가 생겼다고 하는 주장이 있다. 하지만 예언자가 말년에 병을 이겨내지 못하고 자신의 머리를 그녀의 가슴에 대고 숨을 거둘 때 아이샤의 방에서 그녀의 간호를 받을 수 있도록 다른 아내들에게 동의를 구했을 정도로 아이샤를 향한 예언자의 사랑은 컸다. 그녀는 예언자가 가장 아끼는 친구의 딸이었고, 예언자가 결혼한 아내들 중 이전에 결혼 경험이 없는 유일한 여성이었으며, 지성과 재능을 갖춘 특별한 여성이었다.



무슬림 여성의 등불



아이샤는 예언자 무함마드가 참전한 전투에 활발히 동참하였다. 우흐드 전투 때에도 아이샤는 병사들과 부상자들을 돌보고 그들에게 한 모금의 물이라도 마시게 하려고 예언자의 다른 부인들과 함께 물이 담긴 자루를 등에 지고 이곳저곳을 뛰어 다녔다. 그녀는 전쟁에서 어렵고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일상생활에서도 늘 어렵고 가난한 무슬림들을 사랑했다.


아이샤가 모든 무슬림 여성들의 등불이 된 것은 그녀의 소박함과 검소함, 친절함과 애정 때문이다. 예언자와 생활했던 방의 유일한 입구에는 덧문도 없이 평범한 커튼이 걸려있었을 뿐이고 예언자의 일생동안 그녀는 겨우 3일간만 완벽한 식사를 했다고 한다. 예언자의 생의 마지막 날, 그녀는 등을 밝힐 기름도 어떤 먹을 것도 없을 정도로 수중에 가진 것이 없었다. 칼리파 오마르 시대에 그녀에게는 상당한 사례금이 주어졌지만 그녀는 그것을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데 다 써버려 그녀의 수중에는 아무 것도 남지 않게 되었다.


아이샤는 총명함과 지혜로움, 남달리 뛰어난 암기력과 특별한 학구열, 탐구심을 지녔고, 재능과 지성을 두루 갖춘 인물이었다. 예언자 무함마드가 사망했을 때 그녀의 나이는 불과 18세였지만 그 때 이미 이슬람 교단에서 중심적인 인물이 되어 있었다. 무엇보다 예언자의 일상생활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지니고 있는 살아있는 원천이었다. 아이샤는 연설가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녀의 연설은 대중적이고 인기가 있었으며, 예언자의 전승들에 대해 박식했다. 특히 피끄(이슬람 법학)에 관해 조예가 깊었다. 예언자의 전승에 대한 난해한 문제는 최종적으로 아이샤에게 맡겨졌고 그녀의 판단이 법적인 권한을 가졌다. 많은 하디스에서 그녀는 무함마드의 언행에 대하여 증언하고 있다. 알리, 압둘라 빈 압바스, 압둘라 빈 오마르와 더불어 그녀는 이슬람 초기의 가장 위대한 지성인 중 한 사람으로 여긴다. 아이샤는 카디자와, 파띠마 앗 자흐라와 함께 이슬람 최고의 여성으로 칭송받는다.


이븐 하즘의 경우는 아이샤를 예언자의 모든 아내들과 예언자의 동료들 혹은 친척들보다 더 높게 평가한다. 이븐 타이미야에 의하면, 카디자는 이슬람을 받아들인 첫 번째 여성이기에 추앙받고, 파띠마는 예언자의 가장 사랑하는 딸이어서 높이 칭송 받는데, 아이샤는 예언자의 가르침을 직접 무슬림 움마에 대중화시켰다는 점에서 최고로 손꼽히고 있다. 아이샤는 신에 대한 경외심, 신앙심 뿐만 아니라 인간이 지녀야 할 최고의 덕성과 관대함을 지닌 여성이었다. 아이샤는 의무 예배와 단식 외에도 항상 추가로 드리는 예배와 단식에도 열중하였다. 그리고 매년 하지(대순례)와 우므라(소순례)를 행하기 위해 메카로 가곤하였다.


아이샤의 관대한 성품은 그녀에게 해를 입혔거나 그녀가 소중히 여기는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간 사람들조차 관용적으로 대하는 모습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언젠가 이집트에서 한 남자가 왔을 때 아이샤는 자신의 오빠인 무함마드 빈 아비 바크르의 죽음에 책임이 있던 당시 이집트 통치자에 관해 물었다. 그 이집트 남자는 이집트의 통치자 이븐 후다이즈가 공평하고 정당하게 일을 잘 처리한다고 답하였다. 아이샤는 이븐 후다이즈가 자신의 오빠에게 행한 일에 연연해하지 않고 이븐 후다이즈를 창찬했다고 한다. 단지 그녀는 무함마드가 남긴 기도문을 다음과 같이 읊었을 따름이다.


"오 알라시여! 나를 따르는 자들의 일을 책임진 자가 누구든지 그가 부당하게 일한다면 그에게 가혹하게 대하시고, 나를 따르는 자들의 일을 책임진 자가 누구든지 그가 사람들에게 친절을 베푼다면 그에게 동정을 베푸시길 바라나이다."



아이샤가 예언자의 사촌 알리를 향해 원한을 품고 있다는 몇몇 역사학자들의 견해와 달리, 위의 사건을 통해 아이샤는 알리에게 원한을 품을 만한 성품의 여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전장에 나갔던 그녀가 사막에 떨어진 목걸이를 찾는라고 낙오되었다가 낙타병과 함께 늦게 돌아온 사건이 있었을 때 아이샤는 젊은 장교 알리가 예언자를 경애하던 사람들 몇몇과 함께 그녀의 정숙함을 의심하는 말과 의견을 듣게 되었다. 이 때 알리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전해진다.


"알라께서 아이샤 외에 많은 여성들을 창조하셨다. 그녀의 시녀 바리바에게 물어본다면 그녀가 진실을 말해 줄 것이다."


이 사건은 '꾸란' 계시가 내려옴으로써 아이샤의 결백이 증명되고 해결되었다. 그러나 일부 편견을 가진 사가들은 이 때 그녀의 정숙함에 대해 예언자 앞에서 한 알리의 말에 원한을 갖고 알리가 제4대 칼리파로 추대받았을 때, 아이샤가 반대하며 사람들을 부추켜 알리에 대항하게 했다고 주장했다. 또 일부 학자들은 아이샤가 제3대 정통 칼리파 오스만 살해의 죄를 알리에게 뒤집어 씌어 교단에 내분을 일으켰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오빠의 죽음을 통해 살펴 본 아이샤의 성품을 보면 이 모두가 옳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낙타 전투



아이샤의 뜻과 행동이 사실과 다르게 알려진 계기가 된 사건은 '낙타 전투'였다. 이 전투에는 아이샤 진영 사람들과 칼리파 알리 진영 사람들이 참여했다. 그녀도 예언자의 동료인 앗 주바이르와 딸라하와 함께 바스라로 간 것은 실지로 알리와 싸우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아이샤는 화해를 통한 평화 달성을 위해 바스라에 갔다. 그렇지만, 그녀의 이러한 노력은 이슬람의 적들에게 오스만을 살해한 자들, 알리 진영의 이븐 사바와 같은 정치적 음모를 꾸민 자들의 이이샤 진영에 대한 갑작스러운 야습 때문에 허사가 되었다. 실제로 싸움이 발생했을 때 아이샤와 알리는 사람들을 소집하여 싸움을 멈추도록 노력하였다. 그녀는 이러한 싸움에 격분하여 오스만을 살해한 자들과 그들의 지지자들에게 저주를 내려달라고 큰 소리로 기도하기 시작했으며, 그녀 주변 사람들도 그녀와 똑같이 기도하기 시작하였다. 알리가 그들의 기도 소리를 알아듣고, 알리 역시 알라께 오스만을 살해한 자들과 그들의 지지자들에게 저주를 내려달라고 함께 기도를 드렸다고 한다.


낙타 전투 때, 적병의 공격을 받아 아이샤가 낙타에서 떨어지는 일이 발생했다. 그러자 알리는 자신의 진영에 있었던 그녀의 오빠 무함마드 빈 아비 바크르에게 동생 아이샤를 보호하여 다치지 않게 하라고 지시하였다. 후에 그녀는 40명의 여성들 무리에 합류하여 넉넉하게 식량을 챙겨서 바스라에서 메디나로 정중히 모셔졌다. 이 때 알리는 자신의 아들에게도 아이샤를 잘 모시라고 명하기도 했다. 이 같은 사례들에서 아이샤와 알리의 관계가 어땠는지 쉽게 짐작해 볼 수 있다.



칼리파들의 조언자



아이샤는 가르치는 일과 속의 여러 일들에 대해 사람들에게 조언하는 일로 생의 대부분을 보냈다. 아이샤는 칼리파들의 조언자이기도 했다. 우마이야 조의 칼리파 무아위야가 그녀에게 조언을 구하는 전갈을 보냈던 사건은 유명하다. 그녀의 회신은 간단명료했으며 상황에 잘 들어맞았다. 아이샤는 그에게 인사말을 적은 뒤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알라의 사자인 예언자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누구든지 사람들에게 고통을 참으며 알라의 영광을 구하는 자는 알라께서 그를 그들로부터 지켜 줄 것이며, 누구든지 알라의 노여움을 사고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는 자는 알라께서 그를 그들 사이에 버려둘 것이다.]."


다른 전승에서는 두 번째 부분이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누구든지 죄를 지은 사람에게 칭찬을 구하는 자는 알라께서 그를 노여워할 것이며 사람들로 하여금 그를 즐거워하지 않도록 하실 것이다."


아이샤는 이슬람력 58년 라마단 달, 17번째 밤에 66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이계연. 명지대학교


1400년 이슬람 문명의 길을 걷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