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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예언자 인간 무함마드(예언자 가정)

Author
kislam0
Date
2019-01-25 0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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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8

마지막 예언자 인간 무함마드

 예언자 가정

 

1. 카디자(bint Khuwalild)

 

예언자 가정은 메디나로 이사하기 전까지 메카에 있었다. 가정을 살펴보면 첫 번째

아내로서 카디자가 있었다.  결혼할 당시 예언자의 나이는 스물다섯 그리고 그녀의

나이는 사십이었다.  그녀가 사망할 때까지 예언자는 다른 여성을 부인으로 맞아들

이지 않았다.  그녀에게서 낳은 자식들은 모두가 오래 살지 못했다.  여식들로는 자

이납, 루까이아, 움무쿨숨, 그리고 파티마가 있었다.

자이납은 메카 시절에 어머니의 조카벌이  되는 아부 알아스(ibn Al-Rabi)와 결혼하

였고 루까이아와 움무 쿨숨은 오스만(ibn Afan)에게 시집을 갔다.  언니가 사망하자

동생이  형부와 다시 결혼을 한 경우가 되었다.  파티마는 알리(ibn  Al-Talib)에게로

시집을 갔는데, 바드르 전투와 우흐드 전투 기간 사이에 결혼이 이루어졌다.  이 둘

사이에서 예언자의 손자 하산과 후세인  그리고 손녀로는 자이납과 움무 쿨숨이 있

었다.

이미 알려진 기정사실이지만 예언자에게만 예외적으로 그리고 여러가지 이유 때문

에 네명의 부인 이상이 합법적으로 허용되었다. 예언자가 결혼한 부인의 숫자는 열

세 명이었다. 그 중 아홉 부인은 예언자보다 오래 살았다. 두 부인은 예언자 생존시

사망하였는데,  카디자와 가난한 사람들의 어머니라고 불리웠던 자이납(bint Khuz

aima)이 그러했고 다른 두 부인하고는 신방에 들지를 않았다.

 

2. 사우다(bint Zama)

 

예언자로 택함을 받은지 10년째 되던 해 10월에 결혼한 두 번째 부인이다. 첫 부인

카디자가 사망한 후에 몇 달이 안되어 결혼이 성사되었다.  카디자가 미망인이었던

것처럼 사우다도  그녀 아버지 조카벌 되는 사크란과  결혼한 적이 있었다.  이슬람

력 54년 10월에 메디나에서 세상을 떠났다.

 

3. 아이샤(bint Abi Bakr)

 

예언자로 택함을 받은지 11년째 되던 해에  결혼한 세 번재 부인으로 사우다와 결

혼한 후 일년이 지나서 결혼을하였다. 그 후 2년 5개월이 지나서 메디나로 도읍을

옮겼다.

당시 그녀의 나이는 여섯 살이었다. 단지 결혼식만 올렸을 뿐 예언자가 그녀와 신

방생활에 들어간 것은 메디나로 도읍을 옮긴 후 7개월 때 되던 10월부터 였다. 그

당시의 나이는 아홉이었다.  예언자가 결혼한 열세 명의 부인 중에서 아이샤가 유

일한 처녀 결혼이었으며 예언자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았던 아내이자 이슬람법에

가장 능통했던 부인이었다.  여성들에게 이혼에 관하여 가르치는 등  여성들의 개

화에도 앞장섰다.  그녀는 이슬람력 57년 9월 17일 사망하여 메디나의 바끼아 공

동묘지에 안장되었다. 그녀가 사망한 해를 58년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4. 하프사(bint ibn Al-Khattab)

 

그녀는 오마르(ibn ibn Al-Khattab)의 딸로  그녀의 남편 쿠나이스가 바드르 전투

와 우흐드 전투 그 사이에 사망하고 혼자 살아가는 미망인었다.  그녀와의 결혼은

메디나로 도읍을  옯긴지 3년이 되던 해 8월에 이루어졌다.  그녀의 나이 60세 되

는 해 이슬람력 45년 8월에 메디나에 있는 바끼아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5. 자이납 (bint Khuzaimah)

 

그녀는 바니 힐란(ibn Amir ibn Saosaoa) 가문 출신으로 가난한 사람들의 어머니

란 병명을 갖고 있었다.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는 친절을 베푸는데 모범이 되었다

는데서 비롯된 말이다.  그녀는 우흐드 전투에서  순교한 압둘라(ibn Jahsh)의 아

내였다.  전쟁 미망인으로 예언자와는  메디나로 도읍을 옮긴 후 4년째 되던 해에

결혼이 성사되었다.  그녀는 결혼한지 2-3개월이 채  지나기도 전에  사망하였다.

그때가 이슬람력 4년 4월이었다. 예언자는 그녀를 위해 기도하였다고 전한다. 그

녀의 시구도 메디나에 있는 바끼야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6. 움므 쌀라마 힌드(bint Abi Umaiyah)

 

그녀는 이슬람력 4년 6월에  사망한 아부 쌀라마의 아내였다.  자녀들이 딸린 미

망인이었다.  남편이 사망한 그 해 10월 마지막 날 밤에 예언자와 결혼이 이루어

졌다. 이슬람법에 정통했으며 이슬람력 59년에 사망하여  메디나에 있는 바끼아

공동묘지에 묻혔다.

 

7. 자이납(bint Jahsh ibn Riyab)

 

그녀는 바니 아사드(ibn Khuzaimah) 가문 출신이며 예언자의  외숙모  딸이기도

하다. 그녀의 남편은 자이드(ibn Haritha)였는데 당시 그는 예언자의 아들로 간주

될 정도였다.  자이드가 어떤일로 그녀와 이혼한 후 법정기간이 지나서 예언자에

게 다음 내용의 꾸란이 계시되었다.

 

"자이드가 아내와 이혼했을 때 알라 하나님은 필요한 절차와 함께 그녀와 결혼시

켰더라." (33:37)

 

8. 주와이리아(bint Al-Harith)

 

알하리스는 바니 알무스탈리끄 가문의 어른이며 주와이리아 여인은 이 가문으로

부터 무슬림측이 받은 전리품이었다.  그녀는 싸비트의 몫으로 할당되어 있었다.

싸비트는 어느 때에 그녀를 해방시켜 주겠다는 서약을 했다. 예언자는 그 약속을

지키도록 하여 이슬람력 6년 8월에 결혼하였다. 이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무슬림

측은 바니 알무스탈리끄 가문에서 포로로 잡은 100여명을 해방시켰다. 주와이리

아 부인은 주민들에게  축복이자 가장 훌륭한 여인이었다.  이슬람력 56년 3월에

65세로 세상을 떠났다. 55년에 사망했다는 견해도 있다.

 

9. 움므 하비바

 

그녀의 이름은 라믈라로 아부 수피안의 딸이었다. 그녀의 남편은 우바이둘라였

다. 그녀는 남편을 따라서 에티오피아로 이주했다가 남편이 이슬람을 배반하고

기독교인이 되고서 그녀에게도 개종을 강요하자  남편의 요구를 거절하고 자신

의 종교적 신념을 굳혔다.  남편이 그곳에서 사망하자  예언자는 아므르를 에티

오피아의 왕 네구스에게 보내 예언자의 서한을 전달하도록 하였다. 이슬람력 7

년 1월에 있었던 일로 예언자는 이 편지에서 그녀와의 결혼을 요구했고 네구스

왕은 예언자의 요구를 받아들인 후 샤르하빌을 동행시켜  그녀를 예언자에게로

돌려보냈다.  이슬람력 42년에 사망했다는 설과  44년 또는 50년에  사망했다는

의견도 있다.

 

 

10. 사피아(bint Huyai ibn Akhtab)

 

그녀는 카이바르 전투에서 유대인들로부터 데려온 전리품이었다. 예언자는 그

녀를 자신의 몫으로 선택한 후 이슬람을 권유하였다.  그녀가 이슬람을 수락하

자 예언자는 그녀를 해방시키고 카이바르가 정복된 후 이슬람력 7년에 그녀와

결혼하였다.  그녀는 이슬람력 50년에 생을 마쳤다는 설과 52년이라는 견해도

있다. 그녀의 시구는 메디나 바끼아 공동묘지에 매장되었다.

 

11. 마이무나(bint Al-Harith)

 

알하리사의 딸이자 움므 알파들 루바바(bint Al-Harith)의 자매였다. 이슬람력 7

년 11월 그녀가 소순례를 끝냈을 때 예언자는 그녀와 결혼하였다. 이슬람력 61

년 메카의 사리프에서 사망하여 그곳에 매장되었는데 오늘까지 그녀의 무덤이

보전되고 있다고 전한다.  63년에 죽었다는 의견도 있다.  이들 열한 명의 부인

들 중에서 두 명의 부인 카디자와 가난한  사람들의 어머니로 알려진 자이납은

예언자 생존시에 사망하였고 다른 아홉 명의 부인은 예언자보다 오래 살았다.

 

두 명의 부인은 예언자와 결혼만 했지 동침하지 않았던 부인들로 한 명은 바니

킬랍 출신이고 다른 한 명은 킨다 부족 출신이다. 후자는 알자우니아라는 이름

으로 알려져 있다.

 

이 열한 명의 부인 외에도 두 명의 부인이 더 있었는데 한 명은 이집트 총독 알

무까우끼스가 예언자에게 선물로 보내온 마리아라고 하는 이집트 콥트 기독교

여인이었다. 예언자는 이 부인에게서 이브라힘이라는 아들을 두었는데 이슬람

력 10년 28일 어린 나이로 메디나에서 죽었다.  다른 한 부인은  라이하나로 바

니 꾸라이자 부족으로부터  전쟁 포로로 데려온 예언자의 몸 종이었다고  주장

하는 사람도 있다.  예언자는 그녀를 해방시킨 후 그녀와 결혼하였다는 의견도

있는데 이븐 까임은  전자에 더 많은 무게를 두고 있다.  아부 우바이다는 열세

명의 부인 외에도  전쟁포로 출신의 자밀라라는  여인과 자이납이 선물한 여인

을 예언자의 부인으로 간주하고 있다.

 

 

예언자의 생애에 관하여 깊이  연구한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예언자가 그의

생애 마지막 단계에 이르러 여러부인들을 맞아들였다는 사실을 발견할 것이다.

그의 젊음이 넘쳐 흐르던 25세에 15세 연상의 나이많은 미망인과 결혼하여 30

년 가까이 살면서  그의 젊은 청춘을 한 여인과 보냈다고 하는 것은  그가 성적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여러 부인을 두었다는 주장을 뒤엎고도  남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여러명의 부인을 둔 동기와 목적이 있을 것이다. 예언자는 결혼

을 통하여 아부 바크르이 딸 아이샤와 결혼하고  오마르의 딸 하프사를 부인으

로 맞아들였고 자신의 두 딸 루까이아와  움므 쿨숨을 오스만에게  시집보냈으

며 파티마를 알리에게 시집보냄으로써 이슬람을 위해 자신들을 희생시키고 이

슬람 전파를 위해 큰 업적들을  남긴 4명의 인물과 그들 가문과의 유대를 튼튼

히 하려 했던 것이다.

 

이 밖에도 사돈 양가의 관계를 중요시하고 존경하는 아랍 전통이 있었다. 그러

한 이유로 사위나 며느리는 양 가문의 유대를 더욱 강화해 주는 수단이 되기도

했다. 그 결과 동맹관계 또는 사돈관계에 있는 가문이 다른 가문으로부터 공격

을 받는다거나 수모를 당할 경우  그것은 양 가문에 있을 수 없는 수치요  불명

예로 가문의 명예에 치명타로 간주되었다.

 

예언자는 이슬람을 적대시하는 아랍 부족의 여인들과 결혼을 통하여 그들과의

반목과 증오를 청산하려고 했다.  움무 쌀라마는 아부 자흘과 칼리드(ibn Al-W

alid)가 속해 있는 부족의 바니 마크줌 가문 출신이었다. 예언자가 그녀와 결혼

함으로써 사돈 관계가 성립되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도 충성스

러운 무슬림이 되는 계기가 되었다. 움무 하비바가 예언자와 결혼하자 예언자

를 사위로 맞은  아부 수피안은 그 이후로  이슬람에 대한 그 어떤 적대행위도

하지 않았다.  주와이리아 그리고 사피아가  예언자의 부인이 되면서 그 두 여

인이 속해 있던 부족도  이슬람에 대한 적대행위, 도발과  공격행위 등 일체의

반이슬람적 행위를 중단하였다.  그와 더불어 주와이리아는  예언자의 부인이

되면서 자신이 속해 있는 가문과 부족에게 많은 혜택과 도움을 안겨다 주었다.

그녀가 예언자와 결혼하던 날  예언자의 교우들은 전쟁포로로  잡혀있던 그녀

소속의 부족 출신 100 가족을 석방하여 주었다. 석방된 가족들은 이것이 예언

자와 친인척이 된 덕분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것들이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얼마나 큰 좋은 인상을 심어 주었는지 재삼 언급할 필요가 없다.

 

예언자는 알라 하나님의 계시에 따라 무지몽매했던 아랍인들의 마음을 순화시

키고 예절교육을 시키는 등 그들을 위한 교육에도 역점을 두었다. 문명의 필요

성에 부응하고 이슬람국가 건설에 동참과 단결을 촉구하는 내용이었다. 이슬람

사회건설의 한 핵심적인 요소가 남녀간의 공동 및 합동생활을 차단하는 일이라

고 생각했다.  남성 못지않게 여성이 이슬람사회 건설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

고 있어 여성만을 위한 강도높은 교육이 필요한데도 남녀 공동생활에서는 여성

만을 위한 교육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예언자는 연령별, 능력별

로 여성들을 선발하여 체계적으로 이슬람교육을 시킨 다음 그들로 하여금 유목

민 여성과 도시 여성들에 대한 교육을 담당하도록 하였다.  학교의 모체라고 간

주되는 여성교육이 성공할 때 이슬람교육의 성과를 기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초기 이슬람사회의 여성교육에는 신앙인들의 대모라고 불리우는 예언자의 부인

들이 예언자의 가르침을 사람들에게 전하면서 많은 기여를 하였다.  예언자로부

터 직접 이슬람 교육과 가르침을 받은 부인들,  그 중에서도 예언자보다 오래 살

았던 부인들이 무슬림들에게 예언자의 말씀과 행위 그리고 어떤 사건에 대한 판

단과 견해 등을 전달하는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하였던 것이다.  그 예로서 부인

아이샤는 예언자의 말씀과 행위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부친쪽으로 조카뻘이 되는 자이납(bint Jahsh)과의 결혼은 이슬람 이전 시대의

전통에 깊이 뿌리박혀 있는  관습을 뿌리뽑는 특별한 사건이었다.  이슬람 이전

의 관습에서  아랍인들은 양자로 데려온  아들과 딸을 친부모의  성을 박탈하고

본인의 성을 따르게 하였다. 그 뿌리깊은 전통을 바꾼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

었다. 그 전통은 기본적인 이슬람의 규범과 모순이 되었다. 특히 이슬람의 결혼

과 이혼, 유산의 상속문제 등에서 더욱 그랬다. 그 전통은 많은 부패와 메춘행위

의 범람을 야기시켰다. 이슬람이 이러한 전통과 관습의 변화를요구하고 개선 또

는 제거하려 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알라 하나님은 예언자로 하여금 그러한 전통을 폐기하도록 하였다. 그 목적을 달

성하기 위해 알라 하나님은 그를 자이납과 결혼시켰다.  그녀는 자히쉬의 딸이자

예언자의 조카이기도 했으며 자이드의 전처였다.  이슬람 이전의  관습에서는 예

언자가 양자로 데려온  자이드를 무함마드의 아들이라고 불렀다.  자이드와 결혼

한 자이납은 남편을 못살게 하였고 그로 인하여 자이드는 이혼을 결심하였다. 이

때가 바로  아랍 부족들이 연합하여  예언자에게 적대행위를 하고 있을 당시였다.

예언자는  위선자들과 우상숭배자들 그리고 유대인들이 아들의 아내와 결혼했다

는 소문을 퍼뜨려 마음이 약한 일부 무슬림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지나 않

을까 염려하였다.

 

이러힌 이유로 예언자는 자이드의 이혼을 말렸다.  그러한 사소한 일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서였다.  의심할 여지없이 망설임 그리고 부분적인 사소한 일이 예언자

의 성품과는 전혀 맞지 않았다. 알라 하나님은 비난이 두려워 망설이며 주저하는

예언자를 오히려 질책하였다.

 

"알라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었던 자이드에게  이혼하지 말라고 충고한 것을 상

기하라. 그때 그대는 알라 하나님께서 밝히셨던 것을 그대 마음속에 숨기었고 사

람들을 두려워하였으나 그대가 두려워 할 것은 알라 하나님이이었노라...(33:37)

 

노예 출신으로 남편을 바라보는 아내를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었던 자이드는 결국

아내와 이혼하였다. 이혼녀가 재혼하기 위해서 기다려야 할 법정기간이 경과하자

예언자는 자이납과 결혼을 한 것이다.  알라 하나님은 이미 예언자에게 이 결혼을

명령하였기 때문에 그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자이드가 그녀와의 결혼생활을 끝냈을 때 알라 하나님은 필요한 절차와 함께 그

녀를 그대의 아내로 두었으니 이는 양자가 아냉와 이혼했을 때 믿는 사람들이 그

이혼녀와 결혼함에 어려움이 없도록 함이라." (33:37)

 

이로서 이슬람 이전의 양자와 관련된 일부 전통이 파기되었다.

 

"양자를 부를 때는 그를 낳아준 부친의 이름으로 부르라. 그것이 알라 하나님이 보

시기에 정의로운 것이라." (33:5)

 

"무함마드는 어느 한 사람의 아버지가 아니며 알라 하나님의 사도이자 마지막 예언

자라.(33:4))

 

뿌리깊은 여러 가지 비이슬람 전통과 관습이  말과 교훈으로만 그 뿌리가 근정되거

나 폐기 또는 개선될리 만무했다. 행동으로 보여주면서 강력하게 대처할 수밖에 없

었다.

 

알후데비아 소순례(Umrah)에서  무슬림들이 보여준 행동과 처신을  통해서 대응방

안이 잘 나타났다. 거기에 우르와는 예언자의 입에서 가래가 나오자 무슬림들이 서

로 깨끗이 하려는 모습과 씻을 물을 서로먼저 가져오려고 하는 경쟁을 넘어서 서로

싸우기라도 하는 광경을 목격했다.  예언자 앞에서 생명을 바치겠다고 충성을 맹세

한 사람들과  어떠한 일이 있어도 전선에서  도주하지 않겠다고 맹세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들 중에는  오마르와 아부 바크르 같은 저명한 참모가 있었다.  이들은 예언자와

이슬람의 명분을 위해 그들의 일생을 헌신한 인물들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알후

데비아 평화조약의 인준이 있은 후 제단에 바칠 가축을 도살하라는 예언자의 명령

이 집행되지 아니함으로써  예언자를 당황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불안하고 초초하

게 만들었다.  이때 부인 움므 쌀라마가 예언자에게  입으로 말하지 말고 행동으로

모범을 보이면 추종자들이 예언자의 선례를 그대로 따를 것이라고 충고했다. 아내

의 조언대로 그렇게 하자  추종자들이 경쟁이나 하듯 서둘러 그 모범을 따랐다. 이

사건이 보여주듯이 모범적인 실천이 웅변의 소리보다 힘이 더 크다는 것을 입증시

켰다. 이로써 뿌리깊은 이슬람 이전의 전통과 관습이 근절되어가기 시작했다.

 

위선자들은 예언자의 결혼에 관하여 허다한 거짓 소문과 풍문을 만들어냈다. 다섯

번째로 맞이하는 자이납과의 결혼에 관한 풍문과 소문이 믿음이 약한 무슬림들에

게는 나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었다.  꾸란에서는 네 명의 부인까지만 허용되고

있을뿐만 아니라 이슬람 이전의 관습에 따라 양자로 데려온 자이드가 무함마드의

친자식으로 간주되었던 그 시절에 자식과 며느리를 이혼시킨 뒤에 자식의 아내와

결혼했다는 사건은  당시 아랍인들의 시각에서는 가장 사악한 죄악으로 인식되었

기 때문이다.

 

꾸란 33장(Surat Al-Ahzab)이 계시되면서  다음의 두 가지 사안이 분명하게 정리

되었다.  이슬람은 양자 제도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과  특별한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예언자에게만 네 명 이상의 부인이 하용되었다는 점이다.

 

예언자는 부인들 모두를 초인적으로 사랑하고 보살핌으로써 모든 부인들 모든 신

앙인들의 어머니라는 최고의 명예와 영광을 누리고 있었다. 부인으로서 가정사를

충실히 수행하고 겸양과 인내의 모범이 되어 아내로서의 기쁨과 만족을 추구함으

로써 가장 훌륭한 여성상으로 존경과 추앙을 받았다.

 

비록 예언자의 가정생활이 순탄한 날이 별로 없을 정도였지만 어느 아내도 불평을

하거나 불만을 털어놓지 않았다. 예언자의 생활에 관하여 아나스는 이렇게 언급하

고 있다. "내가 아는 바로는 예언자가 그의 일생동안 단 한 번도 평평한 얇은 빵 한

조각을 맛본 적이 없었고  그의 두 눈으로 구운 양고기를 본 적이 없었다."  아이샤

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두 달이 지나가는 동안 우리는 세차례 초승달을 보았지만

그동안 요리할 양식이 없어 불을 지피지 못했습니다.  이 사정을 알고 있는 우르와

가 무엇으로 연명을 하며 몸을 지탱하느냐고 묻기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종려나

무 열매와 물로 연명을 합니다." 예언자의 식생활이 이처럼 어려웠다고 전한다.

 

이렇게 궁핍한 생활속에서도  예언자의 부인들은 불평을 하거나 바가지를 긁는 일

이 없었다. 물론 한번은 불만을 털어놓은 적이 있었다. 인간의 본능에서 비롯된 것

이었다. 그러한 불만의 표출이 그렇게 심각한 것이 아니어서  이에 관한 규범을 제

정할 필요성은 없었다.  알라 하나님은 계시를 통하여 두 가지 중에서 하나를 선택

할 기회를 부인들에게 제시하였다.

 

"예언자여, 그대 부인들에게 일러 가로되  그녀들이 현세의 물질적 삶과 허식을 원

한다면  이리로 오라  세상을 즐기도록 이혼을 하여 줄 것이니 이것은 아무런 해악

이 없는 이혼이라.  그러나 너희가 알라  하나님과 그분의 사도와 내세를 원한다면

실로 알라  하나님께서는 너희 중에 선을 행하는 자들을 위해  훌륭한 보상을 준비

하셨노라." (33:28-29)

 

이처럼 세상을 즐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지만 예언자의 부인들은 현세의 풍요로

운 물질적 삶과 허식을 원하지 않고 내세의 복을 선택했다. 여성 본능에 의한 불만

의 표출이 있기는 하였지만 일반 여성의 경우처럼 불만족 표출로 가정불화가 일어

난 경우는 없었다. 가정불화가 될 뻔한 경우가 한 번 있었지만 알라 하나님의 충고

와 질책으로 그러한 사건이 재발이 차단되었다.

 

그대는 그대 부인들의 기쁨을 추구하고 있으며 알라 하나님은 관용과 자비로 충만

하시니라. 알라 하나님은 너희를 위하여 속죄를 명령하셨나니 알라 하나님이 너희

의 보호자라. 실로 그분은 아심과 지혜로 충만하시니라.  예언자께서 그분의 한 아

내에게 기밀을 이야기했을 때 그녀는 그것을 타인에게 알렸으니  알라 하나님께서

그로하여금 그것을 알도록 한 그가 일부는 확인하고 일부는 그것을 거절하고서 그

것에 대해 아내에 말했을 때 아내는 누가 이 사실을 알려주셨습니까? 라고 물으매

아시며 지켜 보시는 알라 하나님이 나에게 알려주었다라고 대답하였더라. 만일 너

희들이 알라 하나님께 회개한다면  너희에게 복이 될 것이라. 또한 너희 마음도 이

미 그렇게 기울었노라.  너희가 그분께 거역한다 하여도  알라 하나님과  가브리엘

천사와 믿음으로  의로운 자들이 그분을 도울 것이며  천사들도 그러하리라.  그가

너희와 결혼한다 하여도  주님께서는 너희보다 훌륭한 부인들로 너희 자리를 대체

하여 주시니 그녀들은 보다  순종하고 믿음에 충실하며 헌신하고 회개하며 겸손하

고 믿음을 위해 이주하며 단식하는 기혼의 여성이거나 미혼 여성들이라."(66:1-5)

 

일부다처제에 대한 토론은 필요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된다.  유럽인들의 부도덕한

성생활, 수난, 부정, 슬픔과 고통, 끔찍한 범죄, 그들이 개입된 재앙, 일부다처제를

무시함으로서 야기되는  성적범죄 등을 고려해 본다면  일부다처제의 합리성과 건

전성에 대한 설명이 필요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유럽인들의 타락된 성생

활이 일부다처제의 필요성을 정당화하면서 이성과 합리적 사고를 갖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교훈이 되었다.

 

 

번역 : 최영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