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LAMP OF ISLAM

이맘 부카리(Imam Bukhari, 810-870)

Author
무스타파
Date
2015-09-06 14:25
Views
458

정통 하디스집 부카리의 저자

이맘 부카리(Imam Bukhari, 810-870)

 

 

생애

 

이 세상에는 소문날 만한 기억력을 타고난 사람이 수없이 많지만, 이런 부류의 사람들 중

이슬람이 배출한 가장 위대한 인물은 단연 전승학자 이맘 부카리다. 그는 백만 개나 되는

전승을 자세히 암기하고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처음에 그에게 전해졌던  전승들은 그 출

처와 전달자가 모두 달랐다고 전해진다. 그의 전승 모음집인 '사히흐 부카리'는 이슬람의

예언자 무함마드의 전승의 가장 믿을 만한 정통 모음집이라고 보편적으로 인정되고 있다.

 

후에 이맘 부카리로 알려진 아부 압둘라 무함마드 빈 이스마일은 이슬람력 194년 샤우왈

달 13일(810년 7월 21일) 오늘날의  우즈베키스탄에 있는 부하라에서 태어났다. 그는 바

르디즈마 (또는 브라디즈바트)라는 페르시아인의 손자였다.

 

세상에 갓 태어난 아이는 시력을 잃고 가까스로 눈을 떴다.  아버지는 그 일에 몹시 슬퍼

했다. 독실한 어머니는 울면서 자신의 갓난아이가 시력을  되찾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

도했다. 그녀는 자는 중에 꿈에서 예언자 아브라함의 말을 들었다.

"기뻐해라. 하나님이 네 기도를 받아주셨다."

어머니가 잠에서 깨어나자 갓난아이의 시력이 완전히 되돌아왔다고 한다.

 

이맘 부카리는 어렸을 때 아버지를 여의였는데,  어머니가 그를 키웠다. 그는 11살의 이

른 나이에 전승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16살 때는 어머니와 함께 성지를 순례했다. 그는

메카와 메디나에 있는  전승의 위대한 스승들에게 강의를 들었다.  그는 겨우 18살일 때

'카자야이 사하바 와 타바인'이라는 책을 썼다. 그의 형 라시드는 어린 부카리가 자신과

다른 학생들과 함께 발크의 학자들의 강의와 강연에도 참석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그는

다른 학생들과는 달리 이들 강연에서 어떤 필기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가 강의에 필

기를 하지 않았다며 시간을 낭비했다고 비난하였다. 부카리는 어떤 대꾸도 하지 않았다.

어느 날 부카리는 그들이 변함없이 비난하는 것을 귀찮아하면서  동료 학생들에게 그들

이 필기한 모든 것을  가져오라고 했다.  그 때 동료 학생들은 1만 5천 개 이상의 전승을

적어놓았다. 하지만 어린 부카리는 모두가 놀랄만큼 학생들이 적지 않은 세세한 부분까

지 1만 5천 개의 전승을 모두 외어 말했다.

 

이맘 부카리는 그 때부터 16년 동안 이슬람 세계를 순례하며 연구를 하기 시작했다. 그

는 이 기간 중 5년간 바스라에 있으면서,  지식과 학문을 찾아서 이집트,  히자즈,  쿠파.

바그다드를 수차례 방문하였으며, 서부 아시아의 전역을 돌아다녔다. 그는 여행을 하는

동안 8만명에게서 전승을 모았으며, 비상한 기억력 덕분에 이 전승들을 출처와 함께 모

두 기억하였다. 젊은 부카리의 명성은 금방 이슬람 세계로 퍼졌나갔고,  그가 가는 곳마

다 명성이 퍼졌으며,  그는 무슬림들로부터 커다란 존경을 받았다. 사람들은  그의 깊은

학문과 비범한 기억력에 놀랄 따름이었다.

 

이슬람 세계를 통틀어  수많은 학식 있고 경건한 이들이  젊은 부카리의  제자가 되었다.

이들 중에는  샤이흐 아부 자라, 아부 하팀 티르미지,  무함마드 빈 나스르, 이븐 하지마,

이맘 무슬림 등이 있었다. 

 

이맘 부카리의 정신적 스승인 이맘 다라미는  자신의 학구적인 제자가 예언자의 전승에

깊은 통찰력을 가지고 있는 것을 인정했다.  그는 당대에 가장 명석한  하나님의 피조물

이었다.

 

이맘 부카리는 자신의 지혜와 놀라운 기억력을 바탕으로 기념비적인 직품인 '사히흐 부

카리'를 집필하는 데 전념했을 뿐만 아니라,  최고의 헌신과 경건한 마음으로 이 작업에

몰두했다. 그는 책을 쓰려고 앉을 때마다 목욕을 하고 기도를 드렸다. 이맘 부카리가 쓴

이 책의 일부는 메디나에 있는 예언자의 묘소 옆에 안치되어 있다.

 

이맘 부카리가 고향 부하라로 돌아왔을 때 주민들은 그를 열렬히 환영하였다. 그러나 그

는 그곳에서 오래 머물지 못했다. 부하라의 지배자의 궁에서 그와 그 자제들에게 예언자

의 전승을 가르쳐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는 그 요청을 거절하고,  사마르칸드에서 가

까운 도시인 하르타낙으로 이주했다. 그는 거기에서 이슬람력 256년 라마단 달 30일(서

기 870년 8월 31일)에 숨을 거두었다.

 

이맘 부카리의 장례식에는 이슬람의 가장 위대한 아들을 마지막으로 보내기 위해 이 도

시와 부근의 모든 주민들이 참석하였다. 그의 '사히흐 부카리'는 이슬람의 경전인 '꾸란'

다음의 위치를 점하고 있다. 하르타낙에 있는 그의 묘소는 아직도 무슬림 순례자들이 방

문하는 중요한 성지이다.

 

 

예언자 전승의 최고의 작품, 사히흐 부카리

 

일반적으로 사히흐 부카리'로 알려진  이맘 부카리의 기념비적인 작품 '알 자미아 알 사

히흐'는 이슬람의 가장 위대한 전승자로서 그의 명성을 인식시켜 준 중요한 작품이었다.

그것은 순나의 가장 믿을만한 출처 자료로 인정받고 있다.

 

이맘 부카리는 이슬람의 예언자 무함마드의 전승 백만 개를 그 출처, 전달자와 함께 모

두 외우고 있었다고 한다. 한번은 그의 종교적 스승인 사히흐 아스하끄 빈 라후가 물었

다.

 

"누가 이슬람의 예언자의 가장 믿을만한  전승들을 한 권의 책으로 집대성할 수 있겠는

가?"

 

이맘 부카리는 자신이 스승의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8만 명의 전달자에

게서 얻은 백만 개의 전승  중에서 7275개(이븐 하자르에 따르면 9082개)의 전승을 골

라내서 기념비적인 작품인  '사히흐 부카리'를 썼다.  그가 책을 완성하는 데는 16년이

나 걸렸다.

 

수천 명의 전승학자들과 신학자들은 이맘 부카리의 이 기념비적인 작품을 예언자 전승

의 최고의  작품으로 인정하고 있다. '사히흐 부카리'에  대해서 53개 이상의  주해서가

적혀 있는데,  이중 일부는 14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은 피끄라는 장에 따라서 나

뉘어 있는데, 그는 이런 방식으로 완전한 체계를 구상했었다. 그는 전승을 수집하는 데

있어서 상당히 보수적이고 비판적이었다. 그는 본문을 편질할 때에는 대단히 꼼꼼하게

정확한 것을 얻으려고 노력했다.  그는 전승의 취득 장소나 아무리 짧은 주석이라도 본

문과 다르면, 그 당시 얻을 수 있는  환경을 분명히 밝히면서 그 자료를 설명하는 데 망

설이지 않았다. 이맘 부카리는 종교, 이슬람 철학, 역사에 관한 20여 권의 책을 썼다.

 

이규철. 부산외국어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