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DERSTANDING ISLAM

이슬람과 꾸란(빌랄과 야시르 가족의 이슬람)

Author
kislam0
Date
2019-02-26 08:44
Views
192



이슬람과 꾸란

2부 '꾸란'의 계시

빌랄과 야시르 가족의 이슬람

박해와 고문의 강도는 점점 심해져 감에 따라 무함마드의 의지와 그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대하여  관심을 갖는 사람들도 조금씩 늘어나

기 시작하였다.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기 위하여 몸으로 감당한

고통은  꾸레이쉬 부족과 메카의 기득권 자들에게는  웃음거리에 불과

했지만 그 시대에 소외되고 버림받은 사람을 살았던 또 다른 사람들에

게는 구원이요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것이었다. 무함마드가 전하는 메

시지는 간결하면서도 확신에 차 있었으며  새롭게 믿음의 길을 선택한

자들에게는 큰 위안과 방향을 제시하는 길이 되었다.

진실로 우리(하나님)는 비웃는 자들로부터 너를 보호할 것이니

하나님과 함께 다른 신을 두는 자들은 곧 깨닫게 될 것이니라.

그들의 그릇된 행위로 너의 가슴이 미어지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나니

너의 주님의 영광에 찬미 드리고 엎드려 절하라.

그리고 죽음을 맞이할 그때까지 너희 주님을 경배하라.(15:95-99)

특히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보호받지 못하던  계층의 사람들에게 그의

메시지는 단비와 같은 희소식이었다. 만민평등에 대한 부르짖음은 피

부색이나 민족,  그리고 빈부(貧富)와 귀천(貴賤)에 따라  구분되었던

제도적 허점을 드러내게했고 그동안 기득권자들의 학대 속에서 모든

고통을 참아왔던 노예들이나 흑인들 그리고 이방인들과 가난한 자들

은 누구나 다  대등한 자격으로 유일하신 한 분 하나님 앞에 설 수 있

다는 것 이외에 더 큰 위안은 있을 수 없었다.

빌랄은 메카의 부호 우마이야의 흑인노예였다. 무함마드의 메시지를

전해들은 그는  이슬람으로 바로 귀의했고 이를 안  우마이야는 크게

노하여 그의 목을 밧줄로 묶어 동네 아이들에게  끌고 다니도록 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그는 오직 "알라후 아하드(Allah Ahad,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라고만 외쳤다.  그럴수록 우마이야의 고문은  더욱더 악

랄해져 갔다. 타는 사막의 모래 위에 며칠을 굶긴 채 큰 돌로 움직이

지 못하게 눌러놓고 그에게 이슬람을 버릴 것인가 아니면 죽음을 택

할 것인가 물었다.  심한 배고픔과 갈증,  그리고 엄습해오는 죽음의

공포에도 불구하고 그는 신음하며 오직 "알라후 아하드"라고 말했다.

이러한 사실을 안 아부 바크르는 우마이야를 찾아가 죽어가는 노예

를 자신에게 양도해 줄 것을 부탁했다. 그리고 그는 비싼 값을 치르

고 빌랄을 데려와 해방시켜 주었다.  이후 빌랄은 최초의 무앗진(M

uazzin,  예배시간을 알리는 사람)으로  예언자를 따르며  조력자의

역할을 다했다.

또한 최초의  순교자  암마르의 가족은  마그줌 가(家)의 노예들이었

다. 암마르와 함께 그의 아버지 야시르와 어머니 수미이야가 이슬람

으로 귀의하자 그의 주인이었던 아부 자흘은 그들을  묶어 이글이글

타오르는 사막으로 내쫓았다. 그늘도 없는 사막에서  채찍을 맞으며

당하는 고통은 어떤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었다.  이 광경을 본 예언

자 무함마드가 그들에게 할 수 있는 말은 오직 "오! 야시르의 가족들

이여, 참고 견디세요. 여러분은 천국을 보장 받을 것입니다.. .."뿐이

었다. 그들을 위하여  기도 이외의 어떤 조치도 취할 수 없는 무함마

드는 너무나 슬펐다. 이에 반하여  무함마드의 고뇌와  슬픔을 안 아

부 자흘은 희열을 느꼈고  그의 고문과 박해는  더욱더 심해져만 갔

다.

.아부 자흘의 가혹 행위에 대하여 알게된 아부 바크르는 빌랄을 매입

하여 노예의  신분에서 해방시켜 주었던 것과 같이  야시르의 가족도

해방시켜 주기 위하여  아부 자흘에게 암마르의 가족을 풀어 줄 것을

제안했다. 그러나 아부 자흘에게 이미 돈은 어떤 역할도 하지 못했다.

그는 아부 바크르의 제안을 무시하고  먼저 암마르의 어머니  수마이

야를  사람들 앞으로 데리고 나와서 물었다. 카으바의 우상들에게 경

배할 것인가 아니면 무함마드의 신에게 경배할 것인가? 그녀는 추호

의 의심이나 미련도 없었다. "알라후 아하드" 한 분 하나님에 대한 신

앙뿐이었다. 아부 자흘은 늙어서 힘없는 고문으로 지칠대로 지친 암

마르의 어머니를 창으로 찔러서 죽었다. 이어서 그녀의 남편 야시르

도 계속되는 고문의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에 사망했다. 그들은

이슬람을 위하여 죽음을 선택한 최초의 순교자들이었다.  부모를 잃

은 암마르는 계속되는  고문과 냉대에도 불구하고 흔들림 없이 그의

신앙을 지켜 갔다.

점점 심해지는  꾸레이쉬 부족의 박해와 압박은  무함마드를 더욱더

힘들게 했다. 하지만 묵묵히 지속되는  무함마드의 선교에 꾸레이쉬

부족은 더욱더 잔인해 졌다. 그들은 무함마드와 그를 따르는 사람들

이 카으바에 진입하는 것을 금지하였고, 그가 길거리에 나타나면 등

뒤에서 어김없이 돌을 던지며 야유와 조소를 보냈다.

이렇듯 꾸레이쉬 부족들이 무함마드를 절대적으로 증오하고 박해를

가하는 이유는  유일신에 대한 계시가 내려지면서  우상숭배가 배격

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우상들을 숭배해온  그들의 조상들을 공격하

는 것이었고 조상신을  믿었던 그들의 전통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것

이었다.  또 다른 아유는 경제적 문제 때문이었다 . 메카의 꾸레이쉬

부족들은 4개월간의 신의 휴식기간에 아라비아 반도 전역에서 모인

사람들을 대상으로 무역을 하고, 카으바에 모아둔 우상들의 순례를

주도한 수입으로 생계를 유지하였다. 그러나 이슬람에 입교하는 사

람들이 많아지면서  카으바로 모여드는 사람이 줄어들어 그들의 수

입도 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무함마드의 유일신에 대한 선교는 메카를 중심으로 모든 종교와 문

화의 전시장처럼  이해하고 받아들였던  꾸레이쉬 부족들에게는 모

든 것을 포기해야 하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조상 대대로 전해져

오던 아랍인들의 정체성은 물론  자신들만이 가질 수 있는  모든 기

득권을 포기해야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그들은 무함

마드가 주장하는 종교에 대해서만은 모두가 하나로 뭉쳐 반기를 들

고 나섰던 것이다.

이주화 지음