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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자비한 한국 떠나는 예멘인

Author
kislam0
Date
2018-08-27 09:10
Views
197

무자비한 한국 떠나는 예멘인


 





[한겨레21] 제주도 예멘 난민 40%만 스스로 생계 해결…
나머지는 ‘없는 사람’ 돼가




예멘 난민 히샴이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휴대전화 번역 응용프로그램으로 만든 한글 문장 “나는 직업을 찾고 있다”을 보여주고 있다. “나는 직업을 찾고 있다.”

예멘 난민 히샴이 8월8일 오후 제주도 서귀포시의 한 건설 현장에 들어가 한창 작업 중인 사람들에게 자신의 휴대전화에 적힌 한글 문장을 보여줬다.

문 공사를 하던 원아무개씨는 불쑥 공사 현장에 들어온 낯선 청년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히샴이 손짓·발짓을 섞어가며 “돈은 적게 줘도 좋으니 꼭 일을 하고 싶다”고 했지만 원씨는 “일하는 중이니 나가달라”고 했다. 맥이 풀린 표정으로 히샴이 돌아나가려 하자 원씨는 히샴을 다시 불러세웠다.

히샴은 “일당 5만~6만원만 줘도 일할 수 있다. 시켜만 달라”고 했다. 원씨의 놀란 얼굴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바뀌었다. 그는 끝내 난색을 표했다. “우리는 창호공사 업체인데 문과 창문의 종류가 다양해서 일할 때 의사소통이 중요하다. ‘드라이버, 망치, 전선을 갖다달라’고 해도 말을 알아듣지 못하면 건설 현장에서 어떻게 같이 일할 수 있겠나.”

폭염 속 일자리 찾아 헤매는 히샴

<한겨레21>이 히샴을 동행 취재한 이날, 제주도의 낮 최고기온이 30도를 훌쩍 넘었다. 히샴은 휴대전화 번역 응용프로그램을 이용해 만든 한 줄 문장을 잡고 하루 종일 중문 일대를 헤집고 다녔다. 그의 옷은 금세 땀으로 흠뻑 젖었다.

번역기로 거칠게 옮긴 언어는 발화자의 의도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할 때가 있는데 히샴의 문장이 그랬다. 히샴의 한글 문장은 ‘반말’이었으나 마음가짐만큼은 절박했다. 읍소에 가까웠다. 공사 중인 현장, 문 열린 식당 등이 보이면 일단 들어가 휴대전화 문장을 보여줬다. 제주도민들은 처음엔 놀란 표정을 짓다가 히샴이 온몸으로 일하고 싶다고 표현하면 난처한 얼굴로 히샴을 돌려세웠다.

트럭에 짐을 싣던 한 중년 남성이 안타까운 듯 히샴에게 말했다. “상황이 딱한 건 알겠지만 어쩔 수 없다. 지금 제주도에는 정기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10월 말 귤 수확 시기에 접어들 때 연락하면 일거리를 주겠다.”

히샴이 일자리를 찾아헤맨 지 꼭 2주째 되는 날이었다. 히샴은 기록적인 폭염을 뚫고 날마다 아침 8시부터 해 질 녘까지 서귀포 시내를 샅샅이 뒤졌지만, 끝내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 “예멘에 노부모와 아내를 남겨두고 이곳까지 왔는데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말도 통하지 않고 너무 힘들다.” 히샴은 울먹였다.

히샴은 예멘 남서쪽 도시 이브에서 후티 반군의 징병을 피해 한국에 왔다. 6월14일 제주 출입국·외국인청(이하 출입국청)의 주선으로 한림읍 인근 어촌에 취업했다. 2주 정도 그물 고치기, 배 청소, 생선 상자 나르기 등을 했다. 6월 말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갈 예정이었는데 하루 전날 사고가 터졌다. 이웃집 배가 부산항에 하루 정박했다가 예멘 난민이 선원들 몰래 도망친 것이다. 선원들은 수소문 끝에 도망친 난민을 찾아 제주도로 돌아왔지만, 히샴을 고용한 선주는 “일을 같이 못하겠다”며 일방적으로 히샴을 내쳤다.

어쩔 수 없이 제주 시내로 돌아온 히샴은 예멘 난민을 위해 마련된 공동 숙소에 머무르며 일자리를 찾았다. 건설 일용직, 식당 청소 등 닥치는 대로 문을 두드렸지만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 그는 서귀포로 왔지만 사정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예멘에서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고, 후티 반군이 나를 전쟁에 내몰려고 해 한국까지 왔지만 여전히 아무것도 못하고 있다. 아무도 받아주지 않는 나를 받아준 한국에 감사하지만 꼭 일은 하고 싶다.”

제주도에 체류 중인 예멘 난민들의 제주살이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정부에서 이들이 섬을 벗어나지 못하게 제한하는 대신 난민 심사 기간에도 일할 수 있도록 허락하고 일자리를 주선했지만, 그들의 절반 정도가 일을 그만둔 것으로 파악됐다. 대부분 쫓겨나거나 열악한 노동환경을 견디지 못해 일을 그만뒀다. 설상가상으로 예멘 난민을 바라보는 국내 여론이 나빠지자 크게 상심해 한국을 떠나는 난민도 속출하고 있다.

폭행당한 카말, 바다로 던져진 아흐마드



2015년 예멘 남서쪽 도시 이브에서 후티 반군과의 총격전에서 다친 아흐마드의 손. 그의 손에는 아직 총알 파편이 남아 있어 치료가 필요한 상황이다 “일로 와. ××놈아. 빨리 해.”

한국말이 익숙지 않은 예멘 난민 카말이지만 이 세 문장만큼은 익숙하게 말했다. 그가 어촌에서 일하는 동안 한국인 노동자들로부터 무수히 들은 말이다. 카말 역시 히샴처럼 지난 6월 법무부의 소개로 한림읍 어촌에 취업했다. 주로 고기잡이 그물을 수선하고 배 수리, 페인트칠을 했다. 선주에게 각종 장비 사용법을 배우며 적응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동료 노동자들의 괴롭힘은 견디기 힘들었다. 카말과 함께 간 예멘 난민 1명, 한국인 노동자 3명 총 5명이 숙소를 함께 썼는데 한국인 노동자들이 밤마다 술에 취해 예멘 난민을 괴롭혔다. 자다가 조금만 뒤척여도 욕하며 화를 냈고, 어떤 날엔 잠이 든 예멘 난민을 발로 차기도 했다. 예멘 난민들은 폭행을 당하고도 선주와 말이 통하지 않아 괴롭힘을 당한다는 사실을 말할 수 없었다. 괴로웠다.

8월6일 오전 4시, 또 한국인 노동자들이 술에 취해 발로 차고 괴롭히자 카말은 그곳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한번 바다에 나가면 며칠씩 배에서 생활하는 게 힘들지만 생계를 유지하고 적응하려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멀미를 하지 않아서 운이 좋다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한국 선원들의 괴롭힘은 끝내 참지 못했다. 너무 억울해서 가방도 챙기지 않고 나왔는데 앞으로 뭘 해야 할지 막막하다.”

배를 탔다가 총상이 악화돼 통증을 호소한다고 바다에 던져진 예멘 난민 아흐마드도 있다.

아흐마드는 6월 초 돈이 떨어져 제주 시내 한 공원에서 노숙했던 예멘 난민 무리 중 한 명이다. 그는 2015년 예멘 이브에서 후티 반군에 끌려갔다가 명령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사형당한 사촌의 복수를 하기 위해 총을 들었다. 후티 반군 두 명에게 총상을 입혔지만 자신도 왼쪽 옆구리와 오른손을 다쳤다.

수술 자국이 아물지 않았고, 총알 파편을 다 제거하지 못한 오른손은 주먹이 제대로 쥐어지지 않는다. 아흐마드가 어선을 타고 바다로 일하러 나갔지만 손이 붓고 통증이 극심해 돌아가고 싶다고 하자, 선원들이 생선 상자를 던지고 수차례 머리를 때린 뒤 구명조끼를 입혀 그를 망망대해에 던져버렸다. 그는 100m를 헤엄쳐 다른 배를 타고 섬으로 돌아왔다. 아흐마드는 “폭행을 당하고 바다에 던져지는 순간 한국이 싫어졌다. 어촌으로 간 예멘 난민 대부분이 열악한 환경에 놓였는데 정부에서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돈을 원해서 한국에 온 건 아니지만 일해야 먹고살 수 있지 않나. 요리를 곧잘 했기에 식당 쪽에 취업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이처럼 예멘 난민들이 제주살이에 애먹고 있지만, 제주도민들도 난색을 표한다. 수산업에서 일하는 한 제주도민이 말했다. “정부에서 일단 일자리를 주라고 해서 예멘 난민을 데려갔는데, 말도 통하지 않고 일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라 난감하다. 일을 못하는데 같은 임금을 주니까 다른 노동자들이 반발하는 문제도 있다.”

언어·숙련도 문제로 절반은 ‘포기’



한국 정부가 예멘 난민들에게 생계지원금을 줄 수 없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제주 출입국청이 파악한 내용을 보면 현재 일하면서 스스로 생계를 해결하는 예멘 난민은 190명 남짓이다. 처음 출입국청은 예멘 난민 380여 명을 고용주들과 연결해줬지만, 260명만이 계약서를 쓰고 정식으로 일을 시작했다. 이후 적응에 실패한 70여 명이 일을 그만두고 제주 시내로 돌아왔다. 처음 정부가 주선한 수에서 절반이 일을 그만뒀다. 현재 제주도에 있는 예멘 난민이 460명인 것을 고려하면 40%만이 스스로 생계를 해결하는 것이다.

제주도에 들어온 예멘 난민 전원이 난민신청자가 받을 수 있는 생계비(한 달 43만2900원) 지원을 신청했지만, 가족 단위로 온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지원받지 못했다. 일하지 않는 예멘 난민들의 생계가 막막한 이유다.

이들의 삶을 유지하는 일은 오롯이 시민사회단체와 종교단체 등 지역사회의 몫으로 떠넘겨졌다. 지역사회는 모금액과 지원금 등을 총동원해 예멘 난민의 삶을 지탱하고 있다. 7월29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주한 교황대사 앨프리드 슈에레브 대주교를 통해 기부한 1만유로(약 1280만원)도 여기에 포함된다. 현재 알려진 제주 시내 예멘 난민 숙소는 크게 4곳인데, 이곳에 있는 예멘 난민은 100명이 넘는다.

하지만 이들의 삶은 여전히 불안정하다. 무더운 날씨에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예멘 난민들은 숙소에서 ‘없는 사람’처럼 지냈다. 정오가 돼도 활동하지 않고 잠자는 이가 대부분이었다. 한국에서 예멘 난민에 대한 여론이 악화됐다는 것을 깨닫고 위축된 이들은 낮에 숙소 밖으로 나가는 것을 꺼렸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공동 숙소에서 지내는 한 예멘인이 상황을 전했다. “최근 숙소에서 술 마시는 이가 늘었다. 20% 정도는 술을 마시는 것 같다. 난민 면접 결과 발표일이 다가오고 있어 많이들 예민하다.”

전쟁터보다 살기 힘든 한국

절망적인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한국을 떠나는 예멘 난민도 속출하고 있다. 전쟁을 피해 한국까지 어렵게 와 난민 신청을 하고도 한국을 떠날 결심을 한 이들의 목소리에는 체념이 섞였다.

“나는 돌아가려 한다. 한국을 떠나겠다. 아무런 미련이 없다. 한국 사회는 인종차별적인 태도로 나에게 모멸감을 줬다. 더 이상 있고 싶지 않다.” 한 예멘 난민이 3주 전, 제주도에 있는 예멘 난민들의 페이스북에 남긴 글이다. 사우디아라비아로 간 것으로 알려진 게시글 작성자에게 인터뷰를 위해 연락을 해봤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예멘 난민 노하 아메드는 지난 5월 초 남동생과 함께 제주도에 들어와 난민신청서를 냈으나, 아무런 지원도 받지 못한 채 5월 말 다시 말레이시아로 돌아갔다. 그는 메신저 인터뷰에서 한국 정부에 대한 실망감을 토로했다. “제주도를 벗어나면 도와줄 친구가 있었지만, 한국 정부가 일방적으로 제주도를 나갈 수 없도록 해 너무 실망스러웠다. 제주도는 관광지라 숙식비가 너무 비싸 도저히 난민 심사까지 기다릴 수 없었다. 말레이시아는 예멘 난민에 대한 인식이 나쁘고 위험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한국보다 나았다. 남아 있는 예멘 난민들이라도 한국 정부가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줬으면 좋겠다.”

예멘 난민에게 숙소를 제공하는 한 제주도민은 “우리 숙소에 예멘 난민이 묵은 뒤로 집 문에 누군가 돌을 던지는 일이 있었다. 국내 여론이 나빠지고 오해에 상처받은 한 친구는 마음의 상처를 안고 말레이시아로 돌아갔다”고 했다.

고향집이 폭격당해 황망해하며 돌아간 난민도 있다. 모하마드는 5월2일 한국에 들어와 난민 신청을 했지만 예멘 이브의 집에 사우디아라비아 연합군의 미사일이 떨어져 부모가 다쳤다는 소식을 들었다. 외아들인 모하마드는 돌볼 사람이 없는 부모를 보살피기 위해 목숨의 위협을 무릅쓰고 말레이시아와 수단, 그리고 아덴을 거쳐 예멘으로 돌아갔다. 그와 함께 한국에 들어온 친구들은 “모하마드가 예멘에 간 뒤 연락이 닿지 않는다”고 입을 모았다.

제주 출입국청에 확인한 결과 난민 신청을 한 예멘 난민 중 3명이 난민 신청을 철회하고 한국을 떠났다. 난민 신청을 한 상태로 떠난 19명은 난민 심사 기간에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지만, 이들 중 일부는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

“정부가 예멘 난민에게 취업 허가를 일찍 내줘서 마치 도와준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본질은 반대 여론이 두려워 난민신청자에게 생계 지원을 하지 않는 대신, 우리가 정한 곳 안에서 알아서 먹고살라고 강제한 것에 불과하다. 이 상황에 절망한 난민신청자가 한국을 떠난다는 것은 한국이 난민협약국으로서 의무를 다하지 못한 것이다. 한국의 국제적 위상을 낮추는 일이다.” 국내 거주 난민들을 돕는 공익법센터 ‘어필’ 이일 변호사의 말이다.

제주=글·사진 이재호 기자 p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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