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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예언자 인간 무함마드(카이바르 원정) 2

Author
kislam0
Date
2018-06-25 08:55
Views
279

마지막 예언자 인간 무함마드

카이바르 원정(A.H. 7년 1월)



무슬림군대 카이바르 접경 도착

다음날 아침 햇살이 비추기 시작할 때 삽과 곡괭이를 들고 짐승들을 몰며 그들의

일터로 나가던 유대인들이 무슬림 병사들을 보자마자 놀라 어찌할 바를 모르며

고함을 질렀다. "무함마드가 군대를 이끌고 쳐들어 왔습니다!" 예언자가 입을 열

었다. "알라 하나님이 가장 위대합니다. 카이바르가 최후의 운명을 맞게 될 것입

니다. 우리가 시내 중심부 광장에 도착하는 순간이 경고를 받은 이곳 사람들에게

는 가장 큰 불행의 날이 될 것입니다."



예언자는 군부대의 본부 진지로 적합하다고 생각한 곳을 골랐다. 그러자 전투 경

험이 풍부하여 전략과 전술에 노련한 훕브(ibn Al-Mundhir)가 진지로 선정된 곳

이 알라 하나님의 계시에 의해 결정된 것이냐고 묻자 자신의 판단에 따라 선정하

였다고 예언자가 대답했다. 그러자 후바브가 이곳은 적의 성에서 무척 가까이 있

으며 그 성 안에 카이바르 지역의 전 병사들이 집결되어 있다고 했다. 저 성 안에

서 사방팔방으로 우리를 감시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저들이 쏘는 화살이 날아올

사정거리에 있기 때문에 안전한 곳이 될 수 없다고 말하면서 진지를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묻자 예언자는 그의 자문에 따랐다.



카이바르에 가까이 왔을 때 예언자는 행군을 멈추게 하고 알라 하나님께 기도를

올렸다. "일곱 개의 하늘과 그 안의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알라 하나님이여, 일곱

개의 대지와 그 안의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알라 하나님이여, 모든 악마들과 그

그들이 유혹하는 것을 주관하시는 알라 하나님이여, 카이바르의 좋은 것들과 그

곳의 훌륭한 주민들과 그곳에 매장되어 있는 좋은 것들을 저희에게 허용하여 주

소서. 그곳의 나쁜 것들과 나쁜 주민들과 그곳에 매장되어 있는 나쁜 것들로부터

보호하여 주소서." 기도를 마친 예언자는 알라 하나님의 이름으로 카이바를 향해

행군을 계속했다.



부대 깃발은 알라 하나님과 그분의 사도를 사랑하고 또 알라 하나님과 그분의 사

도가 사랑하는 무슬림에게 맡길 것이라고 예언자가 선언하자, 모든 무슬림 병사

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기수가 되는 영광을 갖고자 했다. 알리(ibn Abi Talib)가 어

디에 있느냐고 묻자 눈에 상처를 입어 고통스러워하고 있다고 대답하자 그를 데

려오도록 한 후 그에게 깃발을 맡겼다. 깃발을 받아든 알리가 카이바르의 주민들

이 이슬람을 수락할 때까지 싸우겠다고 다짐하자, 예언자가 그에게 이렇게 말했

다. "서두르지 말고 주민들에게 알라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의무를 간략하게 설

명하면서 이슬람으로 안내하시오. 당신이 보여 준 모범으로 한 사람만이라도 이

슬람을 받아들였다면 그것은 우리가 갖고 있는 가장 좋은 낙타를 갖는 것보다 더

큰 축복이 될 것이요."



카이바르는 두 지역으로 나누어져 있다. 앞에 있는 지역에는 나임의 성, 사읍의

성, 주바이르의 성, 우바이의 성 및 니자르의 성 다섯 개가 있었고 그 다은 지역

에는 알 까무스 성, 알와띠 성 및 쌀림 성 세 개가 있었다.



예언자는 소규모의 성부터 하나하나 공격해 갔다. 첫 번째 공격 대상은 나임 성

이었다. 만만치 않은 저들의 첫 번째 방어선이었기 때문이다. 성의 수장이 아므

르(ibn Al-Akwa)에게 결투를 제의해 왔다. 이 결투에 기꺼이 응하였던 아므르가

유대인에게 칼을 휘두르고 있을 때, 적이 내리친 칼에 중상을 입고 사망하였다.

예언자는 그가 내세에 가서 두 배의 보상을 받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뒤를 이어

알리(ibn Abi Talib) 마르합을 해치웠다. 그러자 마르합의 동생 야세르가 무슬림

병사들을 공격해 왔다. 주바이르가 그를 맞아서 즉석에서 때려 눕혔다. 이렇게

해서 확대된 전투는 며칠동안 지속되었다. 유대인들의 용기는 대단하였다. 노

련한 무슬림 병사들조차 두려워 할 정도였다. 그러나 아무리 저항해도 첫 번째

방어선을 지키기가 힘들다고 판단한 유대인들은 나임성을 중심으로 한 진지를

포기하고 싸읍의 성으로 후퇴하기 시작했다. 이리하여 나임성이 함락되었다.



후바브(ibn Al-Mundhir Al-Ansari)가 소대를 지휘하고 싸읍성을 공격하여 삼일

동안 포위한 후 점령하였다. 이곳에서 엄청난 전리품과 양곡을 얻었다. 이번의

승리는 예언자의 특별기도 덕분이었다고 한다. 이븐 이삭은 예언자의 기도 내

용을 이렇게 전하고 있다. 바누 이슬람이 예언자를 찾아와 최선을 다했지만 아

무 것도 얻은 것이 없다고 하자 이렇게 기도했다.



"알라 하나님이여, 당신은 그의 상황을 잘 알고 계십니다. 아무런 힘도 없으며,

제가 그에게 줄 것도 없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풍요로 가득찬 저 성을 그로

하여금 정복하게 하여 많은 전리품과 양식을 얻어 사람들을 배불리게 하도록

하여 주소서!" 이 기도에 응하여 알라께서 싸읍의 성을 점령하도록 했다고 한

다.



성 앞에서 벌어진 싸움은 치열했다. 그러나 무슬림 병사들에게는 격렬한 혈전

보다는 배고픈 기아상태가 더욱 힘이 들었다. 허기를 참다못한 병사들은 당나

귀를 도살하여 불을 피워 요리를 시작했다. 이 광경을 목격한 예언자는 고기를

버리고 요리하기 위해 사용된 모든 요리기구들을 물로 깨끗이 씻으라고 명령

하면서 가정에서 기른 당나귀 고기를 먹지 못하도록 금지하였다.



한편 유대인들은 나임과 싸읍 두 개의 성을 빼앗기고 주바이르 성으로 피신한

후 기마병이나 보병도 접근하기 어려울 정도로 방어벽능 구축했다. 예언자의

작전에 따라 삼일 동안 성을 포위하였으나 점령은 하지 못했다. 한 유대인의

첩자가 예언자를 찾아와 지하수 물을 길어가지 못하도록 차단하면 성안의 모

든 사람들이 더 이상 저항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예언자는 그 첩자의 말대

로 그렇게 했다. 참다못한 유대인들이 성 밖으로 나와 무슬림들과 치열한 혈

전을 치루었다. 이 싸움에서 10명의 유대인과 몇 명의 무슬림들이 피살되었으

나 결국 이 성도 무슬림들의 수중으로 들어왔다.



주바이르 성을 빼앗긴 유대인들은 아비성으로 이동하여 이번에는 성안에다 장

애물로 방어막을 만들었으나 삼일 동안 포위되어 있다가 빨간 리본을 머리에

맨 아부 두자나 삼마크(ibn Kharshah Al-Ansari)가 전쟁 영웅답게 소대를 인솔

하고 성 공격에 들어갔다. 그의 총명한 군사작전으로 아비성도 함락이 되었다.

살아남은 유대인들은 나자르성으로 피신하였다.



나자르성이 가장 튼튼하고 공격이 가장 어려운 요새지였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무슬림들의 공격이 불가능하리라고 믿고, 어린이들을 비롯하여 여성들을 그곳

에 두었다. 산꼭대기에 세워진 성이었기 때문에 공격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무

슬림들은 개미새끼 한마리도 빠져나가지 못할 정도로 성 주변을 포위하고 철저

한 봉쇄조치를 취했다. 그 결과 성안의 유대인들은 무슬림 병사들이 두려워 성

밖으로 빠져나올 엄두도 내지 못했다. 막다른 골목에 갇힌 저들은 최후의 발악

으로 공격해 오고 있는 무슬림 병사들을 향해 소나기 퍼붓듯 화살을 쏘아대고

돌을 던졌다.



상황을 판단한 예언자는 성벽의 일부분을 무너뜨리는 작전을 지시했다. 이 작전

의 성공으로 성벽에 구멍이 생기고 이 입구를 통해 성 중심부까지 공격해 들어

갈 수 있었다. 안심하다고 확신했던 유대인들은 성 내부에까지 공격해 들어오는

무슬림 병사들을 보고 놀란 나머지 여성과 아이들을 내버려둔 채 사방팔방으로

흩어져 도망치기에 정신이 없었다.



계속적인 군사작전의 성공으로 카이바르 지역의 전방에 있던 모든 성들이 무슬

림들의 수중에 들어왔다. 이제 유대인들이 피신할 곳이란 후방에 있는 조그마한

몇 개의 성 외에는 아무데도 없었다.





카이바르 후방지역



전방 지역 점령에 성공한 예언자는 부대를 카이바르의 후방 알카티바 지역으로

이동하여 그 지역 여러 성에 있는 유대인들을 14일 동안 포위한 후 출입을 봉쇄

하였다. 이번에도 성벽에 구멍을 내 그들을 공격하려 하자, 이번에는 재빨리 평

화협상을 제의해 왔다.



이슬람 전쟁사를 연구한 사학자들은 후방지역에 있는 세 곳의 성을 탈환하기 위

해 쌍방간의 격력한 충돌이 있었는가에 대하여 다소의 의견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븐 이삭은 알까무스 성이 무슬림 병력의 공격에 함락되었다고 주장하는 한편

알와끼디 사가는 세 곳의 성 모두가 평화협상을 통해서 무슬림 수중에 넘어왔다

고 주장한다. 알까무스 성은 정복된 후 그 성을 인수받기 위해 협상이 있었을 것

이며 두 개의 성은 전쟁을 치루지 않고 평화협상에 의해 넘어 온 것으로 보는 것

이 보편적 해석이다.





번역 : 최영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