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LAMP OF ISLAM

무함맏의 부인들 (움무 쌀라마)

Author
무스타파
Date
2015-05-03 11:03
Views
360

움무 쌀라마



움무 쌀라마는 마크람 부족 출신으로 그의 사촌과 결혼하였다. 이들 부부는 이슬람 초기에 입교하였으며 쿠라이쉬 부족의 박해를 피하여 아비시니아로 이주하였다.
아비시니아에서 돌아온 후 이 부부는 4 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다시 메디나로 이주했다. 그녀의 남편은 수많은 전투에 참가하였으며 후에 우후드 전투에서 치명적인
부상을 당하게 되어 사망했다. 자녀들을 부양해야하나 그렇게 할수 없었던 움무 쌀라마의 사정을 잘알고 있던 아부바크르와 우마르는 그녀에게 청혼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그 누구도 자신의 남편보다 뛰어나지 않다는 이유에서 이 청혼을 거절하였다.

많은 시간이 흘러 예언자는 직접 그녀에게 청혼하였다. 움무 쌀라마는 이슬람을 위해서 고통받고 희생당하는 것에 결코 주저한적이 없었으며 아라비아반도의 가장
명망있는 귀족 집안 출신으로 홀로 뛰어난 여성임을 감안하면 이 청혼은 자연스런 것이었다. 그녀는 이슬람을 위하여 너무도 소중한 존재였기에 결코 그렇게 방치
되어서는 안되었던 것이다. 그녀의 경건하고 진지한 신앙심과 그녀가 겪었던 모든 고통들을 생각하면 그녀는 틀림없이 도움을 받을만한 가치가 있었다. 그녀를 자
신의 아내로 삼으면서 예언자는 자신의 유년기 이래로 계속해 오고 있는 일 즉 친구가 없는 자에게는 친구가 되어주고,부양 받지 못하는 자들을 부양해주며 보호받
지 못하는 자들을 보호해 주는 일을 한 것이었다. 움무 쌀라마의 입장에선 자신에게 부족한 것을 채워주는 방법에 있어 이 이상의 친절과 호의는 없었다.

움무 쌀라마 역시 아이샤처럼 비범한 지성과 이해력을 소지하고 있었다.그녀 또한 무슬림 여성들의 정신적 인도자와 스승이 되기 위한 모든 자질을 갖추고 있었다.
예언자가 동정과 자비로 그녀를 그의 보호안으로 받아들였을때 모든 여성을 위한 지식과 인도의 교정의 길로 그녀가 발을 들여 놓은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여기서
당시 예언자의 나이가 60에 가까웠음을 상기하자. 곧 많은 아이들을 가진 과부와 결혼함으로서 그에 따르는 비용과 책임을 받아들이는 것은 예언자의 무한한 인간
성과 자비 그리고 겸손의 표현으로서만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