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LAMP OF ISLAM

무굴제국의 황제들

Author
무스타파
Date
2015-08-18 07:22
Views
492

무굴제국의 초대황제 자히룻딘 무함마드 바부르 (1526 - 1530)


티무르제국 마지막 칸이자 무굴제국 초대황제.  티무르의 5대손, 차가타이의 13대손, 칭기즈칸의
14대손이다. 22살이었던 1505년 동쪽에 위치한 인도를 노리고 20여년동안 공격하지만 실패하였다.
그러던 중 이슬람 지배세력이 약해진 틈을 타 델리를 공격할 계획을 세우고, 불과 만이천명의 군대를
동원해 십만명의 군대를 지닌 델리 술탄 "이브라힘 로디"의 군사들을 격파한다.  

*2대황제나시룻딘 후마윤 1530 - 1540 / 1555 - 1556

 



 후마윤은 1540년 인도 동쪽 비하르의 쉐르 칸(Sher Chan)에 패하여 나라를 빼앗기고, 아프간과 펀잡
일대를 통치하고 있던 동생 캄란 미르자(Kamran Mirza)에게도 배신당해 이란의 사파빗 왕가에 피난처를
구해야 했다. 이란 왕조의 도움을 받아 5년 후인 1545년 카불을 되찾고 천신만고 끝에 1555년 무굴왕국
을 되찾아 델리로 복귀한지 6개월만에 어처구니없는 사고로 죽음을 당한다. 왕궁 계단을 내려오다 옷자락
이 발에 걸려 넘어지면서 계단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치고 그 여파로 사흘 후 숨을 거두고 만것. 

 

*3대황제* 압둘파스 잘라우딘 모하메드 악바르(Abdul-fath Jalaudin Mohammad Akbar)바르 대제(大帝)

           1556 - 1605

 



13세에 왕위에 오른 악바르 그는 이란 장교 출신의 바이람 칸의 도움(섭정)을 받아 수많은 전투를 치루며
성장한다. 드디어 섭정에서 벗어나 스스로 나라를 통치할 수 있게된 18세 때 그의 첫번째 공격은 용맹한
힌두교도들인 "라지푸트"족을 제압하는 것이었다. 평원위에 150여미터의 성을 쌓은 요새 "치토르"를 차지
하는 것이 핵심3-4000명의 군사로 시작한 8000여명의 라지푸트족과의 싸움

그의 가장 큰 무기는 유목민족과 무굴인을 상징하는 "기병"과 "포병"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겼던
"무장한 코끼리"가 있었다. 

코끼리 갑옷 : 무려 130kg 의 무게에 8500개 이상의 조각을 연결해 만드는 코끼리 갑옷, 악바르대제는
"무장한 코끼리 한마리는 말 500마리와도 같다"고 이야기할만큼 코끼리를 유용하게 전쟁에 활용하였다.

코끼리 부대는 주로 현장공사(우거진 숲에 길을 만들어 부대가 이동할 수 있도록 하는 일)와 정찰업무를
담당하였고, 가끔 위협적인 존재로 전투에 활용되기도  하고, 경종을 울려야 할때 사형을 집행하는 일을
맡기도 하였다. 코끼리가 발로 밟아 사람을 죽이는 잔인한 장면 역시 기록에 남아있다고....

 

하지만 탄도각이 큰 대포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높은 탑이 필요했고, 이에 악바르는 치토르 요새앞에 커다
란 언덕을 쌓을 것을 명령한다. 이 언덕은 흙을 쌓아 만들어 졌는데 흙을 한바구니 나르는데 금화 한잎을
주었다고 해서 코인힐이라고 불리운다고 한다.
이 언덕을 쌓아올리는 과정에서 수많은 희생이 뒤따르게 되고, 악바르는 다른 방법을 모색하게 된다. 바로
성 주변에 지뢰를 매설해 성을 폭파하기로 한 것. 결국 이 방법 역시 실패했으나 수개월에 걸친 전쟁을 통해
악바르는 치토르를 차지하게 되고, 3만여명의 민간인을 죽이고 그들의 머리를 베어 탑에 담는 만행을 저지르
기도 했다고 한다.


 

치토르 함락 이후 새 수도 건설이 필요했던 악바르 그는 당시의 런던보다 더 큰 도시를 계획하고 이를 실행에
옮긴다. 아그라 인근의 도시 "파티푸르 시크리" 9km에 걸쳐 모든 건물이 연결되도록 설계하고 인근에 인공호
수를 만들어 식수를 해결하는 계획된 도시다. 이 도시는 유목민의 건축양식이 남아있는데, 회반죽을 사용하지
않고 모든 건물을 마치 목재인 듯, 만든 뒤 조립하는 양식이 바로 그것이다.

 

26세의 악바르

그는 이미 300여명의 아내와 5000여명의 후궁을 맞았고, 정절을 감시하는 여성감독관, 여성 경비병, 그리고
하렘 주위를 지키는 정예 부대를  통해 이들을 철저히 관리했다고 한다. 1명이 5300여명의 여자를 가졌다니!!

천도 15년만에 북서부 지역에 동요가 발생 이를 진압하기 위해 수도를 다시 옮겨가게되고, 파티푸르 시크리는
버려진 도시로 남게된다.

 

 4대황제* 자항기르 (1605~1627) 자항기르의 이름에 대한 뜻은 세상의 정복자라는 뜻.

 

 

 

무굴제국의 5대 황제 샤 자한

5대 황제 샤 자한( 1627 - 1658 )

친형제와 조카 2명 그리고 자신의 정적을 살해하고 왕위에 오른 샤자한 샤자한 이후 무굴제국의 왕위
계승은 피비린내로 얼룩지게 된다.
샤 자한은 "세계의 지배자"라는 뜻 왕위에 오른 샤자한은 자신을 위한 화려하고 새로운 왕좌를 제작
한다. 무려 황금 1톤과, 다이아몬드, 루비, 에메랄드 200kg이 사용되고 7년동안 제작된 화려함의
극치(현재 가치로도 10억달러에 이른다고 ...)

그러나 그의 사치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아그라포트, 델리의 레드포트등의 궁전에 내부에는 최고급
페르시아 카펫을 깔고 벽에는 벽걸이 융단을 걸었다. 또한 벽지에는 산호, 루비, 다이아몬드등의 보
석으로 장식해 그 화려함을 더했다고...
 
물론 지금은 보석이 남아있지 않지만 남아있다면 위의 사진처럼 휘황찬란한 모습이었으리라. 그러나
샤자한의 화려함의 끝은 바로 이것 "타지마할" 



20년동안 자신의 곁을 지켜주던 지혜로운 아내 뭄타즈 마할 그녀가 14번째 아이를 낳다 죽음을 맞이하자
샤자한은 2년동안이나 호화로운 생활을 멀리한다. 그리고 그 이후 22년동안 한가지 일에 몰두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타지마할이었던 것... 

무굴의 관행상 건축과정중이나 또는 이후에 개축이나 증축이 불가능한 탓에 타지마할은 그 설계부터 완벽
했다고 한다. 2만여명의 예술가가 동원되고 30여종이상의 보석을 새겨넣어 완성된 타지마할 10층 높이의
중앙 돔은 그 무게가 13000Kg 두께가 1.8m에 이르지만 중앙에 기둥이 없는 놀라운 건축술을 자랑한다. 



놀라운 사실 하나 !! 타지마할은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흔히 타지마할은 대리석으로 쌓아 올려
만들어진 것이라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벽돌과 회반죽으로 만들고 그 안과 밖을 대리석으로 마감처리한 모습
이라고 한다.

 



놀라우 사실 둘!!  야무나강 건너에 블랙마할이 존재한다? 이야기에 따르면 샤자한은 뭄타즈 마할과 사후에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타지마할의 건너편 야무나강 건너에 블랙마할 (흰색의 타지마할과 대비되는 검정 대
리석을 이용한 ...)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고고학자들의 발굴 결과 그곳에는 어떠한 대리석 조각이나
건물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고, 대신 정원이 나타났다. 팔각형의 아름다운  "월광정원"    



월광정원에 물을 채우면 이렇게 타지마할의 모습이 정확히 비추는데 물위에 비추는 검정색의 타지마할 이것이 바로
샤자한이 꿈꾸었던 블랙마할이라는 것....



아무튼, 샤 자한은 달빛이 비추는 밤이면 궁궐을 나와 강을 따라 이곳으로 향했고, 이곳에서 물에 비친 타지마할과
진짜 타지마할을 바라보았다고 한다. 이후 샤자한이 몸저눕고 자신의 큰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었으나 1년후인 1658년
그의 셋째아들 아우랑제브가 3명의 형제와 한명의 조카를 살해하고 무력으로 왕위를 계승하게 된다.
샤자한은 8년동안이나 레드포트에 갇혀 생을 마감했다고 ....  
 
 
 

6대 황제  아우랑제브 (1658 - 1707) 

아버지의 뒤를 이어 피를 통해 왕이 된 아우랑제브 그는 즉위한 이후 30년동안이나 영토 확장에 힘쓰며 데칸지역을
차지하고 세계 인구의 1/4인 1억5천만명을 지배하는 권력을 누리게 된다.
1687년 데칸지역의 Golconda Port (골콘다 성)
이 지역은 다이아몬드 광산이 있던 지역으로 엄청난 재력을 가진 지역이었다. 그는 8개월간에 걸친 전쟁을 통해 이
지역을 차지하게 된다. 그러나 끊임없는 전쟁으로 인해 아우랑 제브의 통치시절 수많은 반란들이 일어났고
아우랑 제브를 마지막으로 300여년에 걸쳐 세계 제일의 부와 권력을 누리던 무굴제국의 번성기는 끝을 맞게 된다.
 

4. 자항기르 (1605~1627) 자항기르의 이름에 대한 뜻은 세상의 정복자라는 뜻.

<아우랑제브 이후의 무굴 황제>    

7. 바하두르 샤 1세 (샤 알람 1세) 1707 - 1712

8. 자한다르 샤 1712 - 1713

9. 플루크시야르 1713 - 1719

10. 샤 자한 2세 1719

11. 라피 우드 다울라트 1719

12. 니쿠시야르 1719

13. 모하메드 샤 1719 - 1720

14. 모하메드 이브라힘 1720

** 모하메드 샤(복위) 1720 - 1748

15. 아메드 샤 바하두르 1748 - 1754

16. 알람기르 2세 1754 - 1779

17. 샤 제한 3세 1760

18. 샤 알람 2세 1779 - 1806

19. 악바르 2세 1806 - 1837

20. 바하두르 샤 2세 1837 - 1857

 

1857년 북인도를 중심으로 발생한 "세포이의 반란" - 각 지역에서 반란을 일으킨인도의 병사들이 델리에 집결해
바하두르 샤 2세를 추대해 새로운 정권을 수립하였으나, 2년에 걸친 이 반란이 영국군의 무력으로 진압되자, 영국
은 그때까지 명목상으로만 남겨두었던 무굴황제의 지위를 폐하고 무굴제국은 멸망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