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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은 영국인 부부를 올바른 길로 이끌었다.

Author
kislam0
Date
2018-02-28 08:39
Views
279

이슬람을 선택한 여성들

 이슬람은 영국인 부부를 올바른 길로 이끌었다.

 

소마이야 자매와 그녀의 남편인 라시드는 영국 잉글랜드의 머지사이드 출신으로

그들은 자신들의 삶에 엄청난 충격을 준 끔직한 개인적 비극을 겪은 후 1983년에

이슬람으로 개종했습니다. 새로 태어난 아기가 갑작스럽게 죽은 후 큰 고통과 슬

픔, 괴로움 및 개인적인 혼란의 시기를 겪으며  소마이야 자매는 운명 및 모든 삶

에 대한 미리 정해진 계획의 개념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을 때 안락하고 평화롭게

바뀌었습니다.  엄청난 어려움의 시기를 겪으며  이루어진 이 아름다운 깨달음은

그들 모두가 이슬람과 모든 인류를 위한 진실 된 메시지를 발견하는 길을 열었습

니다. - 편집자

 

저는 '소마이아 멕티어'입니다. 영국 잉글랜드의 머지사이드에 있는 우이랄 근처

의 월러시 출신으로 역시 같은 지역에서 태어난 라시드와 결혼했고 1983년 둘 다

무슬림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리버풀의 톡스테스에 있는 알라흐마 이슬람 성원에서 무슬림이 되었습니

다. 이전에 교회에서 결혼을 했었지만,  이 날 우리는 무슬림식  결혼을 올렸습니

다. 우리 두 사람은 모두 전직 교사입니다.

 

생각해보면 이슬람으로 가는 저의 여정은 매우 길고 복잡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

제는 제 인생을 통해서  이 여행을 조금씩  해나가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상항

과 시건들, 모든 것이 퍼즐 조각의 일부분들이며, 그 조각들은  천천히 움직여 신

앙 선언의 단어들을 형성했습니다. 제 믿음은 이슬람이며, 순결하고 새로 태어난

아기와 같으며 실제로 우리 모두 태어날 때 죄가 없습니다.  역시 그러했던 제 아

기 알렉산드리아가 촉매제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녀는 우리의 삶을 영원히 바꾸

어 놓았습니다. 그녀의 출생과 며칠뒤의 죽음은 그러한 탐색과 의문을 불러 일으

켰습니다. 그러므로 제 이야기는 그녀와 함께 시작됩니다.

 

알렉산드리아가 태어나기 전, 저는 감동적으로 정신적으로 죽은 상태로 영적인

면에서 사막, 황무지에 있었습니다.  많은 상황에서 신을 찾아다녔습니다. 제가

교육받았었던  천주교에서 하나님께로 가는 길을 찾아보았지만  불완전하고 부

족한 듯 보였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하나님께로 가는 길을 찾으려 노력해도 기

도할 것을 강요하는 다른 사람들, 어린 시절에 무시무시해 보였던 성인들과 종

교상들, 공허한 말과 약속들 의미없는 말들,  감정이 없으며 차가운 개신교, 어

린 시절의 종교적인 경험들을 포함하여  이들에게 방해받지 않는 길은 없는 듯

보였습니다.  항상 혼란스러웠고 하나님을 향한 명확한 길이 없어 보였습니다.

저는 관련되지는 않았지만 외부인으로서 신도들의 그 모든 행동을 지켜보았을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존재함과 인도하심을 느끼기 위해 노력했으나 불

가능했고, 제 마음과 생각은 결코 충족되지 않았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그러한 탐색을 접었습니다. 결과는 헛수고 같았고 제 딜레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사람도 없었으며   아무도 제게 조언하거나 안내해주지도

않았고, 아무도 제게 하나님께 가는 길을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의문점들이 끊임없이 직면해왔습니다. 성인들과 종교상들의 역할, 예

수의 어머니인 마리아의 역활,  그리고 가장 중요한 부분은 바로  삼위일체의

역할이었습니다.  저는 제 안에서 답을 찾을 수 없었고 그래서 올바른 방향으

로 저를 인도해줄지 모르는 다른 사람들을 찾기 위해 시선을 돌렸습니다.

 

교회에 앉아, 기도서에 나온 글들을 읽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말하는 아무

런 감정도 없는 말들을 듣기도 하고, 의미없이 기도를 드리기도 했습니다. 마

치 하나님은 제게서 수십 번의 생애를 더한 시간만큼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

았습니다.  허공에 호소했던 말들은  심지어 말을 다하기도 전에 사라진 것처

럼 보였습니다.

 

교회에서, 모든 사람들이 들을 수 있도록 공개적으로 말한 그들의 믿음에 대

한 약속들과 선언들은 좀처럼 그들의  삶을 영위하는 방식으로 따라 가지 못

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가장 큰 소리로 그들의 신앙을 선언한 사람들에게,

모든 삶에 대한 기쁨이나 사랑, 존경의 증거는 없었습니다.

 

임신 초기에 병원에 입원했는데, 다시 한 번 심각하게 딜레마에 빠지게 되었

습니다. 종교를 적어야 되는 순간이 왔는데, 더 이상  영국 국교회(기독교 성

공회)를 믿는다고  주장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다른 대안 역시 없

었습니다.  제 스스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지만 상황에 의한 압박감 때문

에 특정한 종교에 속해 있다고 적게 되었을 때  매우 혼란스럽고 스스로에게

화가났습니다.  이러한 일이 일어나도록 내버려 둔 것에 대해 제 스스로에게

거짓됨을 느꼈습니다.

 

제 마음 속에는 너무나 많은 의구심들과 항상 반복되는 질문들이 있었기에

결코 만족스럽게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왜 누군가가 항상 하나님과 나 사

이에 서 있는 걸까?  그 세 분 중에 어느 분이 하나님인가? 저는 항상 삼위

일체 개념에 대해 혼란을 겪었습니다.  어떻게 나약한 인간이  다른 사람들

위에 본인을 세우며 제 죄를 용서해줍니까?

 

그리고 성인과 동상들을 숭배하는 것, 예수님의 어머니를 숭배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기독교를 믿는 사람은 신의 오른쪽 앉는다고 합니다.  사랑과

순수함으로 태어난 제 아기가  어째서 영혼의 원죄의 얼룩으로 태어났으며

세례를 받지 않으면 기독교인 장례를 받지 못한다고 하는 것입니까?

 

제 가족에 의해 이어 받은 기독교를 제 종교로 받아들이기 위해 매우 열심

히 노력했으나 나이가 들어 좀 더 생각해보니 그것은 저를 위한 것이 아니

며 제가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1982년 1월, 우리가 오랫동안 원했던 아기 알렉산드라가 22일에 태어났고

단 5일 만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것은 저와 제 남편에게 가장 힘든 시기

였고 우리가 무력함과 고통 속에서 길을 잃었던 가장 비참한 시기였습니다.

그러한 고통은 결코 줄어들지도, 사라지지도 않았고 심지어 지금도 그녀가

보고 싶고,  안아주고 싶은 갈망이 이어지는  끔찍한 순간들이  존재합니다.

아기 없이 혼자 병원을 떠났던 그 때는 너무나도 힘들었습니다.  이 엄청난

상실을 받아들이기 위해 열심히 탐구했으며 그 이유들을  찾으려고 애썼습

니다.

 

그때도 저는 아기의 삶이 이미 정해진 계획의 일부라고 추측했습니다. 제게

이 말과 함께 운명에 대해 말해준 의사는 무슬림이었고,  저와 제 남편이 겪

게된 이 두려운 상실은 아마도 의도적으로 일어날 것이 예정되어 있었을 것

이라는 생각을 하며 작은 희망을 꼭 잡았습니다.

 

알렉산드라는 순결하고 아름답고 순수하게 태어났으며 그녀의 삶은 사랑에

서 비롯된 것이었고,  저는 결코 그녀에게 일어난 일로 인한 책임감 없는 나

쁜 비난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 결심했습니다. 우리는 아주 짧은 시간동안

알렉산드라에게 선물을 받은 것입니다.  그녀를 본다는 것은 너무나 아팠지

만 우리는 우리의 방식으로 그녀를 사랑하고 알기 위해 성장했습니다. 그녀

의 온유함으로부터  어떻게 제게 나쁜 생각과 비난의 감정,  분노가 생길 수

있겠습니까?

 

정말 교통과 공포의 감정에 시달리고 있었기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

하는데 얼마나 성공적이었는지 모릅니다.  너무나도 힘든 시기였습니다. 제

가 극복하려고 했던 공허함과 상실,  황폐함의 끔찍한 감정은  분명 제 아기

의 육체적 상실과 남편의 부분들 때문일 것입니다.  먹여주고, 안아주고, 사

랑해줄 아기가 없었기에 제 팔은 너무나 공허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시간동안, 비록 제 아기의 신체를  안아주거나 볼 수는 없지

만, 그녀가 제 가까이 있다는 이상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죽음이 전혀 없는

것 같았고 아직 살아있지만 단지 눈에 보이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50

세가 되었을 때도 눈에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의 영혼이 살아있음을 확신했

습니다. 자연에서 다른 아이들의 얼굴에서 제 피부에 닿는 입김에서 내리는

비와 내 남편의 눈에서 아기를 느낄 수 있엇습니다.

 

본질적으로, 제 삶을 살아가는 동안 매우 차분하고 가깝게 아기를 느꼈었고,

본질적으로 긴밀한 교감이 있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운명'이라는 단어에 충

실히 일했으며 처음으로 하나님께 매우 가까워졌음을 느꼈습니다.

 

그러다 어떤 꿈을 꾸었습니다. 어느 날 침대에서 쉬면서 약간의 선잠을 자고

있었는데 갑자기 이상한 하얀 공간에 있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제 주변에 모

르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여자 남자 모두가 흰 옷을 입었고 심지어

제가 그들을  모른다고 생각했을 때도 제 가족을  사랑하듯 그들을 사랑한다

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옷을 입은 채 모

두 한 줄로 서서 원을 그리고 중앙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저를 둘러싼 많은 사람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모두에게 사랑받았고,

저 또한 그들을 사랑했습니다.

 

이 꿈은 계속 떠올랐습니다.  신중히 고려하고 검토해야 할 강력한 꿈이었습

니다. 그것은 의사가 제게 남긴 말을 보완하는 것 같았습니다. "운명"

 

그때 제 삶에서 성 꾸란이 왔습니다. 저는 기독교를 제외하고 다른 종교들을

관찰하고 있었고 꾸란을 구해 읽을 수 있었습니다. 1982년 여름에 독서를 시

작하자 멈추는 것이 불가능했습니다. 책을 읽고, 내려녾은 뒤 다시 집어들었

습니다. 제가 읽은 모든 것이 익숙하고 옳다고 느껴졌으며 이전에 제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 보았던  모든 질문들이 너무나 쉽고  명확하게 답변되

어 있었습니다.

 

제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는지 믿을 수 없었습니다. 이 하나님의 세계와

이 하나님의  책이 바로 내가 찾고 있던 지도였습니다.  제 안에서 탐구가 이

루어지고 있었기에  어딘가에 물어보거나 찾지 않았습니다.  그런 다음 적절

한 시기에  그 책이 제 손에 들어왔습니다. 제 운명이었을까요?

 

그 말과 메시지는 제게 속한 것 같았고, 평생 저와 함께 했던 것처럼 보였습

니다. 그것은 단지 모든종류의 어리석은 장애물들이 방해가 되어 제가 명확

이 보지 못하게 했던 것입니다.

 

몇 달 후, 텔레비젼에서 아랍에 관한 영화를 보았습니다.  메카(사우디아라

비아에 위치한 이슬람의 성지)에서 순례자들이 무슬림 순례여행을 하는 모

습을 보여주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그때가 바로 제가 정말로  집으로 돌아

왔음을 깨달은 때였습니다.  제가 꾸었던 꿈이 바로 메카의 하람 성원과 카

으바에서 전 세계의 무슬림들이 예배를 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카으바는 예

언자 아브라함(평화가  깃들기를)에 의해  세워진 하나님의 첫 번째 집입니

다. 하나님께서는 오직 한 분이시며, 동등한 존재가 없으며, 동반자가 없으

십니다.  우리가 삶을 위해 기도드리는 분이고 우리는  우리의 운명이 무엇

이든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힘과 신앙을 가질 수 있게 하

시는 분이십니다.

 

 

레일라 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